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수요는 치솟는데 무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불안정한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전자폐기물 재활용, 디지털 공급 네트워크(DSN) 강화, 원자재 공급망에 대한 총체적 접근법 등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스페셜] AI 반도체의 봄
지난 3월 20일 인텔의 미국 애리조나주 오코틸로 캠퍼스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 정부는 이날 인텔에 대한 20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발표했다. 사진=연합AP
지난 3월 20일 인텔의 미국 애리조나주 오코틸로 캠퍼스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 정부는 이날 인텔에 대한 20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발표했다. 사진=연합AP
반도체 칩, 자동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원자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핵심 원자재의 글로벌 공급망이 계속 불안정한 상태다. 딜로이트는 이르면 2024년 상당수 지역에서 갈륨과 게르마늄 부족난이 발생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2025년에는 전기차 핵심 원자재인 희토류뿐 아니라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리튬과 코발트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단기·중기·장기 전략을 수립하면 이러한 공급망의 취약성에 대비할 수 있다.

중국, 희토류 수출제한 시나리오

원자재 부족난은 대체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리튬과 코발트는 수년간 생산이 급증했지만 배터리전기차(BEV) 수요가 증가하면서 공급이 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다시 전기차 생산뿐 아니라 노트북과 태블릿, 스마트폰 등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중국과 서방국 간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초래된 공급망 불안정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핵심 반도체 칩뿐 아니라 반도체 칩 생산에 필요한 첨단 기술과 소프트웨어의 수입도 차단된 중국은 2023년 7월 게르마늄과 갈륨의 수출제한이라는 카드로 맞대응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전자제품, 청정에너지, 항공우주 산업, 자동차, 국방 등의 분야에서 사용되는 희토류 17종에 대한 수출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서방국들은 수년간 희토류 부족난에 시달릴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핵심 원자재의 대체재들조차 정치·규제·사회 환경이 불안정한 지역에 위치해 장기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공급망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과거에도 원자재 부족난은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2000년 탄탈룸 공급난으로 콘덴서 생산이 큰 차질을 빚었다. 하지만 2024~2025년에는 10여 개의 원자재가 동시에 부족한 전례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원자재들을 핵심 원료로 하는 산업들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첨단 기술 산업의 연간 규모는 160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나 전기차 산업의 경우 절대적 액수로는 규모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혁신과 경제 성장,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 한 분야다.

우선 단기적으로, 게르마늄과 갈륨을 원재료로 하는 기업들 대다수는 2024년 상반기까지 충당할 재고를 갖추고 있다. 이후에는 갈륨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반면 게르마늄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대량의 보유고가 있어 공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광산과 제련 시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갈륨은 원광인 보크사이트에서 알루미늄을 생산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데, 보크사이트는 전 세계 모든 대륙에 걸쳐 10여 개국에 보유고가 있다.

원자재 공급난 극복하는 세 가지 전략

희토류도 알고 보면 그다지 희귀하지 않으며, 호주,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캐나다, 미국 등지에 향후 수년간 광산이 개발될 예정이다. 이러한 단기·장기 변화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기존 공급난과 향후 공급난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망 취약성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래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① 전자폐기물 재활용
글로벌 전자기기 산업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함께 버려지는 원자재의 가치는 연간 무려 50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원자재는 공급망이 취약하므로, 재활용을 늘리면 공급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전자폐기물 재활용 기술에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② 디지털 공급 네트워크(DSN) 강화
DSN을 강화하면 공급망 효율성이 개선된다. 원자재 부족난을 예측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폐기되는 원자재를 줄일 수 있다. 공급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정도와 기간을 줄일 수는 있다. 온실가스 및 폐기물 배출 감축을 위해 공급자 네트워크와 협력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여타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과 DSN을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수 있다.

③ 전략적 비축고 마련
미국은 현재 석유, 곡물, 금괴, 헬륨, 핵심 국방 원자재 등의 전략적 비축고를 두고 있다. 전기차와 반도체 핵심 원자재도 전략적 비축고를 마련해 두면, 공급망 취약성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전자폐기물의 양은 2022년 5740만 톤에 달했지만, 이 중 공식적으로 집계된 수집 및 재활용 비율은 17%에 그쳤다. 다만 전자폐기물 재활용 비율은 지역마다 매우 상이했다. 미국의 경우 2019년 약 15%가 재활용된 반면, 유럽연합(EU)의 경우 2022년 약 42.5%가 재활용됐다.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중국 동부 롄윈강 항구에 쌓아 놓은 희토류 광물. 연합AP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중국 동부 롄윈강 항구에 쌓아 놓은 희토류 광물. 연합AP
현재 추세라면 2030년까지 연간 전자폐기물 양이 7500만 톤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자폐기물은 다양한 곳에서 나온다. EU의 경우 2020년 기준 대형 전자기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정보기술(IT)과 통신, 소비자용 전자 제품도 약 30%를 차지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2023년까지 글로벌 전자폐기물 재활용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자폐기물 재활용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재활용으로는 돈을 벌기 힘들고 오히려 비용만 발생한다. 전자기기에는 여러 가지 재활용 가능한 원자재가 있지만, 화학적·물리적으로 서로 결합 및 합성화돼 있어(예: 납땜·플라스틱·세라믹), 각각의 금속을 추출하려면 여러 공정, 에너지, 화학적·물리적 과정이 필요한 데다 그 과정에서 위험한 유독 폐기물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선진국의 전자폐기물이 재활용을 위해 개발도상국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개도국의 비공식 폐기물 시설에 고용된 290만~1290만 명의 여성과 약 1800만 명의 어린이가 유독 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폐기물(주로 인쇄회로기판)에서 추출할 수 있는 금속의 가치는 연간 150억 달러로 추정되지만, 비용이 수익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 비율이 낮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보다 희토류와 리튬, 코발트, 반도체 등의 공급망 회복력을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추면 두 가지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전자폐기물 재활용 비율이 상승할 것이고, 둘째로는 북미와 EU 영토에서 재활용되는 전자폐기물이 늘어 다른 국가에 미치는 부정적 환경 영향이 줄어들 것이다.
불안한 공급망이 고성장 발목 잡는다
최근 재활용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틈새 재활용 및 순환 물류, 공정, 사업모델 등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등장해 재활용 산업의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고 있으며, 최근 미국 정부는 전자폐기물에서 추출되는 리튬과 희토류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발표했다.

한편 전기차뿐 아니라 풍력 터빈, 국방 시스템 등 다용도로 활용되지만 공급원이 중국에 집중된 희토류는 공급 우려가 특히 심각하지만, 베트남에서 장기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베트남 희토류 보유고가 2200만 톤에 달한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베트남은 이미 희토류 생산 확대에 주력해 2022년 생산량이 전년비 10배 이상 늘어난 4300톤에 달했으며, 2030년까지 연간 생산량을 200만 톤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베트남, 희토류 보유고 세계 2위
지난 2월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첫 해외 공장을 오픈했다. 연합AP
지난 2월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첫 해외 공장을 오픈했다. 연합AP
전략적 보유고 전략은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에 용이한 방법이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과 EU의 경우 저순도 갈륨의 전략적 보유고 비용이 kg당 약 280달러, 99.99999% 순도의 갈륨은 kg당 약 450달러, 금은 kg당 약 6만6000달러가 든다. 갈륨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전자기기 기업들은 연간 10톤 이상을 사용하므로, 3년간 쓸 수 있는 전략적 보유고를 비축하는 데 저순도의 경우 약 2000만 달러, 고순도의 경우 3000만 달러가 든다.
불안한 공급망이 고성장 발목 잡는다
지정학적 긴장은 좀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다. 희토류뿐 아니라 갈륨과 게르마늄 등 핵심 금속들은 중국에서 채굴될 뿐 아니라 제련까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중국과 서방 간 무역 긴장이 한층 고조되는데 이들 금속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장기적으로 자국 또는 인근에 광산과 제련 시설을 확충해 공급원 집중도를 중국으로부터 분산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전자폐기물 재활용, DSN 강화, 재고 확충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다.

공급망 취약성이 이처럼 다각적으로 발생하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십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첨단 기술 산업은 혁신, 경제 성장, 국가 안보에 핵심 산업이므로,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도의 과감한 단기·중기·장기 투자가 시급하다.

글 던칸 스튜어트 딜로이트 캐나다 TMT 리서치 이사 외 3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