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를 이해하는 것은 곧 시장의 밑그림을 가늠해볼 지도를 획득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도가 없어도 여행은 떠날 수 있지만, 자칫 길을 잃기 쉽다. 우리나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을 주시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빅스토리] 지연된 피벗, 금리 카오스
지난 1월 30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참석한 (왼쪽부터) 조슈아 갤린 FOMC 사무총장과 제롬 파월 의장, 필립 제퍼슨 부의장. 사진 Fed 제공
지난 1월 30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참석한 (왼쪽부터) 조슈아 갤린 FOMC 사무총장과 제롬 파월 의장, 필립 제퍼슨 부의장. 사진 Fed 제공
투자자가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원칙이 있다. 바로 ‘Fed에 맞서지 말라(Don’t fight the Fed)’는 월가의 투자 격언이다. 통화정책과 반대로 가는 투자는 시장의 약자인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모험이다. 이 말은 월가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전 세계 주식, 채권 등 금융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Fed의 입에 세계의 눈이 쏠리는 이유다.

Fed에 맞서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그들의 뜻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Fed가 제시하는 방향성을 오해하지 않는 법을 익히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Fed의 과거와 현재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기준금리를 좌우하는 중앙은행에 대해 알아본다.
미국 워싱턴DC의 Fed 본부. 사진=Fed 제공
미국 워싱턴DC의 Fed 본부. 사진=Fed 제공
미국 중앙은행 Fed, 어떻게 시작됐나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Fed)는 1913년 ‘연방준비법’에 의해 설립된 미국 중앙은행이다. Fed의 가장 큰 목적은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다. 금융 안정을 도모하면서 통화정책을 결정하고 은행에 대한 규제, 감독도 진행한다. 설립 이후 110년이 지나는 동안 Fed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 물가와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존재로 군림하게 됐다.

그럼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시점인 1776년부터 Fed가 탄생하기 직전인 191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지금의 Fed와 완전히 같은 역할은 아니지만 주요국 중앙은행과 유사한 성격을 띤 기관이 있긴 했다. 1791년 설립된 미합중국제1은행을 20년간 운영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미합중국제2은행 역시 20년의 운영 기간을 전제로 달고 출범했다.

하지만 두 은행 모두 성공적인 중앙은행 모델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탄생부터 여러 논란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라졌고, 이후 민간 금융사가 마음대로 지폐를 찍어 시중에 유통하는 시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중앙은행 설립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된 것은 1907년이다. 당시 월가에선 주가 폭락으로 민간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미국 금융 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때 나섰던 것이 JP모건이다. JP모건 창업자인 존 피어폰트 모건은 뉴욕의 동료 금융인들을 모아 금융 시장 구제책을 만드는 데 동참할 것을 설득했다. 은행장 등 금융업 책임자들을 자신의 도서관에 가둬 두고 합의안이 도출될 때까지 보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다.

월가는 이 일을 계기로 향후 비슷한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물론 JP모건과 같은 특정 금융사에 과도한 금융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다.
1970년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장면. 사진=Fed 제공
1970년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장면. 사진=Fed 제공
“투자자여, Fed에 맞서지 마라”...중앙은행의 모든 것
논의 끝에 출범한 ‘Fed’라는 명칭에는 통상의 중앙은행과 달리 ‘은행’이 아닌 ‘제도’라는 뜻을 담았다는 게 독특한 대목이다. Fed는 일종의 분산형 중앙은행이다. 중앙은행의 권한을 특정 지역이나 조직에 몰아주지 않기 위해 워싱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으로 분산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이 아니라 민간은행의 출자를 통해 자본금을 모아 만든 조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민간은행이 투자금의 6%를 매년 배당금으로 받기 때문에 Fed의 독립성에 대한 설왕설래도 적지 않다. 12개의 연방준비은행은 자신의 연방준비구를 각각 맡아 또 하나의 중앙은행 기능을 저마다 수행한다.

FOMC는 어떻게 구성되나

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기준금리와 같은 통화정책을 논의하는 기구다. 매년 8회의 회의가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토론해야 할 주요 사안이 있다면 연 8회 이상 열리기도 한다. 소속 위원은 12명으로 구성되는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FRB) 이사 7명과 연방준비은행 총재 5명이 포함된다. 이 12명에 포함되지 않은 연은 총재들도 FOMC 회의에는 참석한다. 대신 통화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투표권은 FOMC 위원 12명만 갖는다.

연방준비은행 총재에게 표결권이 주어지는 다섯 자리 중 네 자리는 11명이 돌아가면서 맡기 때문에 해마다 구성원이 달라진다. 남은 한 자리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당연직)가 고정적으로 맡는다. 그해 표결권을 갖는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금리 향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위원 교체 시기마다 시장의 관심이 높아진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멤버인 리사 쿡 이사, 아드리아나 쿠글러 이사, 마이클 바 금융감독 부의장, 제롬 파월 의장, 필립 제퍼슨 부의장, 미셸 보먼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 사진=Fed 제공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멤버인 리사 쿡 이사, 아드리아나 쿠글러 이사, 마이클 바 금융감독 부의장, 제롬 파월 의장, 필립 제퍼슨 부의장, 미셸 보먼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 사진=Fed 제공
“투자자여, Fed에 맞서지 마라”...중앙은행의 모든 것
올해는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매파),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중립),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비둘기),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비둘기)가 새로운 표결위원으로 합류했다.

물론 경제 상황에 따라 전통적인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위원이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둘기파로 분류됐던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올해부터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발언을 내놓으며 숨겨 뒀던 매파적 발톱을 드러냈다.

Fed를 이해하는 눈, 점도표와 의사록
FOMC가 결정하는 통화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점도표(dot plot)’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점도표는 FOMC 회의 참석자들이 생각하는 향후 경제 전망과 금리 수준을 익명으로 제시하는 자료다. 통상 한 분기마다 발표되는데, 매년 3월과 6월, 9월, 12월 FOMC 정례회의 이후 공개된다.

점도표에는 투표권을 갖고 있지 않은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의 생각도 들어간다. 당해년도 최종 금리를 포함해 앞으로 3개년의 연말 기준 최종 금리, 장기 금리(longer run) 등 각 시기마다 적정하다고 판단되는 기준금리 수준이 표시된다.

가장 최근에 열린 FOMC 회의가 3월 20일이었으므로 당시 점도표를 예로 들어보자. 이 점도표에서 19명의 Fed 위원 전원은 연내 최소 한 번은 금리를 낮출 것으로 내다봤다. 또 10명은 연내 세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를 전망했다. 통상 Fed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단위로 움직인다. 따라서 연말까지 금리가 0.75%포인트 정도 낮아질 것이라고 봤다면, 이는 최소 3회의 인하를 예상한다는 뜻이다.
“투자자여, Fed에 맞서지 마라”...중앙은행의 모든 것
시장에서 점도표를 볼 때 가장 유의미하게 참고하는 부분은 중간값(median)이다. 점도표상 기준금리 전망의 중간값 추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비교해보면 FOMC의 금리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FOMC 점도표에서는 올해 말 금리 전망치 중간값이 4.6%로 나왔다. 지난해 12월과 같은 값이다.

점도표에 더해 FOMC 의사록을 참고하면 Fed 내 인사들의 금리 인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과거 비공개 원칙으로 작성되던 FOMC 의사록은 1999년 12월부터 외부에 공개됐다. 당장 기준금리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위원들의 어떤 의견을 주고받았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한국형 포워드 가이던스 이해하기

FOMC 점도표는 시장이 통화정책에 대한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로 삼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포워드 가이던스란 중앙은행이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미래의 통화정책 방향을 예고하는 새로운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포워드 가이던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취임한 이후 2022년 11월부터 도입한 ‘한국형 점도표(K점도표)’가 그 일환이다. FOMC 점도표처럼 위원들이 익명으로 적어낸 정책금리 전망치를 서면으로 표시한 형태는 아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총재가 구두로 설명하는 형식이다. 시장은 이 발언을 토대로 금통위의 판단이 매파적 성향이었는지 비둘기적 성향이었는지 파악한다. 한국형 점도표에는 한은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의 금리 수준 전망치가 담긴다.

한은은 한국형 점도표의 운영 방향을 개편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향후 3개월로 한정된 전망만으로는 기준금리의 장기적 흐름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탓이다. 이 총재는 지난 2월 “향후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한국형 점도표)를 더 발전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 또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시계까지 확장해서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현재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한은의 통화정책 변화를 감지하려는 시장의 안테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곤두선 상황 속에서, 한국형 점도표의 역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금통위원의 구성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앞서 조윤제·서영경 위원이 4년간의 임기를 마치면서 2명의 새 위원이 합류하게 됐다. 금통위의 정책 판단에 변화가 생길 만한 요소다. 금통위를 떠난 기존 두 위원의 경우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됐다. 반면 새 금통위원으로 발탁된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김종화 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은 비둘기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위원은 오는 5월 23일 통화정책방향회의부터 금리 결정에 참여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Fe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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