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68호 (1997년 03월 25일)

5공 이후 실무형 인사 '득세'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9

청와대비서실장은 국무총리, 안기부장, 집권당대표와 함께 권력의핵심을 이루는 소위 「빅 4」중 한 사람이다. 대통령에게 주요정책을 건의하고 대통령의 뜻을 내각에 전달하는게 주요 역할이다. 정책결정을 놓고 부처간이나 당정간에 이견이 있을 경우 직접 조정에나서 해결하는 것도 주요한 역할중 하나다. 총리와 수시로 업무를협의, 청와대와 내각의 의견을 조율하고 안보관계장관회의에 참석,안보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정리한다. 대통령과 저녁에 술잔을기울이며 개인적인 얘기도 나누는 대통령의 「말벗」이 되기도 한다. 권력이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에서 나온다는 속설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매일 대통령과 만나는 비서실장은 분명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비서실장도 시대의 흐름과 정권의 변천에 따라 힘과영향력이 달라지고 있다. 권력 핵심들간의 상호관계와 대통령의 선호도에 따라 위상은 변한다. 그런 점에서 역대 비서실장들을 「실세형」과 「실무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박정희대통령시절의비서실장들이 실세형이었다면 5공화국 이후의 비서실장들은 실무형에 가깝다.박대통령시절 실세형의 대표는 이후락비서실장.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정치 경제 등 사회모든 분야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이실장의 뒤를 이은 김정렴실장도 비록 정치분야에서는 관여를 거의 안했지만 경제분야에서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무려 9년 3개월동안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70년대 경제정책을 막후에서 조율했다. 김실장은 경제부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불러들여 70년대이후 경제관료의 맥이 청와대비서관출신으로 형성되는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김실장은 당시 과장급인 행정관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행정관에게도 신경을 몹시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26이후 전두환전대통령의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비서실장의 위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5공초기의 첫번째 비서실장이었던 사람은 김계원박사. 박대통령의정치특보를 하다가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당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집권세력의 가장 당면과제는 미국 등 외국으로부터 정권을 인정받는 일이었다. 자연스레 비서실장은 대미외교에 밝은 사람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김실장은 취임하자마자 전대통령의 방미를 추진, 레이건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물러났다.

◆ 박관용, 비서실장악 ‘문민실세형’

당시 김실장의 보좌관은 허화평씨였다. 직책은 보좌관(차관급)이었지만 청와대비서실 업무의 대부분을 직접 관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허보좌관은 각 수석실에 직접 업무를 지시하기도 했고보고도 실장을 제치고 직접 받아 사실상 비서실장 노릇을 했다는게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얘기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에서 실세가 아닌 비서실장의 역할은 한계가 있었다.김실장의 뒤를 이은 이범석 함병춘씨도 모두 외교통. 정권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전대통령은 계속 직업외교관이나 외교전문가들을 실장으로 기용했다. 이들도 모두 허화평 허문도 허삼수등 3허가 청와대내의 실세그룹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비서실을 장악하는데는 실패했다. 여기에 장세동 경호실장이 전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비서실장은권력주변에서 맴도는 수준에 머물렀다.5공초기 비서실장이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졌던데는 비서실장실의이전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비서실장실은 3, 4공시절 대통령의집무실이 위치한 본관에 있었다. 그러나 5공초기인 82년초 3허 등실세들은 비서실장실을 집무실과 떨어진 신관으로 옮겨 수석비서관들과 같은 건물을 쓰게 했다. 우리나라의 권력생리상 비서실장실이대통령 집무실과 붙어 있느냐, 떨어져 있느냐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비서실장실이 본관에 있을 경우에는 실장은 누가 대통령을 만나는지 체크가 가능하다. 또 수시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의 힘을 강화한다. 이후락실장이 막강한 파워를 행사한것도 박대통령을 만나기전에 반드시 비서실장실을 들르게 하고 만난 다음에도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들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비서실장실 이전은 5공실세들이 비서실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게 청와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비서실장실 이전은 그이후에도 계속 영향을 주고있다. 5, 6공시절 경호실장의 파워가 비서실장보다 훨씬 강했던 요인이 되기도 하고 문민정부 들어서도 민주계의파워를 실감나게 만드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누가 대통령을 만나는지 비서실장은 모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5공시절 4대 비서실장에 취임한 강경식 현경제부총리도 한때 두둑한 배짱과 소신으로 비서실을 장악하는 듯했으나 결국 「소신」 때문에 청와대를 떠난 케이스로 거론된다. 직선적인 성격과 소신있는발언으로 처음에는 신임을 얻었으나 소신발언이 결국 대통령의 비위를 상하게 해 물러났다는 후문이다.

6공 들어서면서 비서실장의 위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군출신 실세그룹이 퇴조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실무형비서실장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 초대 비서실장은 홍성철씨. 비서관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 스타일로 행정관에게도 직접 보고를 받을 정도로 형식을 따지지 않았다. 회의도 자주 열어 의견을수렴했다고 당시 근무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6공 2대 비서실장인노재봉 전서울대교수는 일을 엄청나게 챙기는 스타일이라는 것. 아이디어도 많아 이것저것 수시로 지시를 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의정치특보로 청와대에 들어왔던 노씨는 한때 후계자설이 나돌 정도로 신임도 두터웠다. 그런 점에서 실세형 비서실장으로 볼 수 있다.

6공 말기 비서실장인 정해창씨는 업무를 차분히 챙기는 관리형 실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노대통령과 고교동창이라는 점에서 역시 나름대로 힘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 노대통령의 인척인 박철언씨가정책보좌관으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해 비서실을 완전히 장악하지는못했다.

◆ 김용태실장, 원만한 성격 ‘화합형’

문민정부의 비서실장은 과거 군사정권에 비해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우선 청와대의 권력핵심인 경호실장의 위상이 낮아진 점이 가장 큰 요인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장관급인 경호실장을 차관급으로낮추면서 초대경호실장에 군이 아닌 민간인 출신을 기용했다.또 5, 6공처럼 군출신실세그룹이나 친인척등 비서실 외곽세력의 영향력이 줄어든 점도 상대적으로 비서실의 위상을 높이는 요인으로작용했다. 그러나 상도동출신 가신그룹이 비서실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청와대내 민주계와 관료출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알력은 여전히 존재했다.문민정부 초대 비서실장인 박관용 실장은 이같은 알력에도 불구하고 비서실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실세형 실장으로 불린다. 가신그룹은 아니지만 4선의원출신답게 민주계의 수장노릇을 하면서 업무도원만하게 처리, 정권초기 개혁작업을 추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박실장은 정치적인 문제에서도 소신있는 주장을 했고 특유의 논리로 비서실을 합리적으로 운영했다는 평이다. 물론 그당시 문민정부의 인기가 높아 국정을 운영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도박실장의 원활한 비서실운영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지적된다.2대실장으로 들어선 한승수실장은 「실무형 실장」으로 꼽힌다. 한실장의 경우 정무수석에 이원종, 경제수석에 한이헌 등 김대통령의측근이며 강성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돼 실무형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치문제는 이수석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 경제문제 역시 한수석에게 대부분 맡기는 등 비서실의 화합에 힘을 쓴 편이었다. 비서실을 시끄럽지 않게 운영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었다고볼 수 있다. 주로 외교문제에 비중을 뒀던 편이다. 한실장의 이러한 스타일은 일부 수석들이 강성이었지만 비서실을 원만하게 이끌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소신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다.

한실장 후임으로 들어온 김광일 실장은 전임과는 스타일이 달랐다.처음부터 의욕에 넘쳐 비서실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수석비서관이 직접 연결되는 청와대구조상 수석비서관을 장악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정무수석과 파워게임의 양상도 벌어졌다. 결국 노동법파동과 한보사태를 겪으면서 비서실은 김실장-박세일 사회복지수석-문종수 민정수석 등의 온건파와 이정무수석-이석채 경제수석의 강경파로 갈라지는 내분을 보였다.지난 2월28일 청와대개편에서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용태 실장은원만한 성격에 화합형으로 불린다. 문민정부의 마지막 남은 1년동안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개혁의 마무리작업에 치중하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의 「레임 덕」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실장을 맡아 얼마나 힘을 발휘할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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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