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계의 눈은 지금 아시아에 고정되어 있다. 지난 7월 태국의통화폭락에서 시작된 「아시아쇼크」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탓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이미 「항복」 선언을 하고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한국도 새로 임명된 임창렬경제부총리의 첫일이 IMF의 구제금융신청이었다. 세계최대의 경제강국중 하나인 일본도 불안감이 감돌긴 마찬가지다.한창 기개를 뻗치던 「4마리의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과「젊은 호랑이(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들. 이 나라들은 이제 병든 닭처럼 거대한 자금으로 인정사정없이 공격하는국제환(換)투기꾼들의 눈치만 볼 뿐이다. 이경식한국은행총재가환투기꾼의 대명사인 조지 소로스와 만나겠다는 것은 자존심차원을떠나 좀 서글픈 생각마저 들 정도다.◆ 아시아 통화위기 숨은 주범은 ‘헤지펀드’언제부터 「용」들이 「뱀」으로 변했고 어떤 이유가 있길래 「호랑이」가 「고양이」로 전락했을까. 이제 가망은 전혀 없는 것일까. 병을 고치려면 우선 그 병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사태의 원인을 냉정하게 짚어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아시아 통화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세력화된 미국 투기꾼들의 공격이다. 수천억달러의 자금을 운영하는 「펀드」들이 시세차익을노려 경제가 불안한 나라를 요리한다. 이번엔 태국, 이번엔 인도네시아, 이번엔 한국하는 식으로. 미국의 언론과 정부도 결국은 이들편이다. 세계언론중 유독 미국언론들만이 『한국경제는 북한보다먼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식의 과장보도로 위기의식을 퍼뜨리며투기꾼들을 측면지원한 사실에서도 이를 잘 알수 있다.그러나 일단 투기꾼들의 공격대상이 됐다는 것은 뭔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아시아 국가들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이번에 심한 타격을 입은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은 제조업 위주로 성장해온 나라들이다. 그러나 금융시스템은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게 공통점이고 바로 이 부분을 투기꾼들이 치고 들어왔다. 제조업에 바탕을 두고 있는 아시아는 다시 성장가도를 달릴 것으로 예상되지만낙후된 금융산업을 방치해 놓은채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게 결론인 셈이다.아시아금융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게 부실채권. 금융시스템의 뿌리를 이루는 아시아은행들의 부실채권비율은 10∼20%에 달한다. 미국은행들의 부실채권비율은 불과 1%수준. 아직까지 금융위기가 없었다는게 이상할 정도의 불건전한 구조다.부실채권이 많은 이유도 아시아 각국이 엇비슷하다. 우선 환율문제. 실세환율과 계리된 고정환율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평가절하의위험성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달러를 빌려 현지통화자산으로 사두면 항상 이익이 남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환투기꾼들의 공격으로 자국화폐가 급격히 평가절하되자 자국화폐로빌려줬던 돈을 받아 달러부채를 갚기 어려운 상황이 왔다.두번째는 부동산신화. 부동산가격이 수십년동안 올랐기 때문에 이쪽에 대출해주면 돈을 안전하게 벌수 있었다. 그러나 과잉투자로부동산값이 급격히 떨어지자 은행들은 엄청난 부실을 떠안았다. 지나친 오만과 경험미숙도 한몫했다. 은행들은 고도성장이 지속될 것이란 확신으로 금융리스크를 확실하게 챙기지 못했다. 대상기업에대한 정확한 분석보다는 점심시간이나 골프라운딩에서 대출이 결정되는 이른바 「아시아식 관행」이 팽배했다. 정부의 과잉규제도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지나친 규제에 묶여 제대로영업을 할수 없었다. 금융기관이 정부의 지시로 특정기업에 자금을대주는 창구에 불과했던 것도 사실이다.이런 문제점은 일시적 현상들이 아니다. 대부분 당장 치유가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어쨌든 해결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뿐이다. 발상의 대전환을 통한 과감한금융개혁 없이는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