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꽃잎을 활짝 여는 아네모네는 빛깔도 선명하고 다양하다. 빨강, 파랑, 보라, 분홍, 노랑, 흰색으로 큰 꽃이 화사하게 핀다. 하지만 꽃잎이 너무 얇아 오래가지 못하고 약한 바람에도 순식간에 지고 만다. 그래서 아네모네는 ‘바람꽃’이라고 불린다
[MOTIF IN ART] 바람에 날리는 화려한 아네모네 그리스 신화에서 '아네모네(anemone)'는 바람과 인연이 깊다. 님프 아네모네는 꽃의 여신 클로리스(로마 신화의 플로라)의 궁전에 살고 있었는데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사랑에 빠졌다. 제피로스는 바로 클로리스의 남편이었으니, 질투에 사로잡힌 클로리스는 당장 아네모네를 쫓아내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서풍이 불어오는 봄마다 아네모네 꽃이 피게 됐다고 한다.한편 로마 시대에 그리스 신화를 기록한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에서 아네모네를 아프로디테(베누스)가 사랑한 미소년 아도니스와 연결했다. 혈기 왕성한 아도니스는 사나운 짐승을 피하라는 아프로디테의 충고를 듣지 않고 멧돼지를 공격했다가 그만 물려 죽고 만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아프로디테는 울부짖으며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 신의 음료인 넥타르를 뿌린다. 그러자 피에 젖은 노란 모래에서 거품이 일며 핏빛 꽃이 피었으니 그 꽃이 아네모네다.
두 신화 모두 이뤄지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다. 화려한 꽃이 한순간 바람이 불어 허무하게 스러지듯 사랑도 덧없는 것. 그래서인지 아네모네의 꽃말은 허무한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기대, 기다림과 같이 쓸쓸한 의미를 띤다.
바람결에 떨리는 아네모네
꽃말과 상관없이 미풍에 흔들리는 아네모네를 상큼하게 그린 그림이 있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년)의 작품 <화분의 아네모네>다. 빛의 화가이자 바람의 화가로 불릴 만큼 모네는 자연에서 햇빛의 변화와 바람의 효과를 민감하게 포착했다. 그에게 꽃은 일찍부터 영감의 원천이었다. 화가로 성공한 후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하고 정원 만들기를 낙으로 삼았다. 이 그림도 정원에서 꽃 가꾸기에 한창 열정을 바치던 시기에 그린 것이다.
그림에는 아네모네꽃이 한 송이씩 담긴 토분들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초록 잎이 무성하고 빨강, 파랑, 흰색 꽃들이 접시처럼 환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배경은 하늘과 같이 푸르고 단순하며 경계가 없다. 여기에 화분들이 대각선 방향으로 배치돼 공중으로 나아갈 듯 경쾌해 보인다. 화분에 맞춰 꽃송이의 배열도 사선을 그리며 운동감을 띤다. 바람이 일어 꽃들을 비스듬히 밀어내는 것 같다.
전통적 장르 분류를 따르자면 꽃이 담긴 화분을 그린 그림은 정물화에 속한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정물화보다는 풍경화 같은 느낌을 준다. ‘정지한 생물(still life)’이라고 하기엔 장면에 온통 생기가 넘친다. 식물이 화면 밖으로 계속 이어지며 배경도 실내가 아닌 야외다.
모네는 붓 터치를 작게 나눠 재빠르게 칠했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붓질이 미풍의 가볍고 신속한 움직임을 나타낸다. 화가의 붓질 아래서 이파리와 꽃잎이 잘게 떨린다. 햇빛과 바람이 있으니 그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네의 붓질은 자꾸만 짧고 가늘어져 화폭에서 흩날린다. 표현하려는 내용과 회화의 형식이 하나로 일치한다.
화폭에서 변형된 아네모네
모네와 동갑내기 화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1840~1916년)은 꽃을 대하는 관점이 전혀 달랐다. 모네가 사물을 그때그때 보이는 대로 포착해 시각적 진실을 추구한 데 비해, 르동은 눈에 보이는 대상보다 상상의 세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상징주의자로서 신화나 종교 주제를 자주 다뤘지만, 꽃 정물화도 상당수 제작했다. 꽃은 실제와 상상을 이어줄 좋은 소재였다.
<파란 꽃병의 아네모네>는 파란 화병에 꽂힌 색색의 아네모네 꽃다발을 그린 것이다. 현실의 꽃병이지만 어딘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다듬어진 꽃의 모양이나 강렬한 색채의 조합, 정연한 배치 등에서 오는 기분일 것이다. 주황 색조가 번지듯 퍼져 나가는 넓은 배경도 꿈속처럼 환상적이다. 르동은 파스텔을 사용해 선명한 색과 부드러운 터치로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르동의 아네모네는 마치 꽃이란 이런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화가가 그리려 한 것은 눈에 보이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그린 꽃의 아름다움은 망막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이상적인 미의 전형을 가리킨다. 한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년)도 직접 꽃을 키우며 작품의 소재로 자주 사용했다. 마티스는 꽃의 색채가 가진 조형성에 관심이 있었다. <보라색 가운과 아네모네>에서는 아네모네 꽃다발의 울긋불긋한 특징을 이용해 화면을 구성했다. 꽃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고 단순히 빨강, 보라, 흰색, 분홍의 색면으로 처리해 색채 효과에 집중했다. 아네모네의 다양한 색이 중심을 이뤄 확산하면서 주위의 다른 색들을 결정한다. 보라색 아네모네는 여인이 입은 가운과 연결되고, 빨간색 꽃은 뒤쪽 쿠션과 이어지며 왼쪽 벽의 세로줄 무늬와도 조응한다. 흰색 꽃은 여인의 블라우스, 가운의 줄무늬, 오른쪽 벽면의 곡선들과 호응하며, 장면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역할을 한다. 꽃의 중심을 표시한 검은색도 여성의 장신구, 사물의 윤곽선, 꽃병과 탁자의 무늬에서 반복되며 왼쪽 바닥의 검정으로 절정에 달한다.
마티스는 색으로 과감하게 공간과 사물을 구분하고 각기 다른 선을 써서 부분의 특징을 표현했다. 특히 보라색 가운의 구불구불한 줄무늬는 인체의 수직성과 굴곡을 암시하며 꽃병의 줄무늬와 상응한다. 꽃병의 곡선 패턴은 아래로 가면서 왼쪽으로 휘어져 아네모네 줄기들이 오른쪽 위로 구부러지는 것과 대비되며 균형을 이룬다. 아네모네의 줄기와 잎은 여인의 블라우스와 치마, 탁자에서 식물의 잎과 덩굴 모양의 패턴으로 이어진다. 아네모네는 색과 선, 장식으로 여인과, 또 실내와 일체가 된다.
‘바람의 꽃’ 아네모네는 모네의 그림에서는 생생한 자연으로, 르동의 그림에서는 신비한 환상으로 표현됐다. 그리고 마티스의 작품에서는 화면의 생동감과 조형을 위한 요소로 사용됐다. 아네모네의 전설과 식물에서 예술가들은 자주 영감을 얻었다. 꽃의 아름다움은 화가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돼 저마다 개성 있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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