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자들은 재건축을 ‘인허가의 예술’이라 표현한다. 안전진단 통과, 이후 건축심의부터 일반분양 등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 규제와 지자체의 도시계획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주목을 받아야 하는 강남권 재건축은 이 같은 상황에 더 민감하다

[스페셜] 총선 이후 재건축 시장
지난해 5월 터파기 공사가 시작된 서울 반포본동 반포주공 1단지 3주구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한국경제
지난해 5월 터파기 공사가 시작된 서울 반포본동 반포주공 1단지 3주구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한국경제
재건축은 재개발과 함께 조합이 시행을 맡아 수익을 내야 하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기도 하다. 조합과 조합원들에게는 공사비와 이자 비용뿐 아니라 수익을 가져다주는 일반분양 가격과 결과, 입주권이나 새 아파트 시세가 재건축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기존 아파트를 10억 원에 사서 조합원 분담금이 10억 원이 나오더라도 입주 후 아파트 가격이 30억 원이 된다면 이익이다.

이로 인해 재건축 사업은 양면적 특성을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어야 분양이 잘되고 집값이 올라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는 한편, 집값 급등의 원흉으로 지목돼 ‘규제 폭탄’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강남 불패’ 퇴색하나

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2022년 하반기 이후 2년여가 돼 가는 지금, 재건축 사업은 갖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몇 년 사이 2배 가까이 올라 버린 공사비와 이자로 인해 비용은 급증한 반면, 주택 시세가 떨어지고 수요 또한 감소하며 분양 수익은 장담하기 어렵다. 서울이어도 분양 가격이 인근 시세 대비 비싼 곳은 미분양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건축 사업마다 조합원 추정 분담금은 높아지고 있다. 노원구 상계주공 5단지 전용면적 31㎡ 소유주는 재건축 뒤 전용면적 84㎡ 타입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분담금 5억 원을 내야 한다. 한강 조망권으로 유명한 용산구 산호아파트는 3.3㎡(평)당 830만 원 공사비를 제시했지만 4월 15일 시공사 입찰 마감까지 단 한 업체도 사업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일 뿐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속한 재건축 사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통상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원하는 강남권 재건축 사업은 여타 지역보다 높은 공사비를 내야 한다. 더욱이 강남권 재건축 사업에 수억 원대 금액이 부과될 것으로 보이는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은 폐지되지 못한 채 아직도 적용되고 있다. 재건축 부담금의 근거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단어 그대로 재건축 사업으로 새 아파트를 지어 얻게 된 차익에 과세하는 제도다.

그러나 지금의 강남3구가 1970년대 영동 개발로 탄생한 만큼 다양한 입지, 규모, 사업 단계의 재건축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즉, 각 단지마다 재건축 시장에 닥친 불황이 미치는 여파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 다수는 향후 몇 년간 재건축 사업에 ‘강남 불패’는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상황은 쉽지 않다. 사업성과 입지 면에서 강남권 최고라 불렸던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디에이치 클래스트)조차 천문학적인 공사비 인상을 앞두고 있다.

재건축 업계에 따르면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올해 1월 기존 3.3㎡당 약 540만 원(2017년 협약서 기준)이었던 공사비를 830만 원으로 인상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조합 측에 보냈다. 총 공사비는 2조6363억 원에서 4조775억 원으로 2조 원 넘게 늘었다. 시공사 선정 당시 아이스링크, 오페라 극장이 들어가 화제를 모았던 특화 커뮤니티 구성도 일정 부분 조정이 불가피하다.
공사비 폭등·야당 압승…사면초가 강남 재건축
반포주공 1단지, 공사비 2조 원 증가

지난 부동산 상승기를 장식한 대표 지역으로 부동산 전문가 및 투자자 다수는 ‘반포’를 꼽는다. 2019년 10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아크로리버파크’ 실거래 가격이 3.3㎡당 1억 원(전용면적 84㎡·34억 원)을 기록하며 반포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반포는 2021년 강남구와 송파구에 위치한 일명 ‘압청대잠(압구정·청담·대치·잠실)’에 시행된 토지거래허가제까지 피해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에서 주택이나 토지를 거래할 때 구청장 허가를 받아야 하며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거주 용도로 주택을 매입해야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다.

반포1·2·4주구 재건축 사업은 일명 ‘구반포’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았다. 반포동 한강변 37만484㎡ 부지에 위치한 거대 단지인 데다 기존 5층짜리 저층 재건축으로 조합원당 대지 지분이 높아 사업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대로를 보고 마주한 반포 1단지 3주구(래미안 트리니원)도 미처 피하지 못한 재건축 부담금도 피해갔다. 반포1·2·4주구 조합은 2018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재시행을 앞둔 2017년 말 관리처분계획을 서둘러 수립해 신청했다.

관리처분인가는 이주 및 철거를 앞둔 절차로 사실상 재건축 후반 작업에 속한다. 2013년 조합을 설립한 반포1·2·4주구는 규제를 피해 인허가를 마친 뒤 서울 집값이 본격적인 급등에 돌입한 2017년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그런데 2022년 1월 이주까지 마친 상태에서 막판에 공사비 인상이라는 암초를 만난 셈이다.

반포1·2·4주구는 워낙 사업성이 좋은 데다 ‘신의 한 수’로 재건축 부담금까지 피한 덕에 이번 공사비 인상으로 인해 사업 자체에 큰 타격은 없을 전망이다. 다만 조합원 1인당 8000만 원에서 1억 원가량의 수익이 감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같은 강남권에서 비슷하게 ‘막차’를 탄 곳은 서초구 방배동 주택재건축이다. 이미 방배 5구역(디에이치 방배)과 6구역(래미안 원페를라), 13구역(방배포레스트자이)이 각각 착공, 이주를 마친 상태에서 분양 시기를 재고 있다. 이들 단지 역시 일찍이 관리처분인가를 마쳐 재건축 부담금을 피한 것도 공통점이다. 방배동 주택재건축은 노후 주택가에서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재개발 사업보다 기반시설 등 제반 여건이 좋은 단독주택가에서 진행되고 있다.

방배 주택재건축 중 가장 규모가 큰 방배 5구역은 지난해 이미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비 인상 요청을 받아 한국부동산원 검증까지 마쳤다. 총 공사비가 7730억 원에서 1조905억 원으로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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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는 초기·후기 재건축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반포1·2·4주구는 기존에 높은 대지 지분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까지 피해 워낙 사업성이 좋은 터라 공사비가 오른다고 해도 ‘1+1’로 전용면적 84㎡ 두 채를 받을 수 있는 조합원이 전용면적 59㎡ 두 채를 받는 정도의 손해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반포뿐 아니라 방배 5구역, 6구역처럼 이미 이주와 철거를 마친 곳은 추가 분담금이 늘어나더라도 일단은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조감도. 사진=한국경제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조감도. 사진=한국경제
당장 공사비 등 사업비 부담이 없는 초기 재건축도 사업 진행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착공까지 수년이 걸리는 데다 기본형 건축비 상승으로 분양가도 점점 더 오를 전망이다. 분양가상한제 지역에 위치한 주택의 공급 가격을 산정할 때 적용되는 기본형 건축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올해 3월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기본형 건축비는 ㎡당 203만8000원으로 지난해 9월 대비 3.1% 올랐다. 현재 서울에선 강남3구와 용산구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지구 단위 계획이 수립된 압구정 특별계획구역,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우선미(우성1차·선경·미도)’, 수서 까치마을아파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등이 초기에 속한다. 압구정 2~5구역의 경우 현행 ‘도시교통정비 촉진법’상 절차와 달리 정비구역 지정 단계를 건너뛰고 조합설립을 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의 6·17 대책에 따른 ‘재건축 아파트 2년 실거주’ 요건을 피하기 위해 기존 아파트 지구 개발 계획을 정비구역으로 갈음하고 2021년 조합설립을 서두른 것이다. 따라서 그해 일제히 조합설립을 마친 이후로 이제야 정비계획 수립을 준비하고 있다. 은마는 지난해 조합설립인가 뒤 건축심의를 준비 중이며 올림픽선수촌은 정비계획 수립, 수서 까치마을은 안전진단 신청 단계다.

반면 건축심의나 사업시행인가를 마친 중간 단계 재건축은 사업이 미뤄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업 규모가 작고 대지 지분이 크지 않은 10층 이상 중층 재건축 사업에서 이 같은 어려움은 심화할 수 있다. 조합원당 비용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신반포 18차 337동 재건축 조합은 최근 조합원들에게 분담금 12억1800만 원을 통보했다. 전용면적 111㎡를 보유한 조합원이 97㎡로 면적을 줄여 새 아파트를 받아도 이처럼 많은 돈을 추가로 내야 한다. 기존 용적률이 246%에 달해 일반분양 없이 1대1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반공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조합원들은 분담금을 내기로 결정했다.

주택 호황기에는 이처럼 나 홀로 아파트에 가까운 재건축 사업도 강남권에선 활발하게 추진됐다. 인근 아파트 값이 워낙 가파르게 오르면서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단지 중 이런 사례가 많다.

“패스트트랙보다 사업성 제고 정책 필요”

그런데 공사비 문제로 일부 단지는 시공사를 뽑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공사 규모가 작을수록 단위면적당 더 많은 공사비를 불러야 한다. 1동 규모 신반포 27차는 지난 3월 3.3㎡당 957만 원, 2동 규모의 신반포 16차는 3.3㎡당 944만 원 공사비를 제시했지만 각각 SK에코플랜트, 대우건설 1개 업체와 수의계약이 진행될 것이 유력하다. 개포 5단지에서도 대우건설은 수주 경쟁자로 알려졌던 포스코이앤씨가 실제 시공권 입찰에서 빠지며 단독으로 입찰참여확약서를 조합에 제출한 상태다. 재건축 후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로 거듭날 개포 5단지는 3.3㎡당 838만 원을 공사비로 제시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전 하락기와 유사하게 각종 재건축 규제 완화책을 내놓고 있다. 안전진단을 사업시행계획인가 전까지로 미룰 수 있는 ‘재건축 패스트트랙’이 대표적이다. 그로 인해 시장에 온기가 퍼져 나갈지는 미지수다. 이전 하락기와 달리 공사비 급등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인허가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분양가상한제 지역 신축 아파트에 대한 의무 거주 기간 폐지 등 사업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 정책은 각각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과 ‘주택법’ 개정이 필요한데 지난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이 일반적인 강남권에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공사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이미 이주한 사업장은 어쩔 수 없이 가겠지만 중간 단계 재건축 사업은 이 같은 조건에 따라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강 대표는 “강남 아파트 소유주 다수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재건축 사업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사정상 급하게 매도하려는 소유주들이 나타나면 결국 시세도 낮아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투자하겠다면 지금보다 몇 년 뒤 가격 조정이 진행됐을 때 강남 재건축을 매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민보름 한경비즈니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