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대부' 레이 달리오가 설립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가 전 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소비재 주식을 팔고 빅테크 비중을 늘렸다.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M7)으로 대표되는 AI 기술주들이 아직 저평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가 지난 5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주식 보유 현황 공시에 따르면 이 회사는 M7으로 불리는 7개 대형 기술주 중 테슬라를 제외한 애플, 알파벳(구글 모회사), 엔비디아,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브리지워터는 알파벳을 332만4416주 매입해 포트폴리오 내 비중을 1.6%에서 4.1%로 늘렸다. 1분기 말 기준 가격인 주당 150.93달러로 계산하면 5억175만 달러(약 6770억 원) 어치다.
엔비디아 비중도 0.74%에서 3.22%로 확대했다. 불과 지난해 3분기 0.1%에 불과했던 엔비디아는 반년 만에 포트폴리오 내 다섯 번째로 큰 종목이 됐다. 구글 등 M7 집중 매입…‘고평가’ 테슬라 제외
메타 비중은 1.32%에서 2.44%로, 마이크로소프트는 0.42%에서 1.23%로 확대했다. 아마존은 104만7891주(1억8901만 달러·약 2550억 원) 매수해 이번 분기에 신규 편입했다.
브리지워터는 애플을 2021년 매입했다가 같은 해 다시 팔았는데, 이번 분기에 184만2154주 사들였다. 3억1589만 달러(약 4270억 원) 규모다. 테슬라 주식은 매수하지 않았다.
브리지워터의 빅테크 비중 확대는 인공지능(AI) 시장이 거품이 아니라는 평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달리오는 지난 2월 링크트인에 올린 글을 통해 “M7은 거품이 약간 있지만 완전한 거품은 아닌 것으로 측정된다”고 밝혔다. 달리오는 1990년대 '닷컴 버블'의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시스코와 현재 AI 랠리를 주도하는 엔비디아를 비교하며 "주가 궤적은 비슷하지만 현금흐름의 경로는 상당히 달랐다"고 분석했다. 당시 시스코의 2년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100배에 달했던 반면 지난 2월 기준 엔비디아는 27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 주식 시장은 과거 투기적인 버블 상태와 달리 AI 기술 발전에 기반한 성장세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달리오는 "거래량으로 봤을 때 M7 거래 규모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해 있지만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과 비교했을 때 투기 열풍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달리오는 자신이 만든 가치평가 지수 'Z'를 통해 평가한 결과, 알파벳은 0.81, 메타는 0.70으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평균인 -0.01보다 저렴하다고 추정했다. Z가 0보다 높으면 저평가, 낮으면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반면 테슬라는 -0.88, 애플은 -0.4로 현재 가격이 비싸다고 봤다. M7 평균값은 0.04다. Z 지수의 구성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달리오의 이런 예측이 들어맞았다. 올해 2분기 AI 랠리로 빅테크들이 급등했다. 지난 6월 13일 기준 엔비디아 주가는 1분기 말보다 63.84%, 애플은 18.52%, 마이크로소프트는 6.75% 올랐다. 같은 기간 테슬라 주가는 9.61% 떨어졌다.
브리지워터는 포트폴리오에서 필수소비재 주식들을 대거 정리했다. 최다 매도 종목은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핀둬둬였다. 154만4497주, 1억7954만 달러(약 2420억 원) 규모다. 핀둬둬는 전 세계에 진출한 저가 쇼핑 플랫폼 테무를 운영하고 있다.
테무 운영사 핀둬둬 매도…코카콜라 등 소비재도 정리
테무는 지난해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으나 올 초부터 반중 정서를 앞세운 미 정치권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다. 지난 2월 미셸 스틸 연방하원의원(공화당·캘리포니아) 등은 테무가 신장위구르자치구 강제노동을 통해 상품 판매 가격을 낮추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달리오는 지난해부터 부채 문제를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하며 중국 주식을 대거 정리해 왔다. 그는 지난 3월 "중국이 부채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1990년대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위해 부채 축소(디리버리징)가 필요하고 통화정책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브리지워터는 지난해 3분기 핀둬둬와 중국 온라인 개인 간(P2P) 대출 업체인 루팍스홀딩스, 중국 전기차 제조사 샤오펑·리오토·니오 등의 비중을 대거 축소했다.
또 브리지워터는 코카콜라 비중을 2.64%에서 1.95%로, 코스트코를 2.54%에서 1.98%로, 맥도날드를 2.25%에서 1.74%로 축소했다. 시스코시스템즈(0.54%→0.03%)를 제외한 상위 5개 매도 종목이 모두 소비재였다.
개별 기업의 가치보다 경기 흐름을 중시하는 매크로 투자자로 분류되는 달리오는 증가하는 미 국가 부채가 국내 소비 수요를 둔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그는 지난 5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높은 (국가) 부채 수준과 높은 금리로 인해 미국 국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 적자로 인해 미국 부채가 늘어나면 미국 채권 매력도는 떨어지고(가격 하락) 금리는 오른다.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소비자 지출을 압박할 수 있다.
이번 분기 소비재 비중이 줄어들면서 금융주가 24.07%로 브리지워터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됐다. 필수소비재가 23.48%, 헬스케어가 17.75%, 임의소비재가 14.04% 순이다. 정보기술(IT)과 통신도 각각 5.51%, 3.11%를 차지하고 있다.
브리지워터 포트폴리오의 전체 가치는 전분기보다 10.61% 늘어난 198억 달러(약 26조8500억 원)로 집계됐다. 1분기 기준 총 814개 종목을 보유하고 있다.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42개), 폴 싱어의 엘리엇매니지먼트(70개) 등 다른 투자자들보다 종목 수가 많다. 이는 달리오가 외부 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사계절 내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올웨더'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보유한 종목은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아이셰어즈코어S&P500 ETF(상장지수펀드)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5.57%다. 아이셰어즈코어신흥국 ETF(4.87%), 구글(4.1%), 소비재 제조사 프록터앤갬블(P&G·3.37%), 엔비디아(3.22%) 등이 뒤를 이었다.
김인엽 한국경제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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