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중, 증시 부양...한국에 시사점은
미국과 일본, 중국이 올해 들어 증시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각국마다 주어진 상황은 다르겠지만 증시와 경제를 끌어올려야 하는 한국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미국 경제와 증시가 강해도 워낙 강하다. 경기는 ‘노 랜딩’이란 신조어가 나오는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 성장률은 4%를 넘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다. 증시는 시가총액이 전 세계의 50%에 근접할 만큼 ‘골디락스’ 장세가 재현되고 있다.

3년 전 바이든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직전 트럼프 정부가 남겨놓은 난제로 경기와 증시가 녹록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2027년에는 추월당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대내적으로는 의회가 트럼프 키즈에게 점령당할 정도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한 나라의 비상상황과 같은 복잡한 현실을 푸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특정 경제이론에 의존하기보다 당면한 현안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던 종전의 정책 처방을 참고로 하는 실증적 방법이 활용된다. 바이든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 컨트롤타워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들고 나온 것이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다.

1999년 4월 예일대 동문회에서 언급해서 알려지기 시작한 이 패러다임은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대통령 시절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제임스 토빈, 로버트 솔로, 아서 오쿤 등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월리엄 노드하우스, 로버트 실러, 그리고 옐런이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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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적인 경제정책 운용의 틀인 만큼 옐런 장관이 주도하면서 변화를 줬다. 주 책임인 재정정책에 대한 시각은 종전보다 더 대담하다.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사태 때는 국가채무 우려와 관계없이 재정지출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상시에도 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으면 감세 등을 통해 기업가 정신과 경제 의욕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문별 정책을 단순생산함수[Y=f(L·K·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를 이용해 뜯어보면 가장 우려됐던 인구절벽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대책을 대처했다. 낮은 자본장비율(K/L)과 토빈 q 비율은 리쇼오링 정책 등으로 해결했다.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개조해 민간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했다.

경제패권 확보와 관련해 첨단 기술 육성책이 이번에도 주효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막강한 제조업에 밀릴 것이라는 위기상황에서는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으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2020년대 들어 중국에 경제패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빅테크 주도가 된 6차 산업혁명으로 30년 이상 벌려 놓았다.

미국의 성장 동력은 달라졌다. 솔로 스완 성장이론에 따라 특정국의 성장 동인을 ‘생산요소’와 ‘생산성’으로 양분화시켜 요인을 분석해보면 중국 경제는 생산요소 기여도가 높은 외연적 성장 경로에 있으나 미국 경제는 생산성 기여도가 더 높아지는 내연적 성장 경로가 고도화되고 있다. 미국의 노동과 자본 생산성은 중국의 3배 이상으로 높게 추정된다.

증시 정책을 공화당의 전통 이상으로 중시한 것도 옐런 장관이 주도하는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 종전과 다른 점이다. 기업이 자금조달 창구로 증시를 최우선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줬다. 법인세, 상속세 등을 감면해 기업가 정신과 이윤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증시 관련 세제 정책도 대폭 정비했다.

포이즌필, 황금주, 차등의결권 등을 도입해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대신 자사주 매입과 소각, 주식배당 등을 적극 권장했다. 자사주를 활용한 합병 비율의 왜곡, 오너 등 지배주주 사익을 위한 부(富)의 이전 행위인 터널링 등 오너를 비롯한 지배주주의 전횡과 상장사 임직원의 금융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킬 수 있는 경쟁 정책을 대폭 강화했다.

개인투자자도 건전한 자산 증식 수단으로 주식을 선호할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해줬다. 소득세, 양도세, 거래세 등 주식 관련 세제를 단일화시키면서 세율도 대폭 내렸다. 공매도를 비롯한 모든 주식과 주식 관련 상품 거래 시 외국인 자금, 기관으로부터 불이익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개인투자자 간 연대 등 주주행동주의 활동을 보장해줬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국민소득 3면등가법칙상(생산=분배=지출) 분배의 주 수단으로 임금과 함께 주주환원을 양대 축으로 삼고 있는 점이다. 미국의 주주환원율은 92%에 달한다. 기업이 이익이 나면 모두 주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다. 선진국 평균 68%, 신흥국 평균 37%, 중국 31%뿐만 아니라 한국 29%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일본 증시가 거침없이 오르고 있다. 시간이 문제지 닛케이 지수가 4만 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예측기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1989년 12월 29일에 기록했던 종전의 사상 최고치 3만8915.87을 경신한다면 최소한 증시 면에서는 ‘잃어버린 30년(정확하게는 34년)’에서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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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이론적 근거에서 보면 최근 일본 증시 상승세는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해 성장률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1%대에 머무른 가운데 올해는 그보다 낮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 증시 상승이 뒤늦게 아베노믹스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시각에 무리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일본 증시 상승세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미국 증시보다 의심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의도는 다른 데 있다. ‘잃어버린 30년’을 방지하기 위해 2012년부터 추진해 온 아베노믹스를 쉽게 포기하기 어렵고 누적된 국가채무로 재정정책이 여의치 못한 여건에서 증시를 살려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월부터 추진해 온 ‘재팬 프리미엄 전략’은 ‘있는 것부터 제대로 평가받자’는 ‘재팬 디스카운트 해소 대책’에서 출발한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각종 주가 평가 기준으로 볼 때 일본 증시는 한국 증시 이상으로 저평가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기득권 카르텔 저항에 밀려 감히 저평가 해소책을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 증권당국이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자사주 매입, 배당률 제고,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주주 보호와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직접 행동한다는 면에서 종전의 펀드와 다르다.

일본 증권당국도 적극 호응했다. 지난해 4월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을 대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상장 폐지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당 기업들은 배당률 제고 등을 통해 PBR을 1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내친김에 일본 증권당국은 소액투자비과세제(NISA)를 도입하는 등 감세를 목적으로 증시 관련 세제도 일제히 정비했다.

가치투자의 달인인 워런 버핏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재팬 디스카운트 대책으로 일본 기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으면 주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가장 저평가된 5대 상사를 중심으로 일본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버핏 회장이 일본 주식을 처음 사들였던 지난해 4월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의 국가별 주식 투자 수익률을 보면 일본이 가장 높다.

모든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일본 증권당국의 증시 부양책은 때맞춰 중국에서 이탈된 외국인 자금을 유입하는 촉매제가 되면서 일본 주가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 대탈출(GCE)’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중국에서 외국인 자금의 이탈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확률이 높아 일본 주가 추가 상승에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주가 상승은 일본 경제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에도 오히려 더 높아져 ‘잃어버린 30년’을 낳았던 민간 저축이 증시로 유입되면서 기업의 설비투자 자금으로 선순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 상승에 따른 ‘부(富)의 효과’로 민간소비도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증시 부양책이 ‘부의 저축세’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이 실물을 주도(leading)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감세 정책 수단 중 증시 관련 세금을 낮춰주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 감세에 따른 소득대체 효과에다 포트폴리오 변경 효과까지 가세돼 민간소비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증시 감세에 초점을 맞춘 ‘신공급 중시 경제학’이 1980년 초에 태동됐던 ‘공급 중시 경제학’과 구별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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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연일 증시 부양책, 위기 극복 가능할까

중국이 증시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연일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까지 풀겠다고 한 돈만 하더라도 600조 원이 넘어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당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헬리콥터 벤식 위기극복책’에 비유될 정도다. 과연 중국과 홍콩 증시가 살아나 주가연계증권(ELS) 등으로 상처 난 우리 투자자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까.

모든 대규모 부양책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국영기업 역외계좌와 금융공기업 등을 통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모든 것은 중국 정부에 집결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310%를 넘어 어떤 목적이든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빚을 내서 주식,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권유할 정도다.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면 쓸 수 있는 수단은 두 가지로 제한된다. 발표만 하고 실제로 이행하지 않는 ‘무늬만 부양책’과 다른 하나는 ‘국채를 발행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실업률 등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시진핑 정부에 불리하면 통계 자체를 발표하지 않거나 축소하는 관행을 고려하면 첫 번째 방안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세계 어느 국가보다 ‘초과 공급’이 심한 발행 시장 여건상 국채를 통한 재원 조달 방안도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우려된다. 해외와 민간의 국채 수요가 없는 데다 프라이머리 딜러도 누적된 국채 투자 손실로 신규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강제 인수만이 민간에서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중국 인민은행(PBOC)도 최악의 상황에 몰린 국채 수급 여건을 모를 리 없다. 판궁성(潘功勝) PBOC 총재가 리창 총리가 주도한 증시부양책에 이어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때 “국채 발행을 통한 유동성 공급도 검토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이 대목을 가장 주목하고 있다.

PBOC가 국채를 인수한다면 ‘부(負)의 화폐화(bond monetization)’ 방안이다. 중국 공산당이 모든 금융사와 금융권 인사를 장악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동원할 수 있는 카드다. 지난해 10월 이후 3개월 연속 인플레이션 지표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경기 여건에서도 이해되는 조치다.

부의 화폐화는 모든 위기 극복 방안 중 가장 마지막에 동원하는 최후의 보루(final draw) 수단이다. 그만큼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또 다른 야망인 위안화 국제화와 일대일로 계획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다. 양대 과제의 중앙은행 격인 PBOC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무너지면 통화 주권 문제로 다른 참가국의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내적으로는 궁지에 몰리고 있는 시 주석으로서는 증시 위기보다 부동산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증시 부양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채금리가 더 상승할 경우 헝다그룹 사태 이후 4년 이상 동안 악화 일로를 겪어 온 부동산 경기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이번에 발표한 증시와 경기부양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2년 10월 20차 공산당 대회 이후 ‘GCE’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외국인 자금과 외국인 기업, 그리고 외국인이 떠나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 주석이 축출되거나 양보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시 주석이 장기 집권 야망보다 대외 경제정책을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 경제 운영 체계는 ‘통제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그리고 경제 각료를 예측 가능한 인사로 교체해 GCE를 방지하는 것이 증시와 부동산 위기, 그리고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자 궁지에 몰린 시 주석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경제적으로 인구절벽과 저출산·고령화, 국내 자본설비의 노후화 등으로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증시 면에서는 코리아 패싱, 서든 스톱, 국부 유출 등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미국 경제와 증시가 왜 강한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일본과 중국의 증시부양책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