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의 퇴직연금 전략은 ‘양’보다 ‘질’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고객의 성향에 맞지 않는 상품을 수백 개 늘어놓는 것보다, 개인에게 꼭 맞는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제안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을 만든다는 신념 때문이다.

[커버스토리] 퇴직연금 강자들-하나은행
하나은행, 최적의 퇴직연금 상품 선별…‘연금닥터’로 비교 진단 제공
“상한 과일은 솎아내고, 질 좋은 과일만 엄격히 선별해 맞춤형으로 선보이는 전략이죠.”

하나은행의 퇴직연금 상품 전략을 단적으로 빗댄 말이다. 수익률 개선이 어렵거나 전망이 안 좋은 상품은 제외하고, 개인에게 꼭 맞는 최상급 상품을 추려 포트폴리오 형태로 제안한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퇴직연금 상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고객이 고민해야 하는 시간은 덜어주되, 최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조영순 하나은행 연금사업단 부행장은 “대형마트에 방문했다고 생각해보자. 과일이 대량으로 쌓여 있는데 그중 흠 없는 과일을 고객이 일일이 가려내려면 어렵기도 하고 시간이 소요된다.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라며 “상품 라인업을 수백 개에서 1000개 단위로 모두 선보인 뒤 그중에서 알아서 고르라고 한다면 제대로 골라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고 설명했다.

DC형 1년 수익률, 은행권 1위

금융사들의 퇴직연금 경쟁이 심화되면서 ‘상품 수’를 둘러싼 경쟁에도 불이 붙는 분위기지만, 과도하게 많은 상품을 선택지로 제공하는 게 오히려 고객의 투자 선택에 과부하를 불러올 수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관심이 높아진 상장지수펀드(ETF)의 경우, 다수의 증권사가 법적으로 판매 가능한 800여 개의 상품을 모두 선보이는 전략을 취한다. 반면 하나은행은 퇴직연금 자산 운용에 적합한 154개의 상품을 선별해 제공하는 식으로 공략법을 달리했다. 물론 이 또한 시중은행 퇴직연금 ETF 중에서는 많은 수준인 데다, 최근 잔액 1조 원을 돌파하는 등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게 하나은행 측의 설명이다.

조 부행장은 “퇴직연금은 초장기로 가져가야 하는 자산이라 무엇보다도 변동성을 줄이며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퇴직연금에 적합한 상품을 선별하는 게 중요하다. 퇴직연금에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제공하고 면밀하게 관리하는 것이 하나은행의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8월 수익률과 관리가 부진했던 타깃데이트펀드(TDF) 상위 상품의 판매를 과감하게 중단했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물론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신상품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은행권 최초로 채권 직접투자를 도입했고, 올해 4월에는 원금은 보장되면서 매월 이자액을 재투자할 수 있는 연금인출기 특화 상품 ‘원리금보장형 월지급식 기타파생결합사채(DLB)’를 금융권 최초로 도입했다.

조 부행장은 “하나은행의 핵심 경쟁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증권사 수익률이 은행을 앞설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주요 증권사 대비 높은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며 “상품 판매 이후에도 심도 있는 상품 분석을 통해 상품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하나은행의 퇴직연금 수익률 성과도 좋은 편이다.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수익률 공시에 따르면, 하나은행의 최근 1년간 퇴직연금 운용수익률은 지난 3분기 말 기준으로 확정기여(DC)형 원리금 비보장 상품 14.14%, 원리금 보장 상품 3.69%로 시중은행 1위를 차지했다. 이 중 DC 원리금 비보장형 수익률은 6분기 연속으로 시중은행 1위다. 확정급여(DB)형 원리금 보장 상품도 3분기 말 기준 7.31%로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다양한 솔루션으로 가입자 투자 참여 유도

가입자가 자신의 연금 수익률을 꾸준히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도 공들이고 있다. 처음 퇴직연금 상품에 가입할 때 어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가입자가 자신의 포트폴리오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수익률을 관리하는 ‘액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 부행장은 “계약형 퇴직연금의 특성상 고객이 운용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수익률이 잘 나온다. 실제로 연간 3~4회 정도씩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상품을 조정하는 고객들의 수익률이 그렇지 않은 고객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게 내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최은미 하나은행 연금상품지원부장은 “초개인화된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솔루션을 제공해 고객의 지속적인 투자를 유도하는 게 우리의 목표 중 하나”라고 부연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은행이 구축해 둔 시스템 중 하나가 ‘AI 연금 투자 솔루션’이다. 퇴직연금 가입 고객이 설정한 연금 자산 목표에 맞춰 은퇴 시점까지 개인의 투자 계획을 설계해주는 GBI(Goal Based Investment) 기반의 자산관리 서비스다. 은퇴 자산 적립에 대한 퇴직연금 가입자의 니즈를 환기하고, 구체적인 포트폴리오까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모바일을 통해 개인형퇴직연금(IRP), DC 등 연금 자산을 진단받을 수 있는 ‘연금닥터 서비스’도 제공한다. 같은 연령대 고객과 비교해 자신의 수익률, 거래 형태, 적립금 규모 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개선점을 반영한 포트폴리오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다. 자신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2%인 데 반해 또래 연금 가입자들은 5%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비교해주는 식이다. 가입자가 자신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챗봇·이메일·전화 상담까지 도와준다.
하나은행, 최적의 퇴직연금 상품 선별…‘연금닥터’로 비교 진단 제공
[미니 인터뷰]
조영순 하나은행 연금사업단 부행장
“언제든 상담 가능한 채널이 강점…글로벌 분산투자 필수”
하나은행, 최적의 퇴직연금 상품 선별…‘연금닥터’로 비교 진단 제공
최근 금융권의 퇴직연금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증권사 등 타사와의 경쟁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하나은행의 경쟁력은.
“증권사와 비교했을 때 은행의 가장 큰 장점인 ‘다양한 채널’을 강점으로 살리려고 고민하고 있다. 퇴직연금과 관련한 상담이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가서 의논할 수 있는 경로를 많이 마련하려 한다. 현재 하나은행은 연금 전문 컨설턴트의 방문 상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연금전문가가 고객을 직접 찾아가 퇴직연금 전반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별 포트폴리오도 제공한다. 여러 퇴직연금 사업자가 벤치마킹하고 있을 정도로 하나은행만의 독보적인 서비스다. 지난해부터는 연금 VIP 고객을 위해 전국 7개 영업점에 ‘연금더드림 라운지’를 개설했다. 1억 원 이상 연금을 보유한 고객을 대상으로 연금 자산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세무사 등 전담 직원을 배치했다. 또 올해 10월에는 그룹 차원의 뉴시니어 브랜드인 ‘하나 더 넥스트’를 출범했다. 퇴직연금을 포함해 뉴시니어 세대의 캐시 플로 형성에 대한 전반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수익률 개선을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금융 시장이 상승하면서 수익률은 양호해졌지만 원리금 보장 상품을 포함한 전체 퇴직연금 장기 수익률은 연금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아직 낮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84%가 투자 상품이 아닌 원리금 보장 상품에 가입돼 있다 보니 시장의 상승에 따른 수익률을 향유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연금 선진국의 경우 예금성 자산의 비중은 통상 10% 미만으로 매우 적고, 대부분 투자 상품으로 운용해 연평균 8~10% 수준의 높은 장기 수익률을 구가하고 있다. 결국 고객들은 예금 이상의 수익률을 원한다. 퇴직연금을 예금 위주로 구성하기보다는 투자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장기 수익률과 직결된다. 하나은행도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양질의 투자 상품 비중을 확대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두고 있다.”

퇴직연금사업자를 선택하려는 고객에게 조언한다면.
“보통 증권사로 퇴직연금 실물이전을 원하는 고객의 경우 증권사로 이전하면 수익률이 개선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전 결정을 하기 전에 금융감독원에서 실제 고객 수익률을 산출해 매분기 제시하는 수익률 공시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또 퇴직연금 자산 운용을 할 때는 예금 비중을 줄이고 적절한 글로벌 분산투자를 권한다. 국내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연금 선진국 대비 과도하게 높은 예금 비중이 주요인이다. 장기 투자인 퇴직연금 자산 운용을 할 때는 단기적인 손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선진국 중심의 글로벌 분산투자가 필수다.”

퇴직연금과 관련해 내년 유망한 투자 섹터나 전략은.
“내년에는 트럼프 정부의 본격적인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 인하 등 친기업 정책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 자체는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책에 따른 산업(섹터)별 차별화와 불확실성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섣부른 섹터 베팅보다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등 인덱스 중심의 투자를 권한다. 또한 채권은 현재 기준금리 인하 초입인 만큼 내년에도 투자가 유효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환헤지 비용이 1.5% 내외로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채권 투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우가 많아 보인다.”

향후 퇴직연금 시장을 전망한다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10여 년 후 국민연금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한다는 전망이 많다. 자산 운용의 측면에서 보면 낮은 수익률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에 수익률 제고를 위한 금융사 간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많이 가져온다는 의미보다는 시니어 고객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현재 50~60대 중 자산을 이전하지 않고 아직 보유하고 있는 뉴시니어들이 많다. 그런 고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게 금융사의 큰 과제다. 퇴직연금은 뉴시니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중간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시장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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