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중물가·중금리' 시대 도래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계묘년(癸卯年)이 저물고 청룡의 해인 갑진년(甲辰年)이 시작됐다. 2024년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각종 변수와 반전이 예상되는 올해의 경제 시나리오를 전망해봤다.

2023년만큼 이상기후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체감한 적도 없다. 홍수, 가뭄, 산불, 태풍, 쓰나미 등이 ‘대(大·great)’가 붙어야 할 정도였다. 슈퍼 엘리뇨의 위력이 발생 2년 차에 더 커지는 점을 감안하면 2024년에는 접두어를 한 단계 격상시켜 ‘초(超·hyper)’자를 붙여도 부족할지 모른다는 경고가 먼저 들려온다. 기후 목표 1.5도가 뚫리는 첫해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지경학적 위험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최근처럼 안보와 경제 간 분리가 어려울 때는 지정학적 위험보다 지경학적 위험이 더 중시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2024년에는 한국이 속한 동북아시아 지역, 인도의 부상으로 중국과 국경 분쟁이 재현되고 있는 남부아시아에서 지경학적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각종 선거가 많이 잡혀 있는 2024년에는 정치적 거버넌스 문제가 세계와 각국 경제에 의외로 큰 복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더 우려되는 것은 체제와 관계없이 최고통수권자의 장기 집권 야망까지 겹치면서 갈수록 이 문제가 국수주의로 흐르고 있어 이미 여야 간 극한 대립이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는 우리에게는 체감적으로 와닿는 지적이다.

미국과 중국 간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2023년 5월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과 중국·중앙아시아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경제질서가 두 회담을 주도했던 미국과 중국 간 관계를 중심으로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으로 바뀔 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통상환경도 국가 간 관세와 비관세 장벽 철폐를 통해 시장 개방을 추구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보다 유사 입장국(like minded country) 간에 협력과 연대에 맞추는 무역투자촉진 프레임워크(TIPF)나 경제동반자협정(EPA)으로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WTO나 FTA는 협상 과정이 수년 걸리고 입법기관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 정치적 거버넌스 문제가 심한 국가는 영원히 안 될 수도 있다. 반면에 TIPF나 EPA는 이상기후, 공급망 확보, 디지털 전환, 난민, 마약 등과 같은 다양한 이슈를 다룰 수 있고 입법기관의 비준과 관계없이 행정부 차원에서 손쉽게 맺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구절벽과 각국의 출산장려 운동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 인구는 20세기 이후 120년 동안 지속돼온 팽창시대가 마무리되고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앞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big change)를 몰고 올 것”이라는 보고서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세계 인구절벽 논쟁에 중심에 서 있는 국가가 중국과 한국이다. 2년 전 중국의 인구센서스 통계 발표를 앞두고 영국의 경제전문지인 파이낸셜타임스(FT)가 “중국 인구가 감소됐다”는 보도에 중국 정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해 오고 있지만 사실로 드러났다.

한국의 저출산에 대한 뉴욕타임스(NYT)의 경고는 충격적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의 출산율은 14세기 흑사병 때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요지다. 실제로 2023년 한국의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모든 국가 중에서 홍콩을 제외하고 가장 낮다. 그런 만큼 빠른 시일 안에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여져 있다.

2024년 세계 경제성장률과 선진국·신흥국별로 권역별 성장률은 커다란 의미가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처럼 취약국이 두터워지는 ‘케이(K)’자형 양극화 시대에서는 개별국의 성장률이 더 많이 포함될수록 ‘대표지수 혹은 평균값의 함정’에 걸리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성장률과 권역별 성장률의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 차원에서 침체, 불황, 회복, 성장 등 4단계와 저점, 정점의 의미가 퇴색되는 노랜딩(no landing)이 정착될 것으로 보는 것도 종전의 경기순환 이론을 뒤엎는 예상이다. 3대 예측기관은 2024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2023년보다 0.1∼0.3%포인트 정도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수준으로 세계 경기가 침체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개별 국가의 성장률이 ‘아이(I)’자형, ‘엘(L)’자형, ‘더블유(W)’자형, ‘유(U)’자형, ‘브이(V)’자형, 나이키형, 스네이크형 등 경기 순환상 모든 국면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랜드 러시(land lush·원시형 경제)’가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새로운 개념의 통상 체계로 자리를 잡는 TIPF나 EPA도 어느 국가와 체결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확률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가별로 가장 중요한 미국 경제는 2024년 11월에 치를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될 것인가가 벌써부터 관심사다. 현재로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전현직 대통령 간 재대결이 예상되지만 제3의 인물이 나올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최대 장애가 될 것이라고 꼽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더 우려되는 대목이다.
2024년 '중물가·중금리' 시대 도래
글로벌 경제, 체크포인트는

중국 경제는 ‘과연 국수화된 경제 운용 체계가 바뀔 수 있느냐’는 점이다. 2022년 10월에 열렸던 제20차 공산당대회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단독체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외국 기업 그리고 외국인 자금까지 한꺼번에 이탈하는 차이나 대탈출(Great China Exodus·GCE)을 겪고 있다. 2024년에는 시진핑 단독체제가 확립됐다고 판단하면 인민들의 경제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경제 운영 체계에 변화를 줄 수 있다. 현재로서는 비관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유럽 경제는 영국에 이어 네덜란드가 과연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넥스트(Nexit= Netherland+exit)라는 신조어까지 나와 있다. 영국과 달리 네덜란드는 유로 회원국인 점을 감안하면 20세기 초 자유사상가의 ‘하나의 유럽’ 구상에서 출발한 유럽 통합이 최대 시련에 봉착할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경제는 ‘아오키의 법칙’에 걸려 있는 기시다 정부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오키 법칙이란 기시다 내각과 집권당인 자민당의 지지도를 합쳐 50%를 밑돌아 좀비(zombie)가 되는 상황을 말한다. 현재 45%까지 떨어진 아오키 지지도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기시다 총리는 조기 사임이 불가피하고 경제도 또 한 차례 격변이 예상된다.

2023년에는 선진국이 주로 위치해 있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가 관심을 받았다면 2024년에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부상할 것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단연 상징국인 인도는 2024년 4월부터 2달 동안 치르는 총선에서 과연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카스트 제도에서 최상위층인 브라만의 저항을 받을 것으로 보이나 연임에 성공해 인도 경제를 계속 이끌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핑크 타이드 물결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중남미 경제가 부활할 것인가도 글로벌 사우스의 또 다른 관심사다. 장기간 좌파 포퓰리즘이 만연한 중남미 국가들이 시장경제 부활을 통해 경기 부양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나 효과를 거두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도기에 정치적 혼란이 예상되지만 기저효과 등을 감안하면 성장률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국제 금융 시장은 ‘고물가·고금리’가 ‘중물가·중금리’ 시대로 들어가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2023년 10월을 계기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물가는 통제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물가가 재발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24년 하반기부터는 대부분 선진국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2%대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중물가·중금리' 시대 도래
물가가 잡힌다면 2022년 3월부터 금리를 단기간에 너무 빠른 속도로 올리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컸던 만큼 금리를 빨리 내릴 확률이 높다.

미국 중앙은행(Fed)는 2024년 1분기부터, 유럽중앙은행(ECB)은 2분기부터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고수해 왔던 일본은행(BOJ)은 언제 출구전략을 모색하느냐에 따라 선진국 통화정책 간 대발산(great divergence)이 일어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처럼 ‘저물가·저금리’로 완전히 돌아가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각종 금융변수에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경제주체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한다. 종전의 경우 금리 인하와 같은 전환기에 이 과제를 얼마나 빨리 잘 조정하느냐에 따라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 간 성과에는 커다란 차이가 났다.

2024년에는 ‘킹(king)달러’, ‘갓(god)달러’라는 용어가 거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알 수 있는 달러인덱스가 100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Fed와 BOJ 간 금리 변화에 엇박자가 나면 엔·달러 환율은 125엔 내외까지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 원·달러 환율은 추세적으로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2024년 하반기 이후에는 125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이 실물을 주도하는 여건에서는 ‘위험자산 선호(resort to risk)’와 ‘안전자산 선호(flight to quality)’ 간 경계가 무너져 주가와 채권 가격이 같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2024년 재테크의 핵심이다.
2024년 '중물가·중금리' 시대 도래
부동산은 자산 계층 축소에 따른 부동산 수요 감소보다 포트폴리오 변화에 따른 부동산 수요 증가가 큰 만큼 주거용 부동산 시장은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진전과 이에 따른 근무 환경 변화 등으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어느 국가보다 대외 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경제는 2023년, 계묘년(癸卯年)에는 긍(肯)과 부(否), 부(浮)와 침(沈) 간 반전이 거듭되는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에는 긍(肯)과 부(否), 부(浮)와 침(沈)을 모두 휘감아 하늘로 올라가는 청룡처럼 우리 국민이 모두 활짝 웃는 해가 펼쳐졌으면 하는 희망을 걸어본다.

2024년을 맞는 우리 경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시급한 것은 대외 경제 정책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종전의 규범과 관행을 답습하는 ‘시스템적 플랜 A식 디커플링 접근’보다 급변하는 국가별 관계를 감안해 위험을 축소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컨틴전시 플랜 B식 디리스킹 접근’이 필요하다. 후자는 유연하고 부지런한 대외 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기업 등 다른 경제주체들도 마찬가지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