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다.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자동차를 하드웨어가 중심인 기계로 봤지만 이제는 자동차를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일종의 컴퓨터로 본다. 바로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앞으로 자동차의 가치는 차량용 OS가 좌우한다.
[스페셜] 미래차 경쟁의 최전선
1월에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4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게 목격됐다. CES 2024에서 부각된 자동차 산업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포티투닷(42dot)을 중심으로 SDV 플랫폼 로드맵과 전략을 발표했고,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 벤츠는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의 서비스를, BMW는 인포테인먼트 경험에 초점을 맞춘 운영체제를, 혼다는 독자적인 차량용 운영체제 개발을 발표하며 이제 자동차의 방점은 소프트웨어에 있음을 더욱 명확히 했다.
이러한 대전환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이를 주도한 기업은 테슬라다. 그러니 우리의 논의는 테슬라에서 시작된다.
테슬라가 문을 연 패러다임 전환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 테슬라는 자동차 부품을 소프트웨어로 통합·제어하는 시스템을 구현하고,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자동차의 성능과 기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이면서 자동차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켰다. 또한 2014년 HW 1.0 플랫폼(1세대 자율주행용 시스템)을 출시하면서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미래 자동차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후 수많은 전자제어장치(ECU)를 통합,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량 전체를 제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키텍처를 구조화한 테슬라는 2019년 자체 개발한 시스템 온 칩(SoC)을 적용한 HW 3.0 플랫폼까지 발전시키면서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 산업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그렇다면 SDV란 과연 무엇인가. SDV는 차량의 주요 기능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구동되는 자동차다. 이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자동차를 하드웨어가 중심이 되는 기계로서 봤으나 SDV 시대에는 자동차를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일종의 컴퓨터로 본다. 따라서 SDV 시대에 차량의 가치와 핵심 경쟁력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된다.
SDV가 부상하게 된 배경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미래 자동차 발전 방향에서 소프트웨어가 핵심이 되고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 자동차는 차량 구동, 제어, 유지보수 측면에서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야 하므로 SDV가 발전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율주행과 같이 차량에 필요한 기술로 인해 소프트웨어 복잡도가 증가해 기존처럼 분산형 제어 시스템으로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SDV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복잡한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작동할 경우, 이를 통합해 제어하는 것이 차량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작동시키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SDV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으로 중앙집중형 또는 영역별로 집중된 소프트웨어에 기반해 동작하므로 통합형 제어 시스템을 지향한다.
마지막으로 차량 연비(전비) 향상과 소비자 편의성 확대 니즈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서도 SDV가 주목받았다. 이는 차량의 물리적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분산형 제어 시스템을 유지할 경우 각 시스템을 연결하기 위해 와이어 하니스(wire harness·배선 다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차량의 무게가 대폭 늘어날 뿐 아니라 소비자가 차량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든다.

따라서 SDV는 향후 자동차 산업이 나아갈 방향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SDV 시장의 성장세로 증명된다. 다만 SDV 시장이 초기 단계의 시장이므로 조사기관마다 추정한 시장 규모는 상이하다. 그러나 SDV 시장의 성장세는 유사하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SDV 시장은 2019년 2315억 달러에서 연평균 3.65%로 성장해 2022년 2578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2023년부터 2028년까지는 연평균 9.15%씩 성장해 기존 성장률의 약 2.5배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전자 아키텍처의 복잡성 증가
SDV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요소를 확보해야 할까. 핵심 요소로 차세대 전기·전자 아키텍처(E·E architecture), 하드웨어 플랫폼,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들 수 있다. 즉,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전기·전자 아키텍처, 성능과 신뢰도를 모두 확보할 수 있는 하드웨어 플랫폼, 서비스를 추가·변경·삭제하면서 재구성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그것이다.
차세대 전기·전자 아키텍처는 기능별로 분산돼 제어하는 기존 ECU 중심의 아키텍처가 아닌, 통합된 제어기 3~4개 형태의 소프트웨어 중심 아키텍처를 말한다. 전기·전자 아키텍처란 차량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통합시켜 원활하게 작동시킬 것인가에 대한 설계도라 할 수 있는데, SDV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아키텍처가 필요하다.
기존 전기·전자 아키텍처의 경우, 수십 개의 ECU가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기능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한 개의 기능을 업데이트한다고 해도 다수의 ECU가 업데이트돼야 하므로 소요되는 시간이 많았다. 또한 SDV가 지향하고 있는 바인 ‘소프트웨어를 유연하게 추가·변경·삭제해 자동차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고’하려면 차량 설계 당시에 고려되거나 개발되지 않았던 신규 기능이 꾸준히 추가돼야 하는데 이럴 경우 기존 ECU 중심의 전기·전자 아키텍처는 복잡성이 더욱 증가하게 된다.

또한 하드웨어 플랫폼은 강력한 컴퓨팅 파워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점차 고도화되며 자율주행 레벨3 또는 레벨4 수준의 기술을 구현하려면 영상 등 방대한 데이터가 입력돼야 할 뿐만 아니라 단시간 내 처리, 분석해야 한다. 자율주행과 더불어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도 점차 AI 기반의 소프트웨어 활용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점도 컴퓨팅 파워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이다. 따라서 SDV는 고성능 프로세서를 토대로 한 하드웨어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SDV를 구현하기 위해서 ‘서비스에 따라 재구성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도 필요하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의하면, 서비스에 따라 재구성 가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란 차량 설계 시점에는 고려하거나 개발되지 않았던 서비스를 언제라도 차량에 탑재할 수 있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삭제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의미한다. 여기서 서비스란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차량 기능을 표현하는 단위를 말하는데 직관적으로 비교하자면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서비스에 따라 재구성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운영체제(OS)를 포함한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필수적이다. 특히 SDV 개발의 초석이 되는 것이 차량의 OS인데 스마트폰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스마트폰에서 서비스(앱)를 자유롭게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 OS가 각종 서비스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제어, 관리하면서 스마트폰 전체 성능을 최적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을 차량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차량용 OS다. 이 점이 SDV 구현을 목표로 하는 완성차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기업이 차량용 OS를 주목하는 이유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SDV로의 전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 하나는 서비스에 따라 재구성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완성차 제조사 입장에서 자유자재로 서비스를 올리고 개선하려면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조에서 차량용 OS를 각 사의 니즈에 맞게 구성해야 한다.

차량용 OS 시장을 OS 유형으로 구분하면 QNX, 리눅스, 윈도우, 안드로이드 및 기타로 나눌 수 있다. 마켓앤마켓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블랙베리의 QNX가 차량용 OS 시장(금액 기준)의 약 46%를 차지하고 있다. 리눅스는 전체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윈도우와 안드로이드가 잇고 있다. 기타 분야에는 완성차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OS 등이 포함된다.
블랙베리 QNX 선두… 역동적 시장 변화 예상
OS 유형을 바탕으로 차량용 OS 시장의 발전 양상을 살펴보자. QNX는 전통적으로 완성차 기업으로부터 널리 채택돼 활용되고 있는 차량용 OS다. 완성차 업계는 여전히 QNX를 활용할 것으로 보이나, 연평균 성장률은 리눅스나 안드로이드에 비해 현저히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차량용 OS 시장을 전망한 데이터를 보면 QNX의 동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2%로 나타나는데 이는 리눅스가 11%, 안드로이드가 67%씩 성장하는 것에 비해 낮은 수치다.

특히 안드로이드의 성장률은 매우 높게 전망되는데, 이는 다수의 소비자가 안드로이드 OS 사용에 익숙하고, 플레이 스토어 포 카(Play Store for Cars) 앱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는 점에 기인한 것이다. 이렇듯 리눅스와 안드로이드 성장세의 핵심은 오픈소스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QNX도 인식해 QNX 역시 RTOS(Realtime OS)를 오픈소스화할 것이라 발표했다. 이로 인해 차량용 OS 시장, 특히 인포테인먼트 OS 분야는 향후에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랙베리(QNX), 구글(안드로이드) 등과 같이 OS를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시장을 주도하는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 외에 완성차 기업도 자체적으로 OS를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OS는 OS 유형 중 기타 분야에 속하며, 이들 외에도 기타 분야에 속하는 OS 중에는 애플의 iOS를 들 수 있다. iOS를 토대로 애플이 제공하는 것이 ‘카플레이(CarPlay)’다. 카플레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Android Auto)’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및 경험(UI·UX)을 차량으로 그대로 옮겨오게 해준다.
그러나 구글의 경우,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OS 버전인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를 추가적으로 선보이면서 완성차 업계가 각기 차별화된 OS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나 애플의 경우 카플레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완성차 기업이 카플레이를 자사 차량에 탑재할 수 있도록 협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차량용 OS 시장은 향후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완성차 제조사들과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은 각기 차별화된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새로운 수익원, 빅테크도 눈독
전통적인 완성차 기업은 각 사별 전략적 방향에 따라 자체 OS 개발과 외부 OS 채택 전략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 폭스바겐, 토요타 등은 각각 현대차그룹의 SDV 전용 OS, 폭스바겐의 VW.OS, 토요타의 아린(Arene) 등 자체 OS를 개발 중이다. 반면 볼보 등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활용해 차량 전체의 통합 제어 기능을 구현하고자 한다.

차량용 OS 시장에서는 인포테인먼트 OS를 중심으로 빅테크의 움직도 활발하다. 빅테크는 왜 차량용 OS 시장에 뛰어드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 자동차가 스마트 기기로 자리매김하면서 빅테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중요한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차의 발전 방향이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인 만큼, 앞으로 자동차에 있어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빅테크는 완성차 업체보다 고객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고객 데이터를 차량에서 수집되는 데이터와 연계하면 차량 내 구독 서비스 등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빅테크는 차량용 OS를 중심으로 자동차 시장에 진입해 영향력을 점차 높여 가고 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