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직업]
‘워터슬라이드 테스터’ 등 체험형 직업…‘YOLO족’에 각광
즐기며 돈 버는 ‘천국의 직업’ 있다
[한경비즈니스=김영은 인턴기자] 노란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4m짜리 실내 튜브 수영장에 ‘개구리 알(고흡수성수지 구슬)’을 가득 채워 넣는다. 수영장 물이 형형색색의 개구리 알로 뒤덮이자 그 속에 뛰어들어 휘적휘적 개구리헤엄을 친다.

청년이 개구리 알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끝나는 이 영상은 무려 830만 명이 시청했다. 이 영상의 주인공은 허팝(본명 허재원·29)이다.

그는 동영상 포털 사이트 유튜브에서 ‘허팝’이라는 이름으로 채널을 운영하며 매일 영상을 제작해 올린다. 영상은 주로 ‘어른들이 보면 혼날 법한’ 내용이다.

뜨겁게 달군 헤어세팅기로 대패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1m짜리 지우개똥을 이용해 뱀을 만든다. 어른들이 보면 목적을 이해할 수 없는 이 영상들을 보며 초등학생은 열광한다.

초등학생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허팝’ 채널의 구독자는 현재 130만 명이 넘고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의 조회수는 2500만이 넘는다.

◆ 노는 영상으로 대기업 초봉 번다

“노는 영상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안 했어요.”
허팝은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20대 중반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직장이 없었던 그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이민을 꿈꿨다. 택배 운전사 ‘쿠팡맨’으로 일하며 딱 2년만 돈을 벌고 세계여행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학창 시절 흥미와 소질이 있던 과학 실험 분야의 적성을 살리고 싶었다. 그는 “처음 영상을 찍기 시작한 시기에는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없었다”며 “어차피 한국을 떠날 것, 2년 동안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가자는 생각에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허팝이 취미로 매일 찍어 올린 영상을 보고 CJ E&M에서 섭외 연락이 왔다. 그는 2015년 4월부터 CJ E&M의 멀티 채널 네트워크(MCN) 관련 조직인 ‘다이아티비’에서 크리에이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허팝이 크리에이터로서 벌어들인 첫 달 수입은 2만원이었다. 그는 “처음에 부모에게 CJ에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부모님이 막내가 드디어 정신 차렸다며 양복을 사 입으라고 돈을 주셨는데, 그 돈을 모두 영상 제작에 썼다”고 말했다.

2만원으로 시작한 그의 현재 한 달 수입은 대기업 초봉 수준이지만 광고나 행사가 많을 때는 대기업 초봉의 3배까지도 오른다. 그가 자신의 흥미를 살려 취미로 시작한 크리에이터 일이 이제는 번듯한 직업이 된 것이다.

“놀면서 돈 번다”는 크리에이터 사례가 보여주듯이 1020 청년 세대가 직업을 선택할 때 선호하는 것은 안전성이나 높은 연봉보다 삶의 여유와 흥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직업 가치관의 변화 및 차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을 선택하거나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에 대해 10·20대 청년층은 ‘몸과 마음의 여유’가 1위를 차지했고 직업 안정성이 2위, 성취가 3위였으며 금전적 보상은 4위에 그쳤다. 반면 30대와 40대는 직업 안정성이 고려 순위 1위였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런 현상이 최근 트렌드 현상인 ‘YOLO(You Only Live Once)’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한번뿐인 인생, 현재를 즐기자’는 뜻의 욜로(YOLO)는 젊은 층의 현재 중심적이고 행복 지향적인 특성과 직결된다.

박 연구원은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불안감으로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현상과 맞물려 본인의 흥미와 적성을 살린 취미가 직업으로 전환되면서 취미와 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펭귄 먹이 주기부터 맥주 테스터까지
즐기며 돈 버는 ‘천국의 직업’ 있다
(사진) 1 천국의 알바 4기 펭귄 먹이 주기 알바 2 7기 산타 우체국 알바 3 14기 고래 보호 알바

현재를 즐기며 사는 젊은층이 늘어나며 즐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다양해지고 있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은 해외에 나가 이색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도 벌고 자유 여행을 하며 자신만의 경험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 ‘천국의 알바’를 운영하고 있다.

2010년 시작된 천국의 알바는 △호주 펭귄 먹이 주기 △아이슬란드 고래 보호 △프랑스 고성 복원 △핀란드 산타 우체국 등 이색 아르바이트 프로그램으로 매회 청년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급여뿐만 아니라 항공비, 현지 숙박비, 자유 여행비용도 별도로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하다.

스페인으로 천국의 알바를 다녀온 15기 오세림 씨는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돈을 목적으로 하여 낭만이 없지만 천국의 알바는 낭만적이었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며 “이색적인 경험을 통해 삶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실패를 맛본 사람들이나 삶의 여유가 없는 대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즐기며 돈을 버는 직업은 ‘테스터’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호텔 테스터’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호텔 테스터는 새로운 호텔에서 숙박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는 직업이다.

호텔 테스터는 룸을 비롯해 호텔 곳곳의 청결 여부를 확인하거나 식사 등 서비스를 평가한다. 월급은 약 170만원으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독일과 미국엔 ‘맥주 테스터’라는 직업이 있다. 맥주 테스터 역시 출장을 다니며 세계 각국의 맥주를 마시고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직업이다. 미국에선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모집한 맥주 테스터가 약 72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워터슬라이드 테스터’는 유럽과 이집트·튀니지·태국의 워터슬라이드를 이용해 본 후 평가와 소셜 미디어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직업이다. 연봉은 약 3400만원 수준이고 CNN 등 외신에서도 놀면서 돈 버는 ‘신의 직장’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감소 위협을 받는 와중에 이처럼 다양한 직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박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면서 수많은 인간 노동력이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고 서비스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즐기면서 돈 버는 직업’이 각광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