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란 특정 시기에 신생아가 급증하는 인구학적 증상을 말한다. 통상 전후에 이 같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산율이 급증했다. 이 시기 한 해 80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의 신생아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통상 베이비부머라고 하면 이들을 칭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1964년 이후 잠시 줄어드는가 싶었던 신생아 출산율이 1968년부터 다시 치솟기 시작해서 1974년까지 이어진다. 이때도 한 해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났다. 그래서 편의상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1차 베이비부머, 1968년에서 1974년 사이 태어난 아이들을 2차 베이비부머로 구분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고령화와 노후 문제를 얘기할 때면 으레 700만 명이 넘는 1차 베이비부머를 주목해 왔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인구집단이 고령인구로 편입될 때 생겨날 문제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차 베이비부머는 모두 법정정년(60세)을 넘겼고, 이들 세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58년 개띠’는 고령인구(65세 이상)에 편입됐다.
이제 2차 베이비부머에 주목할 차례다. 1974년생이 50세가 되면서 2차 베이비부머가 모두 50대 초반에 포진했다. 이들이 법정정년에 다다르고, 고령인구로 편입될 때까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남은 기간 동안 이들이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2차 베이비부머들은 노후 준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처한 현실은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3층 연금이 있어도, 걱정되는 노후생활비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2차 베이비부머는 상대적으로 노후 준비를 하기가 용이하다. 이들 세대가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기 전인 1988년에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돼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그래서 이전 세대보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고 노령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세대는 맞벌이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역 시절 맞벌이가 노후에 ‘연금 맞벌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다층 연금 보장 제도의 기틀이 잡혔다. 먼저 1994년 7월에 도입된 (구)개인연금에 이어 2001년 1월에 연금저축제도가 도입됐다. 이로써 소득(세액)공제 혜택을 누리며 노후 자금을 축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리고 2005년 12월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서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차 베이비부머는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을 모두 활용해서 노후 준비를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3층 연금 보장 제도가 2차 베이비부머의 노후에 대한 불안을 완전하게 해소해주지는 못한 듯하다. 그들은 여전히 퇴직 이후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는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해 6월 말부터 8월 초 사이에 서울, 수도권, 광역시, 세종시에 거주하는 2차 베이비부머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현재 일하는 직장에서 퇴직하면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2차 베이비부머 응답자 중 42.6%가 퇴직 이후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생활비 부족 다음으로는 퇴직 이후 재취업(22.8%)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고 있었다. 이 밖에 퇴직 이후 가족의 의료와 간병 비용을 어떻게 할지(14%),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은 어떻게 상환해야 할지(10.1%), 자녀교육비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9%) 걱정하고 있었다.
퇴직 이후 생활비를 걱정한다는 말은 아직까지 노후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들에게 노후 준비를 얼마나 준비해 뒀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필요한 노후 자금을 100% 넘게 준비했다는 응답자는 겨우 2.7%에 불과했다. 좀 더 범위를 확대해서 필요한 노후 자금을 80% 이상 확보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봤더니, 13.3%에 그쳤다. 필요한 노후 자금 중 50~70% 정도만 준비했다고 답한 이들이 38.5%로 가장 많았다. 2. 시급한 노후 준비, 더 시급한 가족 돌봄
“정년까지 남은 날이 많지 않아 더는 노후 준비를 미룰 수 없을 것 같아요.” 50대로 접어든 직장인들이 자주하는 넋두리다. 법에서 정한 정년까지 일한다 해도 직장생활을 하며 노후 준비를 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0년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은 2차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잘 드러났다. 앞서 설문에서 현재 일하는 직장에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 중 절반(49.7%)은 앞으로 5년 이내 퇴직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 일하는 곳에서 10년 이상 일할 것 같다고 답한 응답자는 겨우 10.5%에 불과했다.
정년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면, 당장 서둘러 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 돌봄 문제에 발목 잡혀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설문에 응답한 2차 베이비부머들 중 78.8%는 현재 자녀와 부모 중 한 명 이상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를 모두 돌보는 이들도 24.1%나 됐다. 2차 베이비부머 직장인 가구 넷 중 한 곳이 더블 케어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2차 베이비부머들은 부모부양비로 월평균 50만~60만 원을 쓰고 있었고, 자녀양육비로는 월평균 100만 원 넘게 지출하고 있다고 했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50대 초반으로 접어든 2차 베이비부머는 20대 자녀와 80대 부모를 부양하고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부양 의무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성년이 된 이후에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수명 연장으로 늙고 병든 부모를 언제까지 부양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자녀와 부모 부양이 끝나면 그제야 자신의 노후 준비를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늦을 수 있다. 노후 준비와 가족 부양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하거나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렵지만 이 둘은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유야 어찌됐든 노후 준비가 늦어지면 그 부담이 자녀에게 돌아가게 될 우려가 크다.
3. 재취업은 희망하지만, 부족한 자신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노후 준비 방법은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현재 일하는 직장에서 퇴직하는 시기를 늦추고, 그게 힘들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거나 창업을 해서 일하는 기간을 늘려 나가야 한다. 일하는 기간을 늘리면 3가지 혜택이 있다. 첫째, 일하는 동안 노후 대비 저축을 늘릴 수 있다. 둘째, 공적연금 적립 기간이 늘어나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 셋째, 노후 자금 인출 시기를 늦춰 노후 자금이 조기에 고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차 베이비부머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현재 직장에서 퇴직한 이후에도 계속 일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더니, 응답자 열에 여덟(83.6%)이 ‘그렇다’고 답했다. 창업(12.8%)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재취업(70.8%)을 하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재취업 희망자 중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유사한 일을 찾아 이직하겠다(43%)는 이들이 전혀 다른 일을 찾아 전직하겠다(27.8%)는 이들보다 많았다.
재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재취업에 대한 자신감은 높지 않았다. 지금 직장에서 퇴직한 다음 재취업을 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 중 64%가 ‘잘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27.9%만 재취업에 ‘자신 있다’고 했다.
재취업을 한다면 급여는 얼마나 받기를 바랄까. 재취업 일자리에서 현재 급여의 80%만 받아도 된다고 이들이 45.6%로 가장 많았고, 현재 받는 급여의 60%만 받아도 된다고 답한 이들도 18.1%나 됐다. 반면 지금 받는 만큼은 받아야 한다고 답한 이들도 28.1%로 적지 않았다.
재취업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보통은 퇴직하고 나서야 재취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많다. 재취업이라는 게 의지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재취업 전문가들은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 재취업에 성공하기까지 평균 6개월은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재취업에 성공하려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동종 일자리로 재취업하는 경우에도 전 직장에서 받던 급여의 60~70%밖에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혀 다른 직종으로 전직하는 경우에는 최저임금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급여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문제다. 재취업 일자리에서는 자신보다 어린 상사와 함께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공식적인 절차보다는 지인들 소개로 재취업이 성사되는 게 대부분이다.
4. 필요한 건 금융 자산, 가진 건 부동산
노후 생활을 하려면 어떤 형태 자산이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금융 자산이 중요하다고 답한 이들(31%)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자산 중 금융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7.2%에 불과했고, 나머지 82.7%는 거주 주택(65.8%)을 포함한 부동산이다. 필요한 건 금융 자산인데, 가진 건 대부분 부동산인 셈이다. 많지 않은 금융 자산을 곶감 빼먹듯 빼 쓰면 조만간 고갈될 것이 뻔하다.
결국 정년까지 남은 기간 동안 금융 자산을 추가로 얼마나 더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노후 대비 금융 자산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금계좌를 활용하는 것이다.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을 합쳐 연금계좌라고 하는데, 연금계좌 가입자는 한 해 최대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며 저축할 수 있다. 퇴직급여도 가능하면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 좋다.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 부담을 30~40% 정도 덜 수 있다. 거주 주택을 포함한 실물자산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소득으로 전환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5. 생활비 더 들어도 편리한 곳이 최고
대다수 은퇴자에게 주택은 거주 공간인 동시에 노후생활비 재원이기도 하다. 준비한 금융 자산만 갖고 노후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면 결국 거주 주택을 활용해 소득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은퇴 후 다른 곳으로 주거를 옮길 의향은 있는지 물었더니, 응답자 중 절반(49.7%)이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멀리 떠날 생각은 없고 동일 지역 내 이주를 희망했다. 서울 거주자 중 64.2%는 은퇴 후에도 계속 서울에 살기를 원했고, 수도권(22.1%)과 지방(4.4%) 이주를 희망한 이는 적었다. 부산, 대구 등 지방 대도시 거주자 중 72.3%는 계속 지방 대도시에 머물기를 원했고, 지방 소도시로 옮기겠다는 이들은 23.1%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주거지를 옮길 때는 어떤 점을 고려할까. 2차 베이비부머 직장인들은 퇴직 이후 주거지를 결정할 때 교통 편의성(22.2%), 생활시설 접근성(20.7%), 병원 접근성(18.4%)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답했다. 반면, 주거지를 정하는 데 있어 인간관계는 크게 고려치 않아서, 부모님 집 근처(2.5%), 자녀 집 근처(2.4%), 친구 집 근처(1.7%)로 옮기겠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생활편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은 선호하는 주택 형태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2차 베이비부머들은 퇴직 이후 단독주택(25%)보다는 아파트(63.9%)에 살기를 희망했다. 타운하우스(5.6%), 오피스텔(4%), 시니어타운(1.6%)에 살겠다는 응답자도 많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를 종합해보면, 2차 베이비부머는 거주 주택을 활용해 노후 소득을 확보하기보다는 돈이 좀 더 들어도 생활편의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 보인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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