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이커머스의 역습 ①

[special] 차이나 이커머스, 국내 시장 흔들까
#1 직장인 박 모(43) 씨는 얼마 전 중국 직구를 통해 운동화 세 켤레와 휴대전화 거치대를 주문했다. 신발은 한 켤레당 8000원대, 거치대는 1000원대다. 특히 거치대는 국내 다수의 쇼핑몰에서 2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과 동일한 제품이라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그는 “요즘 같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운동화 한 켤레를 그 가격에 살 수 있는 국내 쇼핑몰이 얼마나 되겠냐”며 “세 켤레 중 한 켤레만 성공해도 본전은 뽑는다는 생각으로 주문한다”고 했다.

#2 대학생 이 모(22) 씨는 새해 들어 X(옛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테무 맞추’, ‘테무 추천인’과 같은 키워드를 자주 검색하고 있다. 신규 가입자를 많이 초대할수록 테무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보상책을 받을 수 있어서다. 당초 이 씨는 가입 초기 혜택만 누리고 탈퇴할 생각으로 테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하지만 막상 물건을 주문해보니 미국 등 여타의 해외 직구와 달리 무료배송 혜택을 주는 데다 결제 방법도 간단하다고 느꼈다. 이 씨는 앞으로도 종종 중국 플랫폼을 활용해 가성비 직구를 하려고 생각을 바꿨다.
[special] 차이나 이커머스, 국내 시장 흔들까
‘106%.’ 지난해 3분기 중국 직구(직접구매) 거래액 증가율이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슬로건이 국내 소비자들의 지갑을 조용히 습격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도 장바구니를 차고 넘치게 채울 수 있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기세는 2023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이런 흐름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지난해 3분기 거래한 중국 직구 규모는 8193억 원이다. 우리나라 전체 해외 직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규모다.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초저가 이커머스 플랫폼이 견인한 가파른 성장세는 지난해 이후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미국, 유럽 위주로 활발히 이뤄졌던 해외 직구 시장 흐름이 이제는 중국으로 옮겨 가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직구 시장의 ‘대세 이동’은 더욱 뚜렷하게 느껴진다. 미국발 온라인 직구 금액은 지난해 3분기 453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했다. 2018년 50%에 달했던 미국 직구 비중은 28%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중국 직구는 2018년 17%였던 데서 50%까지 비중이 늘었다.

중국 직구 플랫폼의 대표 격인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시점이 2018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5년 만에 한국 시장에서 유의미한 위치에 올라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해외 직구 시장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차이나 이커머스의 공습이 국내 유통 시장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제기된다.

서현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국 등 해외 직구 트렌드에 대해 “아직까지 시장 규모는 작지만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며 “해외 직구 성장률이 전체 온라인 유통 시장 성장률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여러 국가 중에서도) 중국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해외 직구 시장에서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가 유의미한 사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장 점유율 상승은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충분히 승산은 있다. 해외 직구 품목별 비중을 보면 의류·패션 상품이 가장 높다. 대부분 저가 브랜드에 국한돼 있기에 백화점보다는 수입 MD 비즈니스 업체들 또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 부정적 영향이 클 듯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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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해 국내에서 이용자 수가 가장 크게 증가한 모바일 앱으로 꼽힌다. 모바일인덱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알리익스프레스가 504만 명, 테무는 235만 명에 달했다. 테무의 경우 불과 지난해 7월부터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서운 성장세다. 정체 상태인 국내 플랫폼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여기에 중국판 유니클로로 불리는 패스트패션 플랫폼 ‘쉬인’, 콘텐츠를 무기로 내세우는 ‘틱톡샵’의 공세까지 더해질 전망이다. 특히 업계는 틱톡샵의 국내 진출에 주목하고 있다. 틱톡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틱톡샵은 이미 상표 출원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한국 진출을 준비하는 단계다. 틱톡샵의 내년 글로벌총거래액(GMV) 목표는 500억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special] 차이나 이커머스, 국내 시장 흔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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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하이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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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커머스 돌풍의 배경은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파워는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먼저 입증됐다.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보다도 초저가 정책이다. 저가를 넘어선 초저가 정책은 전 세계를 강타한 인플레와 맞물리며 소비자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유혹적인 소구점으로 다가왔다.

테무가 2022년 9월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돌풍을 일으킨 핵심도 바로 이 지점이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되는 테무의 셀링 포인트는 역대급 물가 상승을 겪던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를 파고들었다.

국내 소비자들이 중국 직구에 주목하는 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은 가격이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고 중국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초저가 정책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중국 직구 플랫폼이 국내 시장에서 큰 성장세를 보인 이유를 단순히 저렴한 가격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기존 해외 직구와 차별화되는 결제·배송의 편리성을 꼽을 수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CJ대한통운과의 협업으로 배송 기간을 단축시켰다. 해외 직구의 최대 약점인 ‘늦은 배송’의 한계를 최소화한 것이다. 현재 알리익스프레스는 통상 5~7일 안에 중국 제품을 한국 소비자에게 배송하고 있다. 한국 내 물류센터를 건립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 향후 배송 기간이 더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

손쉬운 결제 방식도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낮춘 요소다. 알리익스프레스, 쉬인에서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국내 간편결제 서비스를 통한 결제가 가능하다. 국내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결제 난이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미국, 유럽 직구의 경우 현지 배송대행지를 끼고 물건을 구매해야 하는 만큼 주문·결제 과정이 비교적 복잡하다. 현지 구매 사이트에서 타국 신용카드 결제를 막아 두는 경우도 왕왕 존재한다. 기존 해외 직구와 중국 직구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MZ(밀레니얼+ Z) 세대를 저격한 마케팅 방식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머지보스, 리얼농장 등 게임을 통해 플랫폼 체류 시간을 확대하는 전략을 쓴다. 테무도 이용자가 게임을 하면 할인쿠폰 등을 받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뒀다. 이를 통해 쇼핑을 넘어선 몰입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강력한 알고리즘 시스템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덤이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테무의 미국 시장 성공 요인에는 극강의 가성비도 있겠지만 SNS 로 젊은 층 소비자를 끌어들인 게임화 정책도 있다”면서 “이는 핀둬둬가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초저가 비즈니스 모델의 일환이다. 초기에 공격적인 마케팅과 가격 경쟁력을 활용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판매자 대상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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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커머스의 치명적 약점
국내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이 마냥 꽃길만 앞두고 있다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리스크도 존재한다. 우선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의 오랜 꼬리표인 가품 논란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알리익스프레스의 가품 논란이 화두에 오른 바 있다.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듯, 알리익스프레스는 3년간 100억 원을 투입해 셀러 검증·인공지능(AI) 식별 알고리즘 시스템을 만들고, 가품 신고 제도를 운영해 가품을 필터링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가품 필터링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품질 관리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불안 요소다.

중국 플랫폼 특유의 초저가 정책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과 같다. 훗날 성장세가 둔화될 시점에도 박리다매의 특성을 띠는 초저가 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고객을 끌어모으는 마케팅 전략이 멈춘 이후 사업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중국 앱의 개인정보 탈취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이 리스크를 의식해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이용을 꺼리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앞서 테무의 자매회사인 핀둬둬는 사용자 개인정보를 빼가는 악성 소프트웨어를 앱에 내재했다는 논란에 오른 바 있다.

윤리적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리스크다. 쉬인은 초저가 정책을 위해 위구르족 강제노동과 연관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면화를 공급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쉬인 협력업체 공장 근로자들이 하루 18시간 이상씩 일하고 있다는 의혹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저렴한 물건을 다수 구매한 뒤 쉽게 버리는 소비 문화를 조장하는 것이 최근의 친환경 패러다임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