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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테마주, 정치 거품일까
[Special]정치권 화두된 '저출생'...주식 시장도 들썩
오는 4월 10일 열리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주식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대통령 선거, 지방 선거 등 국가적인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시장을 뒤흔든 테마주 때문이다.
올해는 정부 및 여야를 막론하고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과 공약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이와 관련한 기업들이 저출산 테마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공약은 최근 저출산 및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서다.
글 정유진 기자

여야 나란히 저출생 공약 발표, 관련 기업에 관심 집중
저출생 테마주의 약진은 총선을 앞두고 관련 공약 발표해 힘입어 지난 1월 18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저출생 대책 공약을 나란히 발표하며 총선 정책 경쟁을 펼치면서 관련 기업에 관심이 집중됐다.
양당은 정부 부처 신설, 양육 지원, 돌봄, 일·가정 양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맞불을 놓았다. 국민의힘은 △인구부 신설 △출산휴가 명칭 변경 및 의무화 △육아휴직 급여 확대 △자녀 돌봄휴가 신설 △육아기 유연근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 상한 △육아휴직 업무 공백 대체 인력 고용지원금 인상 △고용보험 미가입자 일·가정 양립제도 도입 등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인구위기대책위원회를 신설해 △우리 아이 키움카드 △우리 아이 자립펀드 △아이돌봄 서비스 확대 △중소기업 근로자 육아급여 확대 △우리 아이 보듬주택 제공 △결혼-출산-양육 드림패키지 도입 등을 내세웠다.
양당 대표 역시 저출생 문제 해결에 입을 모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저출생은 국가 소멸 우려까지 언급되는 미래의 문제인 동시에 청년들과 부모들의 현재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불평등 문제일 것 같다”며 “특히 자산과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 이 부분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로투세븐 등 육아 관련주 급등...일부 상승분 반납
저출생 테마주에 해당하는 곳으로는 △육아 및 교육 관련 기업 △의료 서비스 및 보건 산업 △주택 건설 및 부동산 △아동 및 유아 제품 기업 △여성 일자리 및 근로 환경 개선 기업 △사회 인프라 및 복지 서비스 기업 등이 있다.
육아 관련주에서 가장 주목을 끈 종목은 유아용품 기업 제로투세븐이다. 1월 18일 기준 코스닥 상장사 제로투세븐은 장 초반 8590원까지 올라 상한가를 기록했다. 7080원으로 장을 마감한 2월 16일 시점으로 보면 3개월간 가장 높은 주가를 찍었다. 연간 최저점인 4895원과 비교하면 75%나 오른 셈이다. 이후 회사는 영업이익, 매출액, 당기순이익이 모두 축소됐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실적을 내놓으며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삼성출판사는 유튜브에서 아기상어 콘텐츠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더핑크퐁컴퍼니의 대주주로서 교육 관련 정치 테마주로 묶인다. 이 회사 역시 지난 2월 6일 종가 기준 2만9950원을 찍으며 연간 최고 주가를 나타냈다.
국내 전통 아동용품 브랜드 아가방컴퍼니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격돌한 지난 18대 대선 때부터 저출생 테마주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의 저출생 대책 복지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가방컴퍼니와 보령메디앙스가 테마주로 꼽혔다.
육아 필수템으로 자리 잡은 물티슈를 생산하는 깨끗한나라 역시 1월 19일 3670원의 주가를 기록하며 연중 최고점을 찍었다. 연간 최저점인 1843원과 비교해 2배가량 오른 수치다.
대표적인 저출생 테마주로 분류된 4개 기업은 삼성출판사를 빼고는 급등한 뒤 상승분을 반납해 ‘찻잔 속의 태풍’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제로투세븐은 평소 가격인 7000원 선에서 거래가 진행 중이며 아가방컴퍼니 주가 역시 5000~6000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 테마주에 칼 빼든 금감원, 특별 단속 실시
저출생 관련 기업을 비롯한 테마주로 인해 시장 과열 양상이 보이자 금융감독원이 칼을 빼들었다. 금감원은 1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22대 총선에 앞서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정치 테마주의 주가 급등락과 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투자자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건전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정치 테마주 관련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집중 제보기간’ 운영 및 ‘특별 단속’을 실시한다”고 엄단 의지를 피력했다.
금감원은 정치 테마주는 기업의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 이상 급등이 발생하고 정치인의 학연, 지연 등 단순 인적 관계에 기반하거나 합리적인 근거 없이 테마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아 투자 위험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정치 테마주 지수의 일별 주가 등락률은 2023년 10월 4일부터 2024년 1월 23일 기간 중 최저 △9.81%에서 최고 10.61%로서 시장 지수에 비해 변동성이 컸다. 특히 금감원은 정치 테마주 지수는 2023년 10월 초 대비 최고 53.80% 수준까지 상승하는 등 현재 과열돼 있는 양상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금감원은 “과거 사례로 볼 때 정치 테마주는 정치적 이슈에 따라 선거일 전후에도 급등락을 반복하다가 결국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주가 하락 시기, 변동 폭 등의 주가 흐름은 예측하기 어렵다”며 “현재 이상징후를 보이는 정치 테마주에 대해 정밀 분석을 실시하고 있으며, 불공정거래 정황 발견 시 즉각 조사에 착수하고 무관용으로 엄중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2월 5일 ‘2024년도 금융감독원 업무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치 테마주, 신사업 발표 관련 부정거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허위정보 유포 등 불공정거래에 대한 기획조사 등을 통해 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불공정거래, 회계분식을 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Special]정치권 화두된 '저출생'...주식 시장도 들썩
전문가들 경고 "정치인 옷깃만 스쳐도 테마주 등극"
금융 시장 전문가들은 대통령 선거와 비교해 후보자의 수가 많고 지역별로 분산돼 있는 총선의 특징을 고려해 총선 정치 테마주 현상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정경유착의 관행 해소와 시장 구조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자본시장 연구원 관계자는 “주식 시장 특성상 과거의 패턴이 기계적으로 반복해 나타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기업의 본질 가치와 동떨어진 채 가격이 급등하는 정치 테마주의 경우에는 선거일 전후로 가격 하락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지난 16~19대 대통령 선거 기간 70개 정치 테마주를 분석해보면 낙선자 관련 정치 테마주는 물론 당선자 관련 정치 테마주도 선거일 직후에는 상대적인 가격 하락이 관측됐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의 경고처럼 주요 정치인 관련 테마주가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급등락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관련 테마주로는 태양금속, 덕성 등이 꼽힌다. 태양금속은 한우삼 회장이 한동훈 위원장과 같은 청주 한씨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덕성은 이봉근 대표와 김원일 사외이사가 한 위원장과 서울대 동문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분류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테마주로는 동신건설, 에이텍, 토탈소프트가 있다. 동신건설은 이 대표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본사가 위치해 있다. 에이텍은 최대 주주인 신승영 대표가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 성남창조경영을 맡았다는 이유다. 토탈소프트는 최장수 대표가 이 대표와 같은 중앙대 동문이라는 이유로 포함됐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관련한 테마주로는 남선알미늄이 꼽힌다. 이 회사 계열사인 삼환기업에 이 대표 친동생인 이계연 고문이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조국, 이준석 등 이름난 정치인에 따라 합산 100여 개가 넘는 테마주가 존재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주요 정치 테마주의 특징은 유력 정치인과 ‘옷깃만 스쳐도’ 주가 변동 폭이 크다는 점이다.
금감원이 “주요 정치 테마주의 경우 일반 종목에 비해 평균 영업이익 및 당기순이익 등 영업 실적이 저조함에도 기업의 실적과 상관없이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특별한 이유 없이 주가가 급등한 종목의 경우 큰 변동성으로 투자 손실을 유발할 수 있으며, 주가 예측이 어려우므로 투자에 신중을 기하시기 바란다”고 시장 진화에 나선 이유다.

역대 선거 테마주의 최후는 대부분 ‘급락’
역대 선거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테마주의 최후는 나락으로 간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종목이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테마주인 이화공영이다.
2월 16일 종가 기준 3150원에 거래되고 있는 이화공영 주가는 이명박 전 대통령 4대강 공약 관련 테마주로 엮이며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 때 64700원까지 치솟았다. 이 회사는 철도 지하화 관련 테마주로도 분류되며 최근에도 주가가 반짝 오른 바 있다. 하지만 회사가 공개한 2023년 연간 실적에 따르면 매출액 1531억1300만 원, 영업이익 8억3649만 원을 기록해 투자 매력이 크다고는 볼 수 없는 기업으로 분석된다.
18대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 씨가 최대주주 지위에 있던 EG가 급등했다. 현재 1만 원 초반대에 거래되고 있는 EG는 박 전 대통령 당선 당시 4만455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수소배터리, 드론 등의 분야에서 접점이 많아 한때 대표적인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됐던 뉴로스는 2022년 10월 상장폐지 되는 불명예를 겪었다.
정치 테마주의 말로를 뻔히 알면서도 투자자들이 손을 대는 이유는 ‘한탕’이라는 끊을 수 없는 유혹 때문이다. 도박과 같이 돈을 벌 확률이 희박하지만 성공하면 대박이 난다는 기대심리가 한 몫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5년에 한 번 오는 빅 이벤트에 “기회는 이번뿐”이라는 절박함이 더해져 결국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증권 업계 한 관계자 “정책 수혜가 기대되는 종목들이 일시적으로 매수세가 몰리는 현상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적 중심으로 가치를 따져봐야 한다”며 “선거 직전·후 어느 시점에 뚝 끊겨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 사진=한경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