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다수의 나라들이 철도 지하화를 계기로 낙후된 주변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산업구조 전환을 시도해왔다. 대만 가오슝, 프랑스 파리 리브고슈, 일본 시부야, 독일 슈투트가르트21, 홍콩 구룡역 등 해외 사례를 통해 철도 지하화의 방식과 도시재생 전략을 짚어본다.
[커버스토리]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도시들이 삶의 질 개선과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후화된 철도 시설을 지하화하거나 이전함으로써 지상 공간을 새로운 공간 자원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들은 그 도시의 도시재생 전략과 결합돼 진행되고 있다. 철도로 단절됐던 도심 공간에 공원, 보행로, 광장 등의 공공 공간을 조성하고, 주거·상업·문화 기능이 어우러진 복합 개발을 통해 새로운 도시 중심지를 형성하는 것이 공통된 목표다.
이를 통해 도시 미관을 개선하고 토지 이용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낙후된 주변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산업 구조 전환까지도 시도하고 있다. 기후 온난화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써 교통 인프라의 현대화(고속철도 도입·지하철 연계 등)를 통해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하려는 전략도 담겨 있다.
대만 가오슝, 프랑스 파리 리브고슈, 일본 시부야, 독일 슈투트가르트21, 홍콩 구룡역의 다섯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철도 지하화의 방식과 도시재생 전략의 특징을 상세히 살펴본다.
대만 가오슝:
도시 단절 해소와 녹지축 조성

가오슝의 철도 지하화 사업은 주오잉(左營)역에서 펑산(鳳山)역까지 기존 지상철도 15.37km 구간을 전부 지하 터널로 대체하는 내용이다. 총사업비는 2006년 승인 당시 약33억 달러로 산정됐고, 2009년경 공사가 시작돼 2018년 10월 지하 선로가 개통됐다. 이 사업으로 기존 지상 선로와 건널목 7곳이 사라지고, 교차로 16곳도 제거돼 도심 교통 흐름이 크게 개선됐다. 지하 선로 건설 중에도 기존 열차 운행을 유지해야 했고, 공법상 난제가 있어 공사가 매우 어려웠지만, 무사히 지하화가 완료됐다 .

가오슝 철도 지하화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업이 두드러졌다. 예산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가오슝시도 일부 대응 투자를 하는 구조로, 초당적 협력이 이루어졌다. 가오슝 사례는 철도 지하화로 지역균형 발전과 교통 체계 효율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파리 리브고슈:
지하화와 데크 설치 병행…용도 혼합 공간 구성 구현


리브고슈 프로젝트는 철도 지하화와 덮개(deck) 설치를 핵심적인 공간 전략으로 삼았다. 오스테를리츠역을 드나드는 열차 선로 일부 구간을 인공 데크로 덮어서 그 위에 건물을 세우고 지상을 연결함으로써, 과거 철도 시설로 단절됐던 센 강변의 부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철도 선로를 부분적으로 지하화하거나 덮개를 씌움으로써 얻어진 토지에는 도로망과 보행로를 새로 구축하고, 센 강둑을 따라 단절 없이 수변공원과 산책로를 조성해 시민에게 개방했다. 그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센강 좌안 부두 일대가 근린공원과 문화 여가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파리 리브고슈 사업은 공공 주도의 개발공사(SEMAPA)의 역할이 컸다. 파리시가 출자한 공영개발공사가 지구 지정 이후 사업 계획 수립부터 토지 매입, 인프라 구축, 민간 매각까지 전 과정을 총괄했다. 민간 개발자 선정 시 공모 경쟁을 통해 도시디자인 품질을 담보하고 지역에 필요한 시설을 유치하면서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일본 시부야:
도심 철도 환승 거점의 입체적 재개발


시부야 재개발의 철도 지하화 방식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도큐 도요코선의 지하화다. 도요코선은 원래 시부야역 2층 역사에 종착하던 지상 노선이었으나, 2013년 도요코선을 지하로 내려 도쿄메트로 후쿠토신선과 상호 직결시킴으로써 시부야 부근 지상 공간을 확보했다. 이로 인해 시부야역 동쪽의 선로 부지가 비게 됐고, 그 자리에 시부야 히카리에 등 초고층 복합건물이 세워졌다. 또한 JR사이쿄선 선로를 이설하는 공사도 진행돼, 2020년에 사이쿄선 승강장이 야마노테선 승강장 바로 옆으로 이전됐다. 이를 통해 환승 동선을 단축하고, 동시에 이전에 사이쿄선 선로가 차지하던 지상 공간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지하철 긴자선 시부야역도 종래보다 남쪽으로 이동해 히카리에 건물과 직접 연결되도록 개량됐다. 이러한 일련의 철도 인프라 조정으로 시부야역 구내는 입체 환승센터로 재편성되고, 지상·지하 공간 이용이 최적화됐다.
철도 정비와 함께 시부야에서는 4대 지역에 걸친 역세권 복합 개발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시부야 히카리에(2012년 준공·183m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다. 지하와 데크로 시부야역과 연결되고, 내부에 대형 상업시설, 오피스, 극장(도큐 가극장) 등이 들어서 문화·상업 기능을 강화했다. 둘째는 시부야 스테이션 사우스 지역 개발로, 도요코선 지하화로 생긴 동쪽 부지(시부야 3초메 방면)에 33층 높이의 마천루가 건설됐고. 이 건물에는 구글 일본법인 등 첨단 IT 기업의 오피스, 호텔, 상점, 스타트업 육성시설 등이 입주해 시부야에 신산업 및 비즈니스 거점을 형성했다. 빌딩 저층부에는 지하화된 도요코선 선로 바로 위를 따라 신설된 보행로와 수변 공간이 있는데, 이는 지하로 숨어 있던 시부야강을 복원해 주변을 녹지화한 공공 공간이다. 좁은 콘크리트 수로에 불과했던 시부야강을 정비해 주변에 카페와 산책로를 조성함으로써, 시부야에 부족했던 열린 공간을 제공하고 환경친화적 도시재생을 실현한 것이다.
셋째 축은 시부야역 서쪽의 도겐자카 지역 개발이다. 이곳에는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라는 복합 빌딩이 건설됐는데 하층부에는 쇼핑몰, 상층부에는 오피스와 전망시설이 들어섰다. 특히 이 빌딩은 JR역과 지하철역 상부에 걸쳐 건설돼, 복잡한 철도 시설 위에 데크를 설치하고 그 위로 구조물을 올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철도 공간 위에 부가가치 높은 용도를 입체적으로 결합시킨 것이다.
넷째는 사쿠라가오카 지역으로, 이곳은 비교적 오래된 주택과 중소 규모 빌딩 밀집지였으나, 재개발을 통해 180m 높이의 오피스 타워와 150m 높이의 주거 타워 두 동이 건설됐다. 해당 건물들에는 외국인 비즈니스 임원을 겨냥한 고급 임대아파트, 의료·보육 시설, 스타트업 지원시설 등이 포함돼 시부야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용도로 설계됐다.
시부야 사례의 추진 과정은 철도 회사(도큐·JR동일본 등)와 행정기관(도쿄도·시부야구)의 협력, 그리고 민간 개발자들의 참여로 특징지어진다. 일본에서는 ’도시재개발법및도시재생특별지구’ 제도를 활용해, 용적률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신 공공기여(역사 개량·보행데크·광장 등)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시부야의 토지는 상당 부분 철도 회사 소유였기에 도큐나 JR사가 주도적으로 재개발사업시행자 역할을 맡고, 시와 구는 교통 개선과 인허가 지원을 담당했다. 사업 기간은 약 20년에 달하는 장기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상인회 및 토지주들과도 협의해 공사 기간 중 교통 혼잡 대책이나 주변 환경 관리에도 힘썼다. 역사와 철도선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면서도 민간 자본을 활용해 공공 지출을 최소화했고, 그 대가로 얻어진 현대식 건축물들은 시부야의 도시 경관과 기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래서 민간 주도의 대규모 역세권 개발 중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독일 슈투트가르트21:
철도 터미널 재배치와 갈등 관리의 교훈


슈투트가르트21의 지하화 방식은 매우 대담했다. 현재의 16선로 지상 역사를 철거하고, 그 남쪽 지하에 8선로 규모의 새로운 지하역을 건설해 열차가 동서로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도시 중심부 아래 총길이 30km 이상의 철도터널이 뚫리며, 슈투트가르트에서 인근 도시로 연결되는 신규 고속선(슈투트가르트~울름 노선)도 건설된다. 2010년 공사가 본격화된 이후 현재까지 다수의 터널 굴착이 완료됐고, 역사의 지하 구조물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계획 발표 초기에는 기대를 모았으나, 2000년대 중반 상세계획 확정 및 예산 승인(2007년) 즈음부터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강한 반대가 표출되면서 2010년에는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이슈로 인한 정치적 여파로 주정부의 정권 교체까지 이루어졌다. 결국 사업 강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2011년 11월 주 국민투표까지 실시됐다. 약 58.9%의 찬성으로 사업이 재기되긴 했지만 그 후에도 공사의 기술적 어려움과 추가 설계 변경 등이 이어지며 사업비 상승과 일정 지연의 문제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슈투트가르트21은 갈등의 조정 비용이 막대하게 추가된 셈이지만, 철도 지하화와 도시재생을 결합한 구상 자체는 획기적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받는다.
홍콩 구룡역:
철도역-부동산 일체화 모델을 통한 신도심 형성


1998년 공항철도 개통과 함께 문을 연 구룡역은 공항고속선과 도시철도(둥충라인)의 환승역으로서, 지하에 역사가 위치하고 지상은 거대한 플랫폼으로 덮여 있다. 이 플랫폼 위에 건설된 유니언 스퀘어는 약 13.5ha 부지에 약 10년 동안 단계별로 완성된 초대형 프로젝트로, 총 21동의 고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는 최고 118층에 이르는 국제상업센터(ICC) 빌딩을 비롯해, 30~70층 규모의 고급 주거타워 13동(약 5800세대), 호텔 2200실, 그리고 대규모 업무 공간을 갖춘 빌딩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건물들은 철도역을 감싸듯 주변에 배치되고, 중앙에는 약 6.5ha 크기의 옥상 정원 형태의 공원과 쇼핑몰이 위치한다. 모든 빌딩들은 연결돼 있고 단지 내 지하에는 버스정류장과 주차장 등이 있어 외부 지역과의 연계도 원활하다.
구룡역 개발의 가장 큰 특징은 MTR의 철도+부동산(rail plus property) 모델이 구현됐다는 점이다. 홍콩 정부는 철도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MTR에 역세권 부지의 개발권을 부여하고, MTR은 민간 디벨로퍼와 공동으로 부동산 개발을 시행해 판매 수익의 일부를 취하는 구조다. 엄밀히 말해서 구룡역 개발은 철도 중심의 신도시 건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홍콩 전체 도시 구조상으로 보면 전통 도심 기능의 분산과 재편이라는 도시재생적 의미도 가진다. 일각에서는 이 개발이 주변 지역과 단절되고, 주로 중상류층을 위한 고급 공간으로 조성돼 사회적 포용성이 낮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도 구룡역 사례는 3자 협력 모델(정부 주도 계획+공기업 실행 +민간 자본 참여)의 성공을 보여주며, 특히 토지와 철도 개발을 일체화한 점에서 도시철도 구축 사업의 모범 모델로 자주 언급된다.
김현아 가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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