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생산 기술력 활용해 대체육·건기식 사업 진출…사업 다각화 잰걸음

[비즈니스 포커스]
신동원 농심 회장. /농심 제공
신동원 농심 회장. /농심 제공
“스타트업처럼 활발하게 성장해 나가자.”
선친인 고(故) 신춘호 농심 창업자의 뒤를 이어 지난 7월 새롭게 농심의 수장에 오른 신동원 회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각오다. 신 회장은 ‘인생을 맛있게, 농심’이라는 새 슬로건을 공개하며 임직원들에게 ‘변화’와 ‘혁신’에 앞장설 것을 주문했다.

‘신동원호(號)’의 닻을 올린 농심이 신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라면의 뒤를 잇는 ‘캐시카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식품 사업 카테고리 확장에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의 출범과 함께 ‘뉴 농심’을 예고하고 있다.
‘뉴 농심’ 예고하며 식품 영토 확장‘79.0%.’
농심의 전체 매출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지난해 농심은 약 2조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약 2조1000억원이 라면에서 나왔다. 신라면·안성탕면·너구리·짜파게티 등 수많은 히트 상품들을 앞세워 한국 라면 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 중이기도 하다. ‘라면은 역시 농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라면을 앞세워 매년 안정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인 농심이 최근 사업 다각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은 미래 가공식품 시장을 바라보는 전망 때문이다.

농심에 따르면 라면과 같은 가공식품의 주요 구매자는 10~30대다. 문제는 출산율 등의 감소에 따라 10~30대 인구가 계속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라면 의존도가 높은 농심으로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낙관할 수 없는 시장 환경이 도래하고 있는 셈이다.
신동원 시대 막 오른 농심…신사업 향해 진격
신동원 시대 막 오른 농심…신사업 향해 진격
농심 관계자는 “이런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라면을 비롯한 내수 가공식품 시장은 사실상 오랜 기간 정체된 모습”이라며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지 않으면 덩치가 큰 식품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농심이 내놓은 답은 바로 사업 다각화다. 특히 농심은 50여 년간 식품 사업을 영위하며 식품 생산 노하우와 연구·개발(R&D) 기술 역량을 축적해 왔다. 이 같은 기술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며 더욱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완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현재 농심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본격적인 육성에 나선 신사업은 바로 ‘대체육’과 ‘건강기능식품’이다.

우선 농심은 올해 1월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을 선보이면서 앞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체육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한국의 대체육 시장 규모는 약 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아직은 시장 규모가 작지만 전망이 밝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급증하면서 점차 채식을 즐기는 ‘비거니즘(채식주의)’이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육은 식품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으로 있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KITA)는 보고서에서 대체육이 2030년 전 세계 육류 시장의 30%, 2040년에는 6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 육류 시장 규모를 추월할 만큼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세계와 롯데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대체육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농심 역시 대체육 시장의 성장성을 주목하고 올해 초 베지가든을 론칭했다.
추가 신사업도 계속 모색 중대체육은 실제 얼마나 고기 맛과 제품을 유사하게 만드느냐가 제품의 성패를 가른다. 농심은 이 부분에서도 자신이 있었다. 라면 건더기 스프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쌓아 올린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농심의 라면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고기 맛이 나는 건더기 스프가 실제 고기가 아닌 콩을 이용한 ‘대체육’이라는 것이다.

농심 관계자는 “짜파게티 등에 첨부된 고기 모양의 건더기는 원조 대체육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농심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자체적으로 ‘고수분 대체육 제조 기술(HMMA)’이라는 공법을 개발해 냈다. 식물성 원료를 사용하면서도 고기 특유의 맛과 육즙은 그대로 살린 대체육을 만들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베지가든 브랜드를 선보이게 됐다.
농심이 출시한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
농심이 출시한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
농심은 현재 떡갈비·완자·만두 등 다양한 대체육 제품을 만들어 판매에 돌입한 상태다.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더욱 알리기 위해 자사의 대체육 제품을 활용한 ‘비건 식당’의 문을 열 계획도 갖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베지가든의 연매출을 1000억원 규모까지 키운다는 목표다.

농심은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도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지난해 ‘라이필 더마 콜라겐’을 내놓으며 이 시장에 진출했다. 라이필 더마 콜라겐은 ‘먹는 화장품’ 이너뷰티(Inner beauty)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이너뷰티 시장 규모는 2011년 500억원에서 2019년 5000억원으로 커졌다. 불과 8년 사이 10배나 성장한 것이다.

농심이 콜라겐 시장에 진출하게 된 배경도 대체육과 비슷하다. 시장 전망도 밝지만 이미 관련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콜라겐은 농심이 라면 등의 식품을 개발하면서 진행해 온 단백질 기초 연구 역량을 토대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올해까지 누적 매출은 4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신사업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프로바이오틱스와 비타민 등 다양한 성분을 포함한 콜라겐 제품을 계속 내놓으며 이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농심의 식품 영토 확장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의 지휘 아래 현재도 농심 내부에서는 기존의 기술력 등을 활용한 신사업 진출 계획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최근 활발하게 검토 중인 신사업은 농심만의 식품 건조 기술을 활용한 가정 간편식(HMR) 사업이다. 국물 요리나 파스타 등에 넣어 바로 먹을 수 있게 건조한 고기나 다진 채소 등을 상품화해 출시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 역시 기존의 라면의 건더기 스프를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켜 진행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현재 신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사내 스타트업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업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들을 선별해 실제 사업으로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편으로는 식품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스타트업에 투자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