올 상반기, 프랑스는 ‘연금’이라는 화두로 격랑의 시기를 보냈다. 프랑스 정부가 강행한 연금개혁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난 9월, 프랑스 현지를 찾아 경제·은퇴 전문가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프랑스는 연금 개혁이라는 거대한 숙제를 끝냈을까. [프랑스(파리)=정초원 기자]
[연금개혁] 뜨거웠던 ‘연금 개혁’ 논란…프랑스는 숙제 끝냈나
“연금 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한, 적자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정부가 올해 연금 개혁을 발표하며 강조한 메시지다.

연금 개혁은 올 초부터 프랑스 전역을 달군 가장 큰 화두다. 현행 62세인 정년을 올해 9월부터 매년 3개월씩 연장하고, 연금 납입 근속 기간을 늘리는 게 골자다. 2027년까지 63세, 2030년까지 64세로 정년을 올려, 연금 지출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프랑스 정부가 연금개혁안의 핵심을 공개하면서 국민들의 반발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이는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수도인 파리는 물론이고 니스, 마르세유, 낭트 등은 행진하는 시민들의 물결로 거리가 가득 찼다. 시위 현장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격렬했던 반정부 시위와 파업도 그 동력을 하반기까지 이어 가진 못했다. 지난 9월 1일, 프랑스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새 ‘연금개혁법’을 예정대로 시행했다. 무엇보다도 연금개혁안 추진을 향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의지가 전에 없이 강력했다. 올해 연금 개혁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선 승리 이후에도 연금 개혁을 시도한 바 있지만, 총파업과 팬데믹을 맞닥뜨리며 논의가 중단됐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정부 입법안을 의회 표결 없이 추진할 수 있는 헌법 조항(49조 3항)을 발동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올해는 연금 제도를 손보겠다는 신호였다. 조금 더 오래 일하고, 연금은 좀 더 늦게 받는 방향의 프랑스 연금개혁안은 그렇게 급물살을 탔다.
[연금개혁] 뜨거웠던 ‘연금 개혁’ 논란…프랑스는 숙제 끝냈나
프랑스, 연금 숙제 해결?…현지 전문가 시각차 여전
그렇다면 프랑스 정부는 연금 개혁이라는 큰 숙제를 해결했다고 봐도 무방할까. 연금개혁안 시행 직후인 9월 중순, 한경 머니가 프랑스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프랑스 내에는 이번 연금 개혁을 둘러싼 시각차가 여전히 존재한다.

일단 프랑스 정부가 연금 제도를 둘러싼 위기감을 과도하게 부풀렸다고 보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미카엘 제무르 파리1대학 경제학 교수는 한경 머니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물론 실제로 재정 위기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현 정부가 강조한 재정 위기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제무르 교수는 “프랑스의 재정 지출 상황을 보면, 코로나19 사태 기간에 지출이 일시적으로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 왔음을 알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재정 위기를 강조하며 지출을 더 낮춰야 한다고 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무르 교수에 따르면 오는 2027년 프랑스 연금 재정의 적자 규모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0.5% △연금 개혁을 적용할 경우 0.2% 비중으로 추산된다. 프랑스 재정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정부가 이번 연금개혁안을 추진한 가장 큰 목적은 노동 시장의 개혁이라고 분석했다. 은퇴 연령을 늦춰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노동 인구를 확보하고, 노년층의 경제 활동 참여율을 높여 세수를 더 많이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는 이미 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가 이뤄진 ‘재정 고갈 부각 정책(politique de caisse vide)’이라는 고전적인 패턴이 있다”며 “프랑스의 연금 제도는 인기가 너무 많아 정부가 연금 수령액을 삭감하는 정책을 펴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항상 연금 재정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재정 적자 상황을 부각하곤 한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은퇴 나이를 늦추는 방식의 이번 연금개혁안이 여러 문제점을 품고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 국민 모두가 64세까지 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미 현시점에도 62세까지 일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앞서 진행된 연금 개혁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정년을 연장했을 때 경제 활동이 가능한 이들은 건강한 상태의 임원진급이었다. 반면 육체 노동자는 연장된 은퇴 연령까지 실업자가 되거나 빈곤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실제 이번 개혁안으로 인해 64세 정년의 대상이 되는 이들 중 약 30만 명은 건강한 상태의 임원진급이지만, 15만 명은 연대소득대상자(RSA·기초수급자)”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사회적 비용과 근본적 불평등을 이번 개혁안이 고려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기존에 존재하던 연금 제도의 문제점을 더 악화시키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노년층, 특별히 어려운 직종에 종사하는 고연령 근로자의 실업률이 증가해 정년을 코앞에 둔 빈곤층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 “이번 연금 개혁을 통해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단기 효과를 낳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그 효과는 미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금 개혁을 통해 적자 규모를 줄이더라도 그 절감 효과는 2050년경에는 사라질 것이라는 게 제무르 교수의 전망이다. 즉, 프랑스 사회는 또 다른 연금 개혁을 필요로 하는 시점을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연금개혁] 뜨거웠던 ‘연금 개혁’ 논란…프랑스는 숙제 끝냈나
프랑스가 연금 개혁의 숙제를 완전히 끝마치지 못했다는 의견은 또 있다. 전문가마다 예상하는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조만간 연금 개혁을 둘러싼 홍역을 다시 한번 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브루노 크레티앙 사회보호연구소 소장은 오는 2030년 연금 적자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크레티앙 소장은 “현재 연금 수혜자들은 자신들이 연금을 부은 것에 비해 더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 많은 인구가 한꺼번에 은퇴해 연금 혜택을 누리게 됨에 따라 연금 재정 수지의 불균형을 초래한 셈”이라면서 “프랑스 은퇴 연령이 65세에서 60세로 5년 낮아진 1980년대 초반부터 부채로 인해 나라의 재정 상황이 극도로 심각해졌으며, 현재 프랑스 부채는 3조 유로를 초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티앙 소장은 올해 프랑스 정부가 추진한 연금개혁안보다 더 강력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년 연장을 현행 2년이 아닌 3년 정도로 상향했어야 실질적으로 연금 재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다. 더욱이 그는 이번 연금개혁안은 당초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려던 강력한 연금 개혁에 비해서도 완화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은 5년 전 매우 강력한 연금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 연금 제도(42개에 달하는 연금 제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개혁)’를 시행하고자 했다. 연금 재정은 건드리지 않고, 모든 연금 제도를 바꿔보자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며 “재선 이후 이전 개혁과는 다르게 기존 제도나 구성은 건드리지 않고, 은퇴 연령을 상향시키려는 개혁을 추진하게 됐다. 다소 완화된 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금개혁안의 핵심으로 꼽히는 ‘정년 연장’이 프랑스 정부가 현시점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국책 연구소인 프랑스 경제전망연구소(OFCE) 소속 뱅상 투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부 전문가들이 연금 재정 적자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금 재정 문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반대를 위해 실재하는 문제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정부가 이번 개혁 과정에서 재정 악화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매우 정치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료율을 인상하거나 연금 수령액을 낮추는 방법도 있지만, 현 정부가 은퇴자의 정년을 연장하는 방법을 택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고령 근로자의 취업률이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이미 임금의 28~29%를 퇴직 보험금으로 징수하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투제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는 은퇴자들의 높은 의료비 지출로 인해 경제활동인구의 임금에서 징수되는 보험금 비중이 높다”며 “경제 활동자가 기존 정년인 62세를 넘어서 좀 더 일하게 되면 연금 지출의 증가를 둔화시키고, 고연령 근로자의 증가로 전체 경제활동인구가 늘어 퇴직 보험료 징수액도 확대된다.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도 생긴다. 결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더욱이 지금 경제 활동을 하는 세대 입장에서는 보험료율을 높이는 개혁 방식을 택하는 것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45년간 퇴직 보험금이 지속적으로 인상돼 지금은 거의 2배나 올랐다. 즉, 1970년대 보험금 비율은 임금의 14~15% 정도였다”면서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경제 활동자들은 현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금을 내고 높은 연금의 혜택을 보는 셈이기에, 은퇴 시기를 늦춤으로써 연금 재정 확대의 짐을 젊은 세대와 나눌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크레티앙 소장 또한 정부가 보험료 인상이 아닌 정년 연장을 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가 지난 20년 동안 진행한 연금 개혁에서 보험료 인상이 주된 해결책으로 제시됐고, 이는 결국 근로자 임금을 올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현재 인건비 수준이 이미 매우 높고, 지난 20년간 이뤄진 연금 개혁 노력의 70%가 보험료 인상에 치우쳤다. 연금 재정의 균형을 이뤄야 하기에, 더 이상 납입금 인상의 길이 아닌 은퇴 연령을 연장하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면서 “마치 난파 위험에 처한 배가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해서, 일부 적재량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연금개혁] 뜨거웠던 ‘연금 개혁’ 논란…프랑스는 숙제 끝냈나
시위 멈췄지만…프랑스 국민 반응은
연금개혁안이 시행된 직후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대규모 시위는 잠잠해진 지 오래지만 정부의 일방통행에 납득하지 못하는 여론은 여전하다. 파리, 니스 등에 거주하는 다수의 프랑스인들은 당장의 보상 없이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떠넘기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프랑스인에게 연금이 갖는 의미는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레티앙 소장은 “프랑스인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삶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며 “프랑스인들은 이제껏 어느 국가도 갖지 못했던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서 정착시켰는데, 이런 사회보장제도의 2가지 축이 의료 체계와 은퇴 제도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프랑스인들은 자국의 의료 체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번 연금 제도 개혁을 마주하며 프랑스도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 당혹감을 느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니스에 거주하는 오베르(57) 씨는 “정부는 여러 차례의 시위를 통해 드러난 노동자들의 엄청난 불만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여론조사 결과에서 프랑스인의 대다수는 여전히 이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번 연금 개혁으로 인해 겪을 변화를 고려하면, 이들이 더 오래 일하는 것이 결국에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는 잠재적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연금 개혁은 정말로 인기 없는 정책이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 개혁이 법으로 강제된 것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추진한 연금 개혁에 찬성하는 이들도 국민적 합의 없이 개혁을 강행한 방식에는 유감을 표했다. 파리에서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포세(32) 씨는 “주변 사람들은 정부, 특히 자신들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국민들이 전적으로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강제로 추진된 과정에 깊은 분노를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공적연금보다는 스스로 은퇴자금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연금 개혁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다수의 프랑스인은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법안을 강행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서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근로자 복지와 연금 정책에 대해 정부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됐다. 몇 년 후에 은퇴 연령을 더 늦추는 또 다른 연금 개혁이 다시 등장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연금 개혁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감도 큰 편이다. 대학원생 주아기(25) 씨는 “연금 개혁 이후 노인들은 오랜 시간 노동을 하느라 일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기 더 힘들어져 실업률이 높아질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장기적으로 프랑스인의 삶에 유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는 것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제무르 교수는 “1968년 학생 혁명 이후 가장 큰 정치적·사회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노조가 한 목소리로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지난 30~4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사회적 합의의 불통은 타협의 장을 거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대를 외친 극좌 성향의 노조도 있었지만, 타협점을 찾으려고 했던 노조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 타협의 문을 닫아버렸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연금 개혁을 관철시키려는 과정에서 종종 잘못된 수치를 제시하거나, 은퇴 생활자는 최소 1200유로를 받을 것처럼 믿게 하는 등 연금 개혁의 내용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며 “이러한 불투명성은 연금 개혁에 동의한 지지층에게조차 분노를 야기시켰으며,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보인 민주적 논쟁의 불투명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프랑스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연금 제도를 가졌음에도 개혁에 격렬히 반대하는 것을 두고 “다양한 ‘이해상충’이 내포된 모순된 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놓은 전문가도 있다.

투제 이코노미스트는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정년에 이르면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가능한 한 좋은 수준의 연금으로 남은 생을 살기 원한다”면서 “연금 수혜를 받는 은퇴자들은 현재의 연금 제도에 만족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자식, 손자 세대가 연금 재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연금 개혁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찬성하기도 하는 비합리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