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금리 하락 속도가 가팔라진 데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향후 금리의 하단 지지선이 상당히 경직적일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현시점에는 금리의 절대 수준 자체가 높게 형성돼 있지만 앞으로 금리가 내려가는 국면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하단 지지선이 매우 견고하고, 이를 뚫고 내려갈 가능성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참여자들이 시간을 앞당겨 자금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현재 5%대에서 등락하더라도(미국 10년물·2023년 10월 중순 기준) 앞으로 중기 시계에서 금리가 내려갈 수 있는 최저점이 3% 부근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제한된 자본소득(capital gain)’을 제한된 시간 내에 확보하기 위해 매수 시점을 점차 앞당기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최저점을 3% 부근으로 인식한다면, 시간 싸움에서 이겨야만 자본차익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3년 10월 중순부터 시작되면서 11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확인한 이후 가속화되고 있으며,12월 15일까지 지속됐다. 11월 FOMC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기조(실제 추가 인상 준비가 돼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상 사이클 마무리 국면인지)를 확인할 수 있고,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확신할 수 있으며, 성장 추세가 금리의 중기 방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확인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있다. 글로벌 채권 투자자들은 앞다퉈 투자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12월 FOMC 회의 당일과 다음 날, 이틀 동안에만 글로벌 금리가 전 만기 구간에서 30bp 내외 하락했다. 역대 랠리 장과 비교해도 가파른 하락 속도다. 최근 시장 배경을 살펴보면 시장이 선제적으로 국채금리를 하향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Fed의 인하 사이클 속도를 과대 평가했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12월 FOMC는 ‘시장의 과도한 기대’를 희석시키기 위해 견조한 매크로 환경을 강조하는 매파적 회의가 될 것이라고 시장참여자들은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 회의는 인하 사이클의 시작을 알리는 완화적 색채가 짙은 회의가 됐다.
미 Fed는 점도표를 통해 2023년 중에도 ‘추가 인상이 가능함’을 꾸준히 내비쳤고, 2024년 점도표는 5.1%로 표기하며 2024년 중 인하 횟수가 제한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여전히 견조한 미국의 고용 여건을 바탕으로, 2024년에도 물가가 다시금 상승할 수 있는 리스크가 내재된 바 있다. 미 Fed는 2024년 점도표 5.1%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아주 일부만 수정할 수 있다고 시장은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발표됐다. 12월 점도표에서 2024년 말 정책금리 예상치(점도표) 4.75% 가능성을 공개했고,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금까지 피벗(pivot: 인하 사이클로의 전환)을 부인해 왔으나 이를 인정하며 “이제 인하 사이클 시작을 논의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시장의 확신을 강화시켰다.
시장이 예상하던 것과 일치하는 수준으로 인하 정도를 언급한 것이지만, 시장은 이 자체를 ‘변화의 시작점’으로 인식해 2024년 말을 넘어 2025년까지의 인하 사이클을 소화하며 금리 낙폭을 확대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향후 짧은 시계에서는 시장이 다소 소강 국면을 나타낼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FOMC 전후 강한 랠리를 나타냈지만 시장은 이번 회의를 다시 한번 평가하며 시장의 랠리 정도가 적합했는지를 되짚어볼 것이다.
시장이 2025년 말까지의 인하 사이클 경로를 선반영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해당연도 말까지의 정책금리 경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9월과 12월 점도표를 비교해보면, 큰 틀에서 급진적 변화가 부재했다. 9월 회의 당시에는 2024년 말 5.25%, 2025년 말 4%로써 2025년도 말까지 6회 인하 가능성을 예고했고, 변경된 12월 회의에서는 2024년 말 4.75%, 2025년 말 3.75%로, 2025년 말까지 7회 인하 경로를 언급했다.
중장기 경로 내에서 Fed 인하 사이클에 큰 변화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시점부터는 금리가 하락 속도를 조절하며 점진적인 랠리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금리의 상하방 등락 폭이 확대되며 일간 변동성이 증가할 수 있다. 채권 시장참여자들이 점점 일드(yield)에 예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팬데믹 이후…채권시장 투자자 다변화 흐름
글로벌 팬데믹 이후 채권 시장의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투자자의 다변화 부분이다.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과 가계 및 기업의 예금 증가를 기반으로, 국채 시장에 다양한 투자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미 국채 시장을 본다면 기존에는 외국인, Fed, 시중은행에 의해 투자자가 구성됐지만 민간 자금이 늘어나면서 사모 연기금, 가계, 머니마켓펀드(MMF) 등이 국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투자자의 다변화는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 제고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패시브 성격의 자금 위주로 시장참여자가 구성돼 있기 때문에, 금리는 추세적 하향 움직임이 강했다. 그러나 일드에 기민한 투자자로 구성이 다변화되면서 시장은 현재의 금리가 펀더멘털 및 수급 여건을 정교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 국면에서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Fed의 정책 변화를 확인한 후 금리가 빠른 속도로 하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기관은 다시금 금리의 공정가치(fair value) 수준을 평가할 것이다. 금리가 적정 레벨에 부합하는지, 최근의 하락 속도가 지나치게 가파르지는 않았는지 등을 평가할 수 있다.
향후 타깃 포인트는 미국 10년 기준 3.6%라고 판단한다. 2025년 말 정책금리 전망치가 3.6%대로 수렴하고, 향후 중기 시계에서 물가가 3%대를 중심으로 수렴할 것을 고려한다면 장기물 명목금리는 이보다 소폭 높은 3.5%대에서 레벨을 형성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따라서 채권 시장은 추가 30bp 하락 정도를 목표로 삼으며 하락 추세를 이어 갈 것으로 본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꾸준히 하락하는 흐름을 나타내기보다는 변동성이 확대된 상태에서 하단으로 수렴할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이 약 2년치 데이터를 앞서 반영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이 과정에서 2년 후 경로에 대한 확신의 정도가 변화하며 금리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앞으로 채권 투자 전략은 여전히 분할 매수가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직전 고점 대비 낙폭이 확대되긴 했지만, 절대 레벨 측면에서 여전히 투자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비교했을 때, 채권의 만기 투자 수익률은 배당 수익률보다 높고, 주식의 어닝스 일드와 부합한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짧은 만기물로 일드를 고정시켜 놓을 경우 투자 수익률 측면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또한 포트폴리오 헤지 차원에서 투자금 집행이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Fed의 피벗 기대를 반영하며 현존하는 대부분의 자산 가격이 동시에 올랐다. 이는 시장의 낙관을 최대한 반영한 결과값이다.
골디락스 기대에도 불구하고 Fed의 인하 사이클과 동시에 물가의 하향 안정화와 꾸준히 견조한 펀더멘털 여건을 반영해서다. 지나친 낙관 편향은 조정받을 여지가 있다. 위험자산 가격을 일부 되돌리며 국채 시장에는 계속해서 기회를 줄 것이다.
적극적인 투자자라면 커브 스팁 대응이 유리하겠지만, 만기 투자 수익률을 고정시키는 관점에서 진입하는 투자자라면 짧은 만기 채권으로 만기를 고정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본다.
글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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