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재’ 인식 강한 수입차는 고금리 직격탄
국산차도 올해 초부터 판매량 크게 꺾여

[커버 스토리]
"벤츠 E클래스가 이렇게 안팔릴 줄이야"...‘고금리 덫’에 걸린 자동차 업계[‘신 3고’ 쇼크]


“E클래스 풀체인지 모델을 출시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대기 없이 바로 출고가 가능할 만큼 차가 안 팔린다.”

벤츠 자동차 딜러인 A 씨는 최근 내부의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벤츠 E클래스의 경우 매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베스트 셀링카’ 자리를 놓치지 않을 만큼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모델이다. 한국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에서 E클래스가 가장 많이 팔린 국가였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올해 1월 이런 E클래스의 완전 변경 모델을 한국에 내놓으며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1월부터 3월까지 E클래스의 누적 판매는 2018대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4223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과거 2016년 국내에서 벤츠 E클래스 풀체인지(완전 변경) 신차가 출시됐을 당시 ‘판매 대란’이 일어나며 차량을 출고 받기까지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A 씨의 설명이다.

고금리 여파가 자동차 업계에도 미치고 있다. 경기 불황, 주가 등 자산시장 부진에 높아진 금리까지 더해지자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이 같은 영향은 국내외 자동차 브랜드의 판매량에서도 나타난다. 국산차, 수입차 할 것 없이 최근 판매량이 동반 추락하고 있다. 특히 ‘사치재’ 인식이 강한 수입차는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락세가 뚜렷하다.
자동차 할부 이자 부담 가중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는 지난해 27만1034대를 기록하며 2022년(28만3435대) 대비 1만2401대 감소했다.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상승세가 꺾이며 업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올해는 더 심각하다.

3월까지 수입차 업계가 거둔 판매고를 보면 4년 만에 역성장을 기록한 지난해보다 훨씬 악화됐다. 이 기간 국내 신규 등록된 수입차는 5만4583대로 전년(6만1684대) 대비 11.5%나 줄었다.

벤츠뿐만이 아니다. BMW, 아우디, 볼보 등 한국 시장에서 잘나가던 브랜드들이 모두 판매량이 크게 떨어졌다. 한 주요 수입차 브랜드 관계자는 “업계 상황이 좋지 않았던 작년만큼만 팔아도 선방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판매가 신통치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잘나가던 ‘수입차 전성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내 완성차 업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145만2051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년(138만8476대) 대비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올해 분위기는 급격히 침울해졌다. 최근 판매량을 보면 왜 그런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대자동차·기아·GM 한국사업장(GM)·KG모빌리티(KGM)·르노자동차코리아(르노) 등 국내 완성차 업계의 내수 판매는 2월부터 3월까지 2개월 연속 두 자릿수 하락세다. 자칫하다간 역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들 사이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고금리가 자동차 판매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를 구매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자동차 산업과 ‘금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가격이 수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자동차를 전액 현금으로 사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대부분 선수금을 내고 나머지 금액은 자동차 업계가 거느리고 있는 캐피탈사 혹은 시중 카드사 등에서 제공하는 자동차할부금융 등에서 돈을 빌려 차량을 구입한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자연히 자동차 할부 금리도 치솟을 수밖에 없다. 차량 구매자 입장에서는 결국 매달 지불해야 하는 이자 부담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구매 포기하거나 미뤄”이로 인해 최근 많은 이들이 결국 차량 구매를 아예 포기하거나 미루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대기자는 많은데 막상 출고 순서가 돼서 이들에게 산정된 금리와 부담해야 하는 이자를 보여주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구매를 보류하는 이들이 많다.” 한 국산차 딜러는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액 현금으로 차량을 구매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기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자동차할부금융을 취급하는 6개 카드사(신한·KB국민·삼성·우리·롯데·하나)의 지난해 자동차할부금융 자산은 총 9조6387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9.8% 줄어든 수치다.

카드사의 자동차할부금융 자산은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왔으나 지난해 들어 10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카드사들은 그간 캐피탈사보다 낮은 금리를 앞세워 자동차 구매 고객들을 빼앗으며 자동차할부금융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왔다. 매년 성장했던 이 시장의 규모가 주춤할 만큼 고금리는 자동차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자동차할부금융 금리는 얼마나 올랐을까. 실제로 한경비즈니스가 확인해 본 결과 최근 몇 년 사이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자동차금융 금리는 약 두 배 높아졌다.

우선 수입차 시장을 보자. 개인의 신용등급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벤츠 코리아가 운영하는 캐피탈사 ‘메르세데스-벤츠파이낸셜’의 2022년 최저금리는 대략 4% 후반이었다. 최근 최저금리는 7% 중후반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경우 이자까지 계산했을 때 과거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차량을 구입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현대차·기아 차량 구매 고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현대캐피탈도 마찬가지다. 2022년 초만 하더라도 최저금리가 2.7%였는데 올해 초에는 5.4%로 급증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큰 변동이 없었지만 경기부진 등이 겹치며 이 금리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주식시장의 침체, 치솟는 물가, 부동산 시장의 불황 등으로 많은 이들의 자산이 감소하는 성향을 보이며 고가의 자동차 판매가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여기에 불어닥친 고금리는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라고 진단했다.

앞으로도 문제다. 당초 올해 기준금리 인하를 예고했던 미국이 국제유가 및 물가상승 등에 따라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한국도 당분간 현재의 고금리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높은 금리가 이어지는 한 국내 자동차 시장 역시 큰 폭의 판매 반등이 나타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물론 이런 상황을 고려해 자동차 업계가 고객들의 이자 부담 차원에서 대대적인 할인 프로모션 등을 전개할 경우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