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세계의 이목이 미국 중앙은행(Fed)로 쏠리고 있다. 시장이 기대했던 ‘6월 금리인하’에 대한 신중론이 커지면서 환율은 치솟고, 투심도 출렁이는 양상이다. 도대체 금리가 뭐길래 이토록 경제를 좌우하는 걸까.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 금리에 대한 궁금증을 정리했다

[빅스토리]

코로나19 팬데믹 후 최근 3년간 전 세계 증시는 출렁였다. 고물가, 고환율 등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배경을 쫓다 보면 늘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전 세계 증시가 요동쳤다. 그만큼 금융의 최소 단위인 ‘금리’의 힘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패권국 흥망성쇄 따라가는 금리의 역사
금리에 요동치는 세계 증시

금리란 돈을 빌린 대가로 지불하는 자금의 사용료인 이자를 원금으로 나눈 비율이다. 즉, 금리는 자금 사용료인 셈이다. 따라서 경기가 좋아지면 투자와 소비를 위한 자금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자금 사용료는 상승하고, 반대로 악화되면 자금 수요가 줄어들어 자금 사용료는 하락한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와 금융 시장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들 가운데 금리는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혀 왔다. 금리는 단순히 예금, 대출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조절, 고용 안정, 환율 조정 등 국가 경제의 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정된다. 따라서 미 Fed, 한국은행 등 각국의 중앙은행이 물가와 경기 조절을 위해 금리정책을 주요 정책 수단으로 삼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쇼크는 금리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염병이 글로벌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당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줄줄이 기준금리를 낮추며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미 Fed는 2020년 3월 3일 긴급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데 이어 그달 17~18일 예정된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앞서 15일에도 기준금리를 인하해 미국 기준금리는 해당 월에만 1.5%포인트가 인하됐다.

이로써 기준금리가 0.00~0.25%로 낮아지며 제로금리 시대에 진입했다. 한국은행도 그해 4월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를 시작으로 1.25%에서 0.5%까지 낮췄다. 제로금리 시대가 열리자 주식, 채권, 부동산, 암호화폐까지 투자 시장은 모두 강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파티는 오래가지 못했다. 폭발한 자금 유동성은 결국 40년 만에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했고, 세계 경기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Fed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했다. 2022년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처음 올린 후 5월, 6월, 7월, 9월, 11월, 12월 열린 FOMC 정례회의에서 무려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렸다.

길어지는 인플레와의 전쟁

한국은행도 그해 여섯 차례 기준금리를 올렸고 이 중 두 번이나 유례없는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이후 2년간 견고하게 이어졌던 고금리 기조의 변화 가능성이 지난해 말부터 흘러나오면서 시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Fed는 지난해 12월 점도표(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에서 올해 금리 인하 시그널을 내비친 바 있다. 0.25%포인트씩 세 차례, 총 0.75%포인트(중앙값) 정도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시장은 환호했다. 주가가 급등했고, 미국 국채금리도 떨어지며 투심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미국의 인플레(물가 상승)가 여전한 가운데 고용 시장까지 견조한 흐름을 보이면서, 올해 Fed가 금리를 두 번 인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Fed 위원들도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 4월 3일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가진 연설에서 “최근의 데이터들은 견고한 경제 성장세와 강하지만 재조정되고 있는 노동 시장, 울퉁불퉁하지만 2%를 향해 내려가고 있는 인플레 추세를 계속 보여주면서 전반적인 상황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않았다”며 “올해 어느 시점에 금리 인하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올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반면 미셸 보먼 Fed 이사는 같은 달 5일 “인플레가 더 떨어지지 않거나 (상승세로) 역전되면 앞으로 FOMC에서 금리를 더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밝히는 등 향후 금리 인하 여부에 귀추가 모아지고 있다.

로마제국 혼란기 15%까지 치솟은 금리

역사는 반복된다. 금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오르는 주식도, 떨어지는 주식도 없듯 금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5000년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금리도 오르내림을 반복해 왔다. 역사상 처음으로 이자를 주고받은 기록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거슬러 간다.

메소포타미아는 은의 무게를 재서 거래하는 귀금속 화폐를 쓰고 있었는데, 금리는 연 20%에 달했다. 이후 로마제국이 들어서면서 금리에 대한 기록은 좀 더 명확하게 남겨졌는데 로마가 도시국가였던 기원전 443년에는 금리가 연리 8%로 높았지만, 로마제국의 기틀이 세워지면서 정치·경제 질서가 확립된 기원후 1년 무렵에는 금리가 4%로 낮아졌다.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제국으로 변모하면서 ‘로마제국에 의한 평화(팍스 로마나)’와 함께 정치적, 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들어 금리가 내려간 것이다. 낮은 금리로 로마제국에서는 투자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로마제국 후기에 접어들수록 정치 불안이 가중되자 기원후 300년에는 연리 15% 안팎으로 금리가 올랐다. 이 같은 현상은 근대에도 되풀이됐다.

시드니 호머와 리처드 실라가 쓴 <금리의 역사>에 따르면 1800년 이전 미국의 장기 국채금리는 연 7%를 웃돌았지만, 1890년대에는 2%로 떨어졌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이 강력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자이언트 임팩트>의 저자 박종훈은 “금리는 한 나라의 번영이나 제도의 안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하나의 강력한 패권 국가가 등장해 세계 질서를 유지하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하락하면서 안정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며 “반대로 패권국의 지위가 약화되고 끊임없이 도전을 받게 되면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금리가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금리 하락기에는 채권 투자 주목

경제활동이나 투자를 하는 데 있어 여러 유형의 가격 변수들을 접하게 된다. 환율, 주가, 유가, 금값, 그리고 최근에는 가상화폐까지 매일 시시각각 변동하는 가격 변수 중심에 금리가 있다. 금리는 단순히 예금, 대출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택 가격, 주가 등 자산 가격은 물론, 환율 및 원자재 등 각종 가격 흐름을 좌우하는 변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리가 오르내림에 따라 투자자들은 어떻게 투자했을까. 금리 변동에 따라 가장 주목받는 투자 섹터 중 하나는 채권이다. 채권은 정부와 기업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서다. 통상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은 상승하게 되면서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 반대로 금리 인하 시점이 멀어지고, 고금리 기조가 길어질수록 채권 투자에 대한 매력은 떨어진다. 실제로 최근 2년 새 금리가 오르면서 개인투자자의 채권 직접투자도 2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채권 순매수액은 37조5620억 원으로 2022년(20조6113억 원) 대비 16조9507억 원(82.2%) 증가했다. 그만큼 고금리 기조 이후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리가 내려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대체 관계인 금값이 오른다. 금리 인하에 대한 불확실성도 마찬가지로 대체재인 금 수요를 높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정부는 통상 금 가격이 오르는 것을 경계하는데, 금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면 달러 패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Fed가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던 2020년에는 시카고상품거래소가 정부 대신 앞장서서 선물 증거금을 단기간에 네 차례나 인상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패권전쟁이 가속화된 상황에서 세계 경제의 향방이 어디로 흘러갈지 가늠하기 힘들 때는 보험 성격으로 금을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불확실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Fed가 급격하게 금리를 끌어올리거나 미국 정부나 거래소 등이 규제를 강화할 때를 노려 분할 매수하는 편이 좋다.

세계 경제 주무른 역대 Fed 의장들

대부분 국가는 중앙은행 총재가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별도의 통화정책위원회에서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정책금리를 결정한다. 위원회의 법적 지위, 위원의 구성과 임기 보장 등은 독립적인 통화정책 수행의 중요한 척도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에 설치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창설 10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역대 Fed 의장들. 왼쪽부터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사진 = 연합AFP
미국 연방준비제도 창설 10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역대 Fed 의장들. 왼쪽부터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사진 = 연합AFP
미국은 중앙은행인 Fed, 즉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내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에서 정책금리를 결정한다. FOMC는 법적으로는 독립적인 회의체지만 Fed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가 사실상 운영한다. 현재 파월 의장이 FOMC 위원장이 되고, 이사 전원이 FOMC 위원(12명 중 나머지 5명은 연방준비은행 대표로 구성)이 되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FOMC 회의를 실질적으로 주관하고 있다.

흔히 Fed의 의장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통화량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역대 Fed 의장 중엔 세계 경제사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이 많다.

폴 볼커(1979~1987년)는 ‘매파’ 성향의 ‘인플레이션 파이터’였다. 그가 Fed 의장에 취임했을 때 미국 물가 상승률은 15%를 넘나들었다. 그는 기준금리를 연 20%까지 올렸다. 금융 시장은 경악했지만, 그는 ‘저승사자’라는 별명답게 물가 상승률을 4년 만에 3%대로 잡았다.

볼커의 뒤를 이어 Fed를 맡게 된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은 뉴욕 주식 시장의 ‘검은 월요일’, 아시아 금융위기, 닷컴 버블 등 위기 때마다 적극적으로 금리를 내려 위기가 번지는 것을 막으며, ‘마에스트로(거장)’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1년 9·11 테러로 금융 시장이 큰 충격에 휩싸였을 때도 그는 유동자금을 늘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특히 Fed 의장의 말 한마디에 시장의 온도 차가 급격히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임기 내내 ‘모호한 화법’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금융 규제 완화와 낮은 금리로 인해 주택 시장의 거품이 터지며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하게 됐다.

‘그린스펀의 함정(Greenspan’s trap)’이라는 말도 그때 생겨났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의 무거운 책임을 떠안게 된 인물은 벤 버냉키(2006~2014년)다. 그는 2012년까지 세 차례 양적완화를 통해 무려 4조 달러를 시중에 풀었다.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발언으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를 대공황으로 빠뜨릴 수 있는 불길을 잘 잡았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현재 Fed의 수장은 제롬 파월(2018년~현재)이다.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올빼미파(중도파)로 분류되는 그는 재임 초기 ‘마이너스 금리’를 원하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압력에도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에 선을 그으며 Fed의 독립성을 지켜냈다. 이후 2021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 의해 다시 한번 Fed 의장에 지명되며 연임에 성공한다.

2020년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지난 10여 년간 지속되던 강세장이 돌연 하락세로 돌아서자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를 재실시해 심각한 경기 침체를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든 2021년 긴축에 주저함으로써 심각한 인플레를 자초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후 2022년 잇따른 자이언트 스텝으로 고금리를 택했던 그가 2024년 현재 다시 한번 금리 인하 선택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월의 입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는 이유다.

글 김수정 기자
사진 연합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