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짜게 하리요」. 기독교신자로서 지켜야 할 사명을 가르칠 때 인용되곤 하는 성경구절이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당부의 의미로도 쓰이곤 한다. 인류역사와 함께한 가장오래된 조미료이자 청정(淸淨)과 신성(神聖)의 상징물인 소금. 지금도 여전히 우리네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 고리를 맺고 있다.음식의 간을 맞추는데부터 피부미용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소금=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뜻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그런 소금에 인생을 건 여성기업인이 있다.동빙고상사의 오명자사장(56)이다. 성경구절에 나오는 것처럼 「소금」이 되고자하는 오사장이 만드는 제품은 천일염이나 죽염과 같이 널리 알려진 소금이 아니라 다소 생소한 「볶은 소금」. 식용과미용소금 두가지를 생산하고 있다.『어릴 때부터 소금과 생활하다시피한 환경이었어요. 소금의 중요성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거죠. 그러다가 지난 91년 죽염이 한창인기를 끌 때 막상 비싼 돈을 주고 사서 써보았더니 아니더라고요.값만 비싸고 제 품질이 아닌데 화가 났어요.』충남 당진이 고향인 오사장이 「소금장수」로 나서게 된 연유다.어려서부터 염전이 지척에 펼쳐진 곳에 살면서 소금에 관한 한 갖가지 기억을 다 지니고 있던 오사장에게 소금은 단순히 유년기의추억을 끄집어 올리는 실마리 이상이었다. 『비싼 돈을 주고 2백50g짜리 죽염을 사보니 겉은 까맣고 속은 하얀 죽염이 나와 놀랐다』는 오사장. 죽염공장을 직접 방문했지만 실망한 오사장은 『가만히있으면 죄를 짓는 것 같고, 제대로 된 소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평범한 주부에서 기업인으로의 변신을 시도한다.『어려서부터 피부에 이상이 생기거나 속탈이 나면 그 볶은 소금을바르거나 먹곤 했던 일들이 떠올랐어요. 소금을 제대로 볶으면 겉이 잿빛이 나고 차돌처럼 단단해지는데 그 소금을 빻아서 김치나동치미의 양념으로 쓰면 맛이 오래가고 무가 물러지지 않곤 했거든요. 뿐만 아니라 피부미용 등에 대한 효용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만큼 볶은 소금의 가치가 크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업성공에 대한확신이 서더라고요.』틈새를 확인한 오사장은 「만병통치약 같았던 소금생각」에 가족들과 주변의 「있는 돈으로 남은 인생 편히 살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일을 벌인다. 주변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해 경기도 가평에 땅을구해 소금을 볶을 가마솥과 아궁이를 조합해 만든 설비를 들여놓은오사장은 92년 동빙고라는 상호를 걸고 사업자등록를 한 후에 볶은소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크고 작은 다른 기업체에서도 가스불이나 전기를 이용해 볶은 소금을 막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장작불로 볶은 소금에 대한 확신이 오사장에게 경쟁에서 이길 수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백화점 판로 확보…‘고생 끝에 낙’『소금에는 몸에 좋지 않은 화학물질이 많아요. 소금을 볶으면 기름이 많이 나와 솥바닥이 거무칙칙해지고 염소와 같은 좋지않은 불순물들이 빠지면서 위로 날아가 솥근처에는 고약한 냄새와 연기가자욱해요. 하지만 가스불로 소금을 볶으면 불순물들이 위로 날아가버리지 않고 아래로 가라앉아요. 그만큼 장작불을 때서 볶은 소금은 더 깨끗하고, 맛은 덜 짜고 고소한 맛이 나지요.』볶은 소금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땔감문제. 잡목으로때는 불은 화력이 약해 제대로 된 볶은 소금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잣나무나 참나무와 같이 화력이 좋은 땔감이 필요했다. 하지만다행스럽게 가평엔 버섯재배농가에서 버리는 참나무폐목이나 잣나무 등 땔감으로 쓸만한 나무들이 많아 연료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솥을 건 오사장은 소금이 제대로 볶이도록 직접 3시간이상 팔로 휘저으며 억척스레 일을 했다. 매일 독한 연기와 불기운을 쏘이면서.소금을 볶은 후에는 솥에 물을 붓고 끓여 소독과 청소를 매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몸무게가 10kg이상이나 빠지기도 했다』는 오사장.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라고 알음알음으로 팔렸던 동빙고상사의 소금이 중계동 건영백화점에 판로를 확보하면서 날개 돋친듯이 팔리기 시작했다.『소비자들 특히 주부님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먹어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맛과 효능이 전해지면서 점점 찾는 사람들이 늘어갔어요.』순풍을 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술술 풀려나갔다. 판로도 점점 늘어났다. 미도파·애경·해태·삼풍·희망백화점 등 여러 백화점에 매장을 마련했다. 보험회사 판촉물용이나 사우나 등에 납품도이루어졌다. 특히 94년부터 붐이 인 찜질방 덕에 소금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매출도 쑥쑥 증가했다.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잘나가던 오사장의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95년 11월 KBS-2TV의 「체험! 삶의 현장」이란 프로그램에 방송된게 계기였다. 영화배우 이일재씨가 일일종업원으로 출연한 이방송덕에 회사제품이 더 널리 알려지고 주문이 몰려 설비를 확장했다. 그러나 당시 방송을 본 염조합측에서 가평군에 허가여부를 확인하면서 허가권시비에 말려들었다. 오사장은 사업전에 가평군청에제조업신고와 공장허가를 얻으려 했으나 「신고만으로도 일단 제조가 가능하다」는 군청측의 답을 듣고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그 담당자가 바뀌면서 염조합측의 문의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 것이화근이 됐다. 무허가업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는 오사장은 시중의 모든 물건을 회수하고 공장조업을 중단했다. 군청의 말을 믿고 생산을 시작했기에군청에 탄원서와 여러 가지 내용증명서류들을 보냈다. 그러기를 3개월. 96년 2월에 마침내 허가증을 받아 쥐었다. 하지만 조합측에서 함수조사를 하는 등 상품에 대한 정밀조사를 하는 바람에 9월말까지 생산을 할수 없었다. 그 동안 백화점과 거래처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창고에 쌓인 7만kg의 재고를 보면「소금에 전 푸성귀」처럼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가업이라고도와준 자식들과 직원들에게 미안해 죄인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다.『그때는 죽고만 싶었어요. 그러나 신앙과 당시 큰 도움을 준 주변신앙인들, 기독실업모임(CMBC)의 덕으로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이를악물었지요.』「소금에 아니 전 사람이 장에 절까」라는 속담(큰 고생을 이겨낸사람은 작은 고생도 이겨낸다는 뜻)처럼 오사장은 다시 일어섰다.볶은 소금을 이용한 새로운 제품개발에 주력했다. 피부에 이상이생겼을 때 소금을 바르면 감쪽같이 났곤 했던 과거의 일을 생각했다. 즉시 미용측면에서 소금의 효용과 다른 첨가물질들에 대한 관련문헌을 뒤졌다. 그렇게 해서 쑥 녹두 살구씨 율무 인삼 등을 첨가한 「쑥나라」라는 피부마사지용 미용소금을 만들었다. 「직접챙긴다」는 오사장의 사업습성은 여기서도 나타나 쑥을 직접 캐서말려 빻았다.제품에 대한 반응은 예상외로 컸다. 실제로 주름살제거와 여드름치료에 효험을 봤다는 사람들의 전화도 밀렸다. 「쑥나라」로 마사지를 하면 피부가 미끈해진다는 말이 돌면서 오일이나 바디클렌저 대신 「쑥나라」가 자리를 차지하는 목욕탕과 사우나가 늘어났다. 주문도 쇄도했다. 풀무원내츄럴하우스, 1초도 아까운 회사, 연홍식품등에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물건을 납품했다. 덕분에 예전의 식용소금도 다시 인기를 얻으며 매출액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미약한 시작」이었지만 「나중에 심히 창대할 것」이라는 기대를갖고 소금에 푹 빠진듯한 오사장에게 올해의 희망은 더욱 크다.『올 봄에 공장을 확장이전하고 지금 개발중인 새로운 식용소금을내놓으면 곧 회사규모나 매출이 늘 것으로 확신하고 있어요. 아울러 일본 미국 등 외국으로의 수출도 적극 모색하고 있어요. 하지만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된 소금을 먹었으면 하는게제일 큰 바람이에요. 잘먹는게 보약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