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상 투제 프랑스 경제전망연구소(OFCE) 수석 이코노미스트

프랑스 정부가 강행한 연금개혁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9월, 프랑스 현지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프랑스 경제전망연구소(OFCE) 소속 뱅상 투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연금개혁안에 대해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은퇴한 뒤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탄식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과연 몇 살에 은퇴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연금액을 수령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젊은 세대가 은퇴의 지평선을 멀리 볼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뱅상 투제 수석 이코노미스트와의 일문일답.
[연금개혁]뱅상 투제 이코노미스트 “장기적 관점에서 연금 제도 관리해야”
-올해 프랑스 정부가 추진한 연금개혁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현정부가 추진한 연금 개혁안은 필요한 조치였다고 본다. 프랑스 연금 제도는 현시점 징수된 보험금을 은퇴자들에게 지급하는 구조다. 즉, 연금 지출은 연금 수혜자의 수에 따라 결정된다. 인구 구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이야기다. 퇴직 인구가 급속히 증가해 경제 활동 인구 증가가 이를 따라오지 못할 경우, 향후 10~15년 후에는 더 이상 연금 수입과 지출 간의 균형을 맞출 수 없게 된다.”

-프랑스 내에서는 ‘정부가 재정 악화에 대해 과장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연금 제도를 관리하고 연금 재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결정과 정치적 결정이 동반돼야 한다. 따라서 정치적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개혁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기에, 이번 연금 개혁 과정에서도 필연적으로 '개혁을 하지 말자'거나 '개혁을 하더라도 다른 방식을 취하자'는 반대론적 입장이 더 부각됐다. 그만큼 연금 개혁에 힘이 실리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금 재정 문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를 위해 실재하는 문제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번 개혁 과정에서 재정 악화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매우 정치적인 의견이라고 본다.”

-프랑스 정부가 연금 개혁의 방식으로 보험료 인상이 아닌 정년 연장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의 경우 고령 근로자의 취업률이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이미 임금의 28~29%를 퇴직 보험금으로 징수하고 있다. 프랑스는 은퇴자들의 높은 의료비 지출로 인해 경제활동인구의 임금에서 징수되는 보험금 비중이 높다. 경제 활동자가 기존 정년인 62세를 넘어서 좀 더 일하게 되면 연금 지출의 증가를 둔화시키고, 고연령 근로자의 증가로 전체 경제활동인구가 늘어 퇴직 보험료 징수액도 확대된다.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도 생긴다. 결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지금 경제 활동을 하는 세대 입장에서는 보험료율을 높이는 개혁 방식을 택하는 것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다. 지난 45년간 퇴직 보험금이 지속적으로 인상돼 지금은 거의 2배나 올랐다. 즉, 1970년대 보험금 비율은 임금의 14~15% 정도였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경제 활동자들은 현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금을 내고 높은 연금의 혜택을 보는 셈이기에, 은퇴 시기를 늦춤으로써 연금 재정 확대의 짐을 젊은 세대와 나눌 필요가 있다.”

-프랑스 내에서 연금 개혁에 대한 반대가 격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연금 개혁은 어떤 의미인가.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정년에 이르면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가능한 한 좋은 수준의 연금으로 남은 생을 살기 원한다. 하지만 이런 은퇴 조건이 이뤄지려면 균형있는 인구 구성이라는 국가적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한편으로는 연금 수혜를 받는 은퇴자들은 현재의 연금 제도에 만족하면서도, 자신들의 자식, 손자 세대가 연금 재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연금 개혁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찬성하기도 하는 비합리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연금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상충’이 내포된 모순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연금개혁안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꼽는다면.
“우선 긍정적 측면은 연금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점이다. 물론 고령층 100명이 정년을 2년 늦춰 경제 활동을 한다고 해도, 일부 고령층은 실업 등을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100명 모두에게 보험료 징수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연금 재정 불균형을 어느정도 해소시키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또 부유한 고연령층이 은퇴 시기를 늦추면, 이들이 자신의 잉여 자본을 투입해 새로운 먹을거리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제력을 강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부정적 측면도 생각해볼 수 있다. 64세까지 연금을 받지 못하는 고령층 중 질병이나 어려운 작업 환경 등으로 필연적인 빈곤에 처하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선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향후 프랑스 연금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모든 국가에서 연금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연금 개혁은 공공의 선택이자 정치적 선택이다. 프랑스는 은퇴 정책을 논하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과격한 충돌보다는 좀 더 평화적인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은퇴한 뒤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탄식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과연 몇 살에 은퇴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연금액을 수령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젊은 세대가 은퇴의 지평선을 멀리 볼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연금 제도를 잘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인의 강점 중 하나인 사회적 연대감을 믿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연금 제도를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연금 제도를 분석해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평화적인 논의를 통해 정책을 수립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미래 세대의 은퇴 정책을 위해 어느 한 세대가 큰 부담을 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도 은퇴자와 근로자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연금 정책을 주관하는 조직이 5년, 10년, 15년까지도 내다보며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사회 각 층의 대표자와 좀 더 광범위한 논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금 개혁을 논의 중인 한국에 건넬 조언이 있다면.
“한국이 출산률의 급격한 저하로 역삼각형 형태의 인구구조를 마주하게 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연금 재정 수익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의 근로자가 필요하다. 한국과 같은 인구절벽 상황에 처한 국가는 다음의 2가지 부분을 잘 살펴봐야 한다. 하나는 경제활동인구의 생산성이다. 또 하나는 자본의 분배를 결정하는 인구통계학적 의존률(경제적 소득을 타인에게 의존한다고 가정되는 개인의 수와 부를 생산할 수 있는 연령층의 수를 고려한 비율)이다.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한 국가들이 다른 나라와 인적 교류를 갖는 대표적 방법으로는 이민자 유입이 있다. 연금 재정을 다른 나라에 투자해 수익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한국처럼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국가는 아무래도 생산가능인구가 많은 국가보다 투자 수익이 덜하다. 새로운 노동 인구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생산가능인구가 많은 국가에 투자해 상대적으로 수익을 높이는 방식으로 미래의 은퇴자를 부양할 수 있다.”

프랑스=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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