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독 치료 전문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니컬러스 카다라스 박사의 지적이다. 디지털 중독을 주제로 <손 안에 갇힌 사람들>을 집필한 카다라스 박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은유적인 아편 대신 펜타닐 같은 문자 그대로 대중의 아편이 있다”면서 “사회적 통제력을 행사해 사람들을 디지털 꿈의 세계에 빠뜨리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디지털 헤로인’이라는 최신 아편도 갖고 있다”고 했다. 디지털 중독 사회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쉽고 빠른 보상…도파민 중독의 늪
‘중독’은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주요한 화두다. 대표적인 물질 중독으로 분류되는 마약은 물론이고, 행위 중독에 속하는 도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갈수록 더 비중 있게 거론되는 사회문제다. 특히 스마트폰의 일상화와 함께 등장한 ‘디지털 중독’은 만성적인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디지털 헤로인’으로 비유된다.
이 비유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콘텐츠가 뇌의 도파민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펜타닐, 니코틴으로 인한 물질 중독이 끝없는 도파민 보상을 좇도록 뇌의 보상회로 체계를 망가뜨리는 것처럼, 끝없는 자극과 반응을 유발하는 소셜미디어, 숏폼 콘텐츠도 비슷한 방식으로 도파민 시스템을 망가뜨린다.
일반적으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크고 작은 성취를 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도록 만드는 게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물질이 과도하게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 뇌는 정상적인 도파민 보상의 균형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는다.
<도파민네이션>을 집필한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정신의학·중독의학 교수는 “어떤 즐거운 경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즐거움의 초기 자극은 점점 더 약해지는 반면 고통의 후유증은 점점 더 강하고 길어진다”면서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초기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헤로인은 인간의 뇌를 ‘팝콘 브레인’으로 만든다. 순간적으로 강한 열을 받은 옥수수가 팝콘처럼 터지듯, 우리의 뇌도 갈수록 더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게 된다는 뜻이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콘텐츠 알고리즘과 ‘좋아요’ 기능을 통해 손쉬운 보상을 제공한다. 반면 큰 자극 없는 잔잔한 일상은 디지털 중독자에게 흑백 화면이나 다름없다. 결국 평범한 일상에서 아무런 기쁨을 얻을 수 없는 ‘무감각의 상태’가 만연해진다. 정작 의미있는 일에 집중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장기적으로는 공허함과 우울감이 일상을 채운다. 디지털 중독의 부작용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디지털 중독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지난해 9~11월 진행한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만 3~63세 이용자 중 23.6%가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삶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생활 패턴이 가장 두드러지고 중요한 활동이 되는 것’을 말한다. 스마트폰 이용에 대한 자율적인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는데도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상태다. 국민 4명 중 1명이 이런 과의존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스마트폰 뒤로 하고…피처폰에 꽂히다
이처럼 디지털 중독의 심각성이 꾸준히 거론되는 가운데, 이른바 ‘도파민의 새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30~40일 동안 온전히 소셜미디어와 게임, 자극적인 콘텐츠 등을 접하지 않고 ‘자극 단식’의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카메론 세파 캘리포니아대 정신의학과 임상교수는 대표적인 디지털 단식론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중독 치료에 사용되는 인지행동치료(CBT)의 원리를 활용해, 도파민 과잉을 잠재우는 것을 권장한다. 렘키 박사도 최소 30일가량 기간을 잡고 도파민 분비를 최소화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우리 뇌의 보상 경로를 재설정하기 위해서다. 다만 대부분의 중독이 그렇듯, 개인 의지만으로 디지털 자극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근에는 Z세대를 중심으로 폴더폰을 이용해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과거 2세대(2G) 통신망 시절 주로 사용된 피처폰의 개념과는 비슷한 듯 다르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이른바 ‘덤폰(dumb phone)’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말 그대로 ‘똑똑한 휴대전화(스마트폰)’의 반대말인 ‘바보 휴대전화(덤폰)’라고 이해하면 쉽다. 통화, 문자메시지, 기본적인 인터넷 기능은 있지만, 최신 스마트폰처럼 똑똑하고 빠릿빠릿하지는 않다.
미국 Z세대 중에는 스마트폰과 덤폰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도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고기능인 스마트폰을 메인 휴대전화로 쓰되,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할 때 덤폰을 보조용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내 피처폰 판매량은 올해 280만 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로 MZ(밀레니얼+Z) 세대가 디지털 디톡스를 주장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피처폰이 부활했다”면서 단기적으로 안정적인 판매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세 브리오네스 피처폰 전문가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려는 최근 트렌드를 언급하며 “Z세대의 일부는 스크린에 질려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Y2K 감성을 선호하는 MZ세대가 구형 폴더폰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고 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에서 올해 상반기 ‘피처폰’을 검색한 숫자가 전년 동기 대비 177% 급증한 것도 이런 트렌드를 방증한다.
물론 전체 휴대전화 단말기 중 피처폰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무선통신 서비스 통계 현황’을 보면, 2023년 9월 기준 스마트폰은 5507만9139만 대에 달하는 것에 비해 피처폰은 111만8073대에 그쳤다. 또 장기적으로 단말기 수 하락세를 기록해 온 것은 사실이다. 다만 2023년 3월 123만4878대, 4월 123만6087대, 5월 125만550대로 연달아 상승세를 보인 데 이어, 8월 111만322대에서 9월 111만8073대로 소폭 늘어난 것은 주목할 만한 데이터다.
최근에는 배우 한소희가 2016년 출시된 갤럭시 폴더2를 구매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라이브 방송에서 언급해 폴더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폴더폰을 접을 때 ‘착’ 하는 소리가 매력적이다. 사진도 나쁘지 않다. 앱이 되기는 하지만 느려서 휴대전화를 잘 안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좋다.” 한소희가 직접 밝힌 ‘폴더폰에 빠진 이유’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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