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 기술(The Art of Speculation) designtimesp=21446>의 저자로 유명한 필립 커레이(Philip Carret, 사진)는 98년 1백2세로 사망했다. 그는 미국 뮤추얼펀드 업계의 개척자로서 1928년에 파이오니어 펀드를 설립했다. 이 펀드는 62년간 연평균 14.4%의 수익률을 올려 S&P 500지수의 연평균 상승률 10.9%를 크게 상회했다.그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하버드대학을, 그것도 3년만에 졸업한 수재였다. 대학 4학년에 해당하는 나머지 1년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수학했다. 군 제대 후 채권판매원 기자 경제분석가로 일했다. 대공황 때 회사에서 해고당하자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기차시간표를 인쇄하는 장외기업을 소개받고 분석해 본 결과 주가가 대단히 싸다고 판단하고 대량으로 사들여 처음으로 목돈을 벌었다.20년대초 뉴욕에서는 수도요금이 사용용량이 아니라 주택의 정면폭에 따라 부과되고 있었다. 가뭄이 닥치자 그는 물을 많이 소비하는 가정과 적게 쓰는 가정을 구분하기 위해 뉴욕시 당국이 수도계량기를 설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계량기를 만들만한 업체를 물색했다. 넵튠미터가 가장 유망한 후보업체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39년에 히틀러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설탕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설탕은 파운드당 1센트로 폭락해 있어서 대부분의 설탕회사가 파산했거나 파산직전에 있었다. 그는 쿠바의 한 설탕회사를 찾아냈는데 채권과 우선주는 많이 발행했지만 보통주는 2만주에 불과했다. 당장 이 회사 주식을 매수했다. 2달러에 소량을 샀으나 주가가 급등하는 바람에 투자금액 대부분을 주당 7~8달러에 샀다.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주가가 다시 1달러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프랑스를 공격하면서 설탕가격이 다시 폭등하자 주가는 2백달러까지 올랐다. 이처럼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보고서 유망한 주식을 찾아내는 사고방식을 커레이는 ‘머니 마인드(Money Mind)’라고 불렀다.그는 종목을 고를 때 배당금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배당은 가진 돈을 마땅히 투자할 데가 없어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는 워런 버핏의 투자지주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예로 들곤 했다. 배당을 하지 않는 이 회사의 주식을 60년대에 4백달러에 샀는데 지금 7만달러로 올라 있다.주식을 언제 팔아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주식을 한번 사면 여간해서는 팔지 않는다. 좋은 주식이라면 매력포인트라고 생각했던 요인이 그대로 있는 한, 또 회사가 엉뚱하게 잘못되지 않는 한, 아예 그 위에 눌러 앉는다. 그 기업보다 훨씬 더 우량하고 주가도 낮은 주식을 발견하기까지는 말이다.”그래서 주식투자자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로 ‘인내’를 첫번째로 꼽았다.그는 장기투자할 가치가 있는 주식만을 사서 5년이고 10년이고 장기간 보유했다. 다음 주 또는 다음 달에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해서 주식을 사는 것은 일종의 마켓타이밍으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