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만 해도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2024년 코스피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코스피 3000을 제시하던 증권사들은 한 달도 안 돼서 코스피 지수 밴드 상단을 2800선 밑으로 낮추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에 비해 코스피가 저평가 되어 있다며 코스피 3000이 적정 수준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big story] 韓 증시 3000 시대를 위한 조건은
올해로 개장 68주년을 맞은 한국 증권 시장은 앞으로 상승 랠리를 이어 갈 수 있을까.

한국 증시가 68년간 격동의 세월을 지나면서 코스피 시가총액은 수만 배가 늘어나고 거래대금은 급증했다.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가 첫 출범한 이후 1963년 대한증권거래소는 공영제 한국증권거래소로 전환했다. 한국증시는 1965년 당시 전체 상장사 17개, 시가총액은 150억 원, 일평균 거래대금은 3100만 원의 작은 시장에 불과했다. 198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이뤄지면서 종합주가지수가 100선에서 1989년 3월 31일 1000선으로 뛰었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2023년 말 증권 시장 결산에 따르면 12월 28일 장 마감 기준 코스피는 전년 말 대비 18.7% 상승한 2655포인트를 기록했고, 코스닥 지수는 같은 기간 대비 27.6% 상승한 886.57포인트에서 거래를 마쳤다.

현재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시가총액은 2558조 원 규모에 달한다. 한국 증시의 역사를 돌아보면 성장 폭은 매우 크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매번 지정학적 리스크와 대외적인 영향이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국내 증시가 매우 저평가받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코스피 지수는 3000이 적정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거래소 제공
한국거래소 제공
증시 부양책에도 시장 無반응…힘 못쓰는 배경은

정부의 적극적인 증시부양책에도 올해 국내 증시의 상승 폭은 매우 제한적인 흐름으로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올해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공매도가 증시 변동성 확대를 야기하면서 증시 발목을 잡는 악재 요인으로 판단한 것이다.

공매도가 전면 금지되자 공매도 거래대금 상위권에 포진했던 2차전지 관련주들이 급등했다. 2차전지 급등주들이 잠시 전체 증시를 견인하긴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나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지난해 말께 국내 증시는 상승 폭을 확대했다. 공매도 금지보다 대외적 요인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셈이다.

정부는 공매도 전면 금지와 함께 증시 부양책 패키지를 발표하며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납부하는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지난 1월 2일에는 2025년부터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증시는 큰 폭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양도세와 금투세가 증시 활성화에 기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1월 효과와 더불어 강력한 증시 부양책에도 힘을 못 쓰는 배경에는 대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미국 금리 조기 인하 가능성이 다시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글로벌 곳곳에서 전쟁으로 인한 리스크가 줄지 않은 상황에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과 북한의 도발 등 한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시 상승의 최대 악재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투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부양책으로 내놓은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와 금투세 폐지는 증시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외국인과 기관은 물론 개인의 90% 이상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반된 견해도 있다. 다른 관계자는 “세금 혜택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지금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대외 요인이 증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big story] 韓 증시 3000 시대를 위한 조건은
코스피의 봄은 언제?…수출 개선 등은 긍정적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전문가들이 보고 있는 코스피의 봄은 과연 언제일까. 올 초만 해도 전문가들은 올해 반도체와 수출 증가로 코스피가 3000을 찍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전망이 무색하게도 지정학적 리스크와 대외 이슈가 불거지며 코스피는 지난 1월 16일 장 마감 기준으로 2500선을 내주며 하락세를 지속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은 –0.6% 하락세를 보였고, 신흥국은 –4.9%, 일본은 6% 상승세를 나타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코스피 주가는 8.3%나 떨어졌는데 해외 주요 국가들보다 더 떨어졌다. 이처럼 한국 증시만 큰 폭으로 하락세를 보인 배경에는 단기 급등 후 차익 실현이 확대됐고, 수출주들의 예상외 실적 부진, 디스인플레이션과 금리 인하 전망의 일부 되돌림 등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은재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최근 국내 주가 하락은 지난 연말 다소 과도했던 시장참여자들의 낙관적 기대가 조정되는 과정”이라며 “연간 전체로는 국내 증시를 둘러싼 수출 개선, 실적 성장 등이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증시가 회복되려면 경제 성장이 뒷받침돼야 하고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전문위원은 “올해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특정 업종 쏠림이 지속되면서 시장참여자들은 이익의 지속가능성과 주주환원 확대 등 제도적 노력을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오는 6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관찰 대상국에 한국 증시가 포함될지 여부에 따라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들의 주주환원 정책 개선을 주시할 소지가 크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 외국인 투자자 등록 제도 폐지, 영문 공시 단계적 의무화 시행 등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수급 개선에 일부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증시 주당순이익(EPS)은 지난해 –33%를 기록했다. 다만 올해는 61%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역시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외국인 투자 자금의 추가 유입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 부장은 “코스피 일방적 약세의 원인이었던 수급 부담이 정점을 통과한 만큼 코스피 2400선 전후에서 단기 지지력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는 한국 증시가 반도체 사이클의 상승 국면이 이어지고 수급 개선 여력 등에서 긍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반등세를 보이고 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경제의 외부적 요건만 놓고 본다면 시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며 “수출이 지난해보다 7~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글로벌 경기회복세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올해 한국의 연간 수출 증가 전환, 양호한 외환 시장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순매수 기조는 쉽게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도체, AI 등 정보기술(IT) 업종·AI 테마 중심의 투자 비중 확대 전략도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