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국내 미술품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감상과 수집을 넘어 매력적인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투자 관점에서 2024년 가장 주목해야 할 국내 작가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아트테크]
김희자, <승화를 위한 기도(A pray for sublimation)>, 그레인 합판에 아크릴, 200×120×8cm, 2022년
김희자, <승화를 위한 기도(A pray for sublimation)>, 그레인 합판에 아크릴, 200×120×8cm, 2022년
김희자, 상호 반향(反響)하는 우주
김희자가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다가 일흔이 넘어 귀국해 선보인 최근 작품들에는 ‘나무의 영혼’이 담겨 있다. 캔버스가 아닌 나무판에 그려, 나뭇결의 형상이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이미지와 합쳐진다. 나뭇결은 일렁이는 물이나 대기 등의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충만한 흐름으로서의 세계를 표현한다. 우주가 공허해진 것은, 근대 과학에 의해서다. 과학이 비워낸 중성적 공간을 다시 충만하게 채우려던 괄목할 만한 문화적 흐름이 낭만주의라면, 김희자의 작품도 그 계보에 속할 것이다. 자연은 물론 별과 밤, 음악이 가득한 작품들의 면모가 그렇다. 나무의 내부에 있었던 나뭇결은 인간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한다.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원시적 사고부터 근대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범신론적 세계관이 관통한다. 근대가 예술 그자체에만 집중하자면서 하나둘 잘라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불러들여 이어 나간다. 작품 속 별빛 우주는 나무를 비롯해 작품 속에 나타났던 모든 소재를 오케스트라처럼 조율하면서 관객의 오감에 침투하고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고양시킨다.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블루칩 작가 6선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김희자 작가는 결혼 후 10여 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이후 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미국으로 이주해 한국 현대미술을 가르쳤다. 지난 2021년 귀국해 국내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박미화, <소녀입상(A Girl)>, 세라믹, 56×43×125cm, 2018년
박미화, <소녀입상(A Girl)>, 세라믹, 56×43×125cm, 2018년
박미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작품 또는 사물
박미화의 화법은 소박하다. 빚다가 만 듯한 도예 작품과 깎다가 만 듯한 목조각도 그렇다. 그는 예술보다는 사물의 방식을 택한다. 예술과 사물의 구별이 모호한 대표적인 것이 오래된 유물일 것이다.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이지만, 오랜 시공간의 간격을 통해 자연화된 대상이 유물이다. 작가는 자기가 만든 것조차 마치 발견된 것처럼 연출한다. 막 만들어진 도예 작품은 오랫동안 눈이나 비를 맞은 석상이나 물살에 닳은 돌멩이를 닮았다. 그것들은 작가와 자연이 함께 만든 것인 양 오랜 시간의 더께를 뒤집어쓰고 있다. 오랫동안 해 온 신문 스크랩을 활용한 작품들은 거듭 쓰여진 양피지처럼 중층적으로 읽힌다. 종이든, 빚은 흙이든, 통나무든 드로잉의 바탕 면이 된다. 최근 전시에서 오래된 창문들을 그대로 살린 운치 있는 공간에 툭툭 걸쳐 놓은 듯한 작품은 주어진 환경에 스며들면서 결국 특정 장소와 작품 모두를 돋보이게 한다.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블루칩 작가 6선
박미화 작가는 서울대와 미국 템플대 타일러 미술대학원을 졸업했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돗토리현청, 이탈리아 카잘그란데파다나, 레지오에밀리아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지난 2019년 제4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다.
김유정, <완전한-공생(Optimal-Symbiosis)>, 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래치, 80.0×55.0cm, 2017년
김유정, <완전한-공생(Optimal-Symbiosis)>, 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래치, 80.0×55.0cm, 2017년
김유정, 인간 이전 혹은 이후의 풍경
김유정은 ‘틸란시아(tillandsia)’라는 이국적인 식물을 활용해 주어진 환경 전체를 연출하는 대형 설치 작품을 주로 전시해 왔다.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하고, 아래로 축축 늘어지며 그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촉각적 표면들로 표현한 식물은 인공적인 산물들을 모두 덮어 버리며, 묵시록의 풍경처럼 그로테스크하다. 하지만 작가의 주요 작품 목록에는 그 전부터 해 왔던 평면 프레스코화도 있다. 그의 프레스코화는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퇴색된 모습이지만, 자연의 풍부한 질감이 가득하다. 식물원을 비롯한 인공 구조물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식물들, 회벽에 스크래치로 표현한 숲 등은 자연이 받았을 상처를 암시하기도 한다. 스크래치 기법은 유적지처럼 오래된 사물의 표현에 적합하다. 살아 있는 식물들로 채워진 그의 작품은 인간 이전 혹은 인간 이후의 풍경으로, 문명과 자연의 관계를 거시적 차원에서 조명한다. 설치와 평면의 중간 단계 작품으로는 라이트박스에 배치한 식물의 실루엣으로 그림자극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있다. 식물은 사진, 회화, 설치 등 여러 형식으로 문명을 반추하는 거울이 된다.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블루칩 작가 6선
김유정 작가는 금호미술관과 서구문화재단 정서진아트큐브, 선광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정부 은행,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김지민, <The column of desire>, dia. 830×2600cm, 2024년
김지민, , dia. 830×2600cm, 2024년
김지민, 현대적 스펙터클에서 삶과 죽음의 상징적 교환
김지민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문제에 집중해 왔다. 동물적 욕구를 넘어서는 ‘욕망’은 인간에게 상수지만, 소비사회와 맞물려 또 다른 차원이 열렸다. 상품 이미지는 소비사회의 거울로, 팝아트 이래 현대미술가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현대미술은 자본주의 문화의 우세종이 된 대중문화에 대응해 살아 있음을 예찬하는 화려한 스펙터클의 틈새를 공략한다. 그의 작품에 선명하게 새겨진 화려한 줄무늬는 잘 알려진 상품의 형태를 교란한다. 작품은 관객이 몸을 움직여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나타나며, 비슷한 패턴으로 뒤덮인 벽과도 상호작용한다. 화려한 색층은 물감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적층 구조로 출력한 것이다. 작가가 참조한 고전적 정물화의 모델은 일찌기 상품 사회의 도래를 예시해 왔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넘쳐나는 보여주기의 욕망에서 오래된 모델이 동시대성과 접속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작품은 배경과 형태가 시차에 의해 나타남과 사라지는데, 구별되던 것이 사라지는 아찔한 체험은 죽음과 연결된다. 김 작가는 무한대의 소비를 추동하는 시대에 감춰진 죽음을 드러낸다.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블루칩 작가 6선
김지민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영국 윔블던 미술학교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뉴질랜드, 싱가포르, 헝가리 등 세계 각지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열었다.
김명진, <그 소년이 온다Ⅰ>, 캔버스에 한지·먹·과슈아크릴릭, 194×260cm, 2022~2023년
김명진, <그 소년이 온다Ⅰ>, 캔버스에 한지·먹·과슈아크릴릭, 194×260cm, 2022~2023년
김명진, 살갗 아래 고동치는 생
김명진은 장지나 캔버스 위에 한지를 비롯한 다양한 재료와 물감을 써 그림을 그린다. 최근 작품들은 한 꺼풀 벗겨진 피부처럼 표층 아래에 도사리고 있던 것들이 요동치게 한다. 형태가 아닌, 형태 이전의 혹은 형태 이후의 과정들은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해당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울음보가 터지고 뿔이 나고 때로는 놀란 상태에 있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에 의해 조형 요소들이 수시로 자리를 바꾸며 들썩이는 화면에서 그 무엇도 자명하지 않다. 그의 한지 콜라주 작품에는 인간의 드라마가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카프카적 주인공처럼 B, K 등의 이니셜이나 소년, 소녀, 여인, 마더 등으로 호명된다. 그 누구였지만 그 누구도 아닌, 그래서 누구나 해당될 수 있다. 고독, 우울, 충만같이 제목 속에 포함된 감정도 보편적이다. 그의 작품은 한지를 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긁어내기도 해서, 벗겨진 피부나 갈아엎은 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품의 거친 표면들은 작가가 화면 또한 살갗으로 간주함을 알려준다. 그가 선택한 ‘살갗 아래’의 관점은 비상이나 승화가 아니라, 계속되는 하강이자 반등이다.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블루칩 작가 6선
김명진 작가는 기존 동양화 작업이 보여주는 모필의 구사, 붓질을 대신한 콜라주로 형상을 연출한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외교통상부, 이중섭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경기문화재단 등이 있다.
이강욱, <아침 산책>,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과슈, 41×53cm, 2023년
이강욱, <아침 산책>,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과슈, 41×53cm, 2023년
이강욱, 산책에서 사색으로
이강욱의 작품은 천진한 아이의 그림처럼 어눌하다. 형식적 기법에 매몰되지 않았던 ‘문인화’ 같은 화법도 떠오른다. 종이에 드로잉 방식으로 작업하고, 소재가 한국적이어서 동양화 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이전에는 76×57cm 크기의 판화지나 한지 위에 먹, 콩테, 과슈, 아크릴, 파스텔 같은 재료를 썼지만, 최근에는 캔버스나 디지털 페인팅까지 확장됐다. 그의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 지형지물이나 동식물 등은 그가 평소에 산책을 많이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에게 산책은 길가의 풀이나 나무, 새나 산을 관찰하는 과정이자 사색이다. 또한 인간사회를 포함한 자연 관찰과 사색이 교차하는 시공(時空)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역시 시각적 산책을 권유한다. 현실에서 출발한 소재들은 신화적 상상으로 비약한다. 원근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은 환상과 현실이 중첩되며, 이 우주 속 존재들은 유사(類似) 관계로 이어진다. 작품이라는 소우주 속 존재들은 서로를 반사하면서 상호작용한다. 그가 가는, 또는 그리는 자연은 작은 원인이 예측할 수 없는 연쇄 반응으로 이어지는 변화무쌍한 무대가 된다.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블루칩 작가 6선
이강욱 작가는 1970년 충청북도 청주 출생으로, 충남대학교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3년 개인전 <이강욱 드로잉전>을 시작으로 2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선영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