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눈에 띄는 호실적과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폭발적인 주가 상승률을 기록한 기업으로 꼽힌다. 적자 기업에서 밸류업 지수 종목에 포함되기까지, HD현대일렉트릭의 반전 서사에 주목해본다.
[커버스토리] 밸류업 숨은 보석을 찾아라밸류업 CEO 비금융 부문 1위 - 조석 HD현대일렉트릭 사장

여기에 더해 한국거래소(KRX)가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마련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 종목에도 HD현대일렉트릭이 포함됐다. 시장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이벤트다. 그동안은 가파른 실적 성장을 중심으로 회사의 가치를 증명했다면, 밸류업 열풍을 계기로 새로운 주주 환원 정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김광식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한국 밸류업 지수에 깜짝 포함돼 신규 주주 환원 정책을 설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분 구조와 모회사의 자금 충당 소요를 고려한다면 배당을 통한 주주 환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모회사 배당정책을 감안한다면 올해 배당금은 4500원(배당 성향 31.0%) 수준”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조 사장이 HD현대일렉트릭(당시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로 선임되기 직전 상황은 어땠을까.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HD현대일렉트릭은 국제 유가 하락, 한국전력공사 적자 등 어려운 대외 여건이 이어지며 2년 연속 10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던 상황이었다. 2018~2019년은 그야말로 ‘창사 이래 최악의 부진’이었다는 게 HD현대일렉트릭 내부의 평가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시장의 위축이 큰 타격을 줬다. HD현대일렉트릭의 주력 시장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2016년 저유가 기조에 접어들었고 자연히 재정 여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었다. 신도시 개발과 같은 전력 인프라 개발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서 HD현대일렉트릭이 받던 변압기 발주도 점차 줄기 시작했다. 회사의 실적을 견인하던 중동 변압기 시장의 수주 물량이 줄자 울며 겨자먹기로 한정된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출혈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비슷한 시기 또 하나의 주력 시장이었던 미국에서 고율의 변압기 반덤핑 관세를 무는 일까지 벌어진 탓에 HD현대일렉트릭은 더더욱 중동 시장에서의 수주 경쟁을 놓기 힘들어졌다. 과도한 관세로 미국 시장 수출을 크게 줄이고 있는 와중에 중동 시장마저 놓으면, 회사로서는 이렇다 할 활로를 찾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국내 시장도 탈원전 기조로 업황이 안 좋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통상 수주 실적은 1년쯤 뒤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에 반영된다. 2016~2017년부터 시작된 저가 수주의 결과가 2018년 -1006억 원, 2019년 -1567억 원의 영업손실로 이어지게 됐다. 여기까지가 조 사장이 회사에 합류하기 전까지의 스토리다.
“저가 수주 그만 하자”…실적 턴어라운드의 시작

결과적으로 그가 HD현대일렉트릭에 취임하게 된 타이밍도 회사가 비상경영 체제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였다. 취임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된 조 사장은 곧바로 고강도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조 사장 취임 이후 적자 수주는 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주 전략이 수정됐다”며 “단순히 물량을 채우기 위한 수주, 즉 지나치게 적자 위험이 높은 수주는 아예 계약을 취소했다. 외형적 매출 확대보다 수익을 극대화하는 수주 기조를 제일 큰 원칙으로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굉장히 짧은 주기로 사내 회의를 반복했다”며 “직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개선점을 찾기 위한 토의도 진행하고, 문제점을 발견하면 끝까지 해결 방안을 찾아 과제를 완수해보는 경험을 했다. 이것이 경영 혁신 프로그램의 본질이었다”고 말했다. 경영 혁신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총 770명의 임직원이 참여해 1700여 개의 과제를 수행했다.
결국 HD현대일렉트릭은 조 사장이 경영을 맡은 첫해인 2020년 매출액 1조8000억 원, 영업이익 727억 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 이후 글로벌 탄소중립 실현 기조가 강화되며 전력기기 시장 상황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회사의 영업이익은 2022년 1330억 원, 지난해 31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6.3%, 11.7%씩 성장했다.


전력 슈퍼사이클(초호황)이 본격화하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성도 충분하다. 각종 위기설이 거론되는 여타 산업군과 달리, 전력 분야는 본격적인 호황의 기대감 덕에 들뜬 분위기다. 그 배경으로 인공지능(AI)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AI로 인한 수혜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일단 HD현대일렉트릭이 최근 호실적을 이룬 데는 미국을 중심으로 신규 전력망 구축과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늘어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법안 도입을 계기로 신재생 발전 신규 투자와 그에 따른 송배전망 구축, 노후화된 전력망 교체 수요까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미 2030년도 납기 물량까지 요구하고 있을 정도로 미국 시장에서는 변압기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유럽 지역도 유럽연합(EU)의 ‘넷제로 산업법’을 바탕으로 신재생 발전 확대가 요구되는 분위기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탈탄소 정책으로 태양광 단지, 풍력 단지가 늘어나고 있는데, 도심과 많이 떨어진 곳에 위치해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송배전 라인을 새로 구축할 일이 많아졌다”며 “그 과정에서 변압기 수요가 굉장히 크게 늘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 시장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배전기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충북 청주에 중저압 차단기 신공장 건설 투자도 공시했다. 배전기기 중에서도 중저압 차단기는 전력 시스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선 선로 안에서 높은 전압으로 잘못 흐르는 전류를 차단하는 장치로, 화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현재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변압기 위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결국 전력을 차단해주는 중저압 차단기의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중저압 차단기 사업의 비중도 지금보다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전력기기 사업은 정해진 시장 크기 안에서 노후화된 기기를 교체하는 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사이클 산업에 가까웠다. 하지만 AI를 비롯한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시장의 규모 자체가 달라졌다.

아울러 조 사장은 성장과 내실의 균형 속에 HD현대일렉트릭의 미래를 위한 준비도 시작하고 있다. 전력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로 시장의 요구가 다양해지는 가운데, ‘친환경’과 ‘에너지 효율화’가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에 조 사장은 스마트·신재생에너지 솔루션 사업을 중심으로 전력 산업의 구조적 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
지난 2022년 2월에는 스마트 그리드 및 신재생 발전 핵심 기술인 ‘전력 변환 장치’ 분야의 독자 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HD현대플라스포)을 인수하며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역량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ESS 사업 분야에서 쌓아 온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전해, 연료전지 등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9년부터 국내 주요 산업단지 9곳에 에너지 관리와 에너지 효율화에 기여하는 ‘산업단지 에너지 관리 시스템(CEMS)’을 구축하고, 산단 내 입주 기업 630개를 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및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 에너지 관리 플랫폼을 제공하는 등 국책사업에 참여 중이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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