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구상도 가다듬고 별미도 즐길 여행지로 어디가 좋을까. 충남 당진과 태안 사이에 자리한 서산시를 추천한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있어 가는 길도 여간 편한 게 아니다. 서산시는 북쪽에도 바다, 남쪽에도 바다가 펼쳐진 복받은 땅이다. 쉼없이 전개되는 나지막한 구릉들은 충청도 고유의 후한 인심을 상징하고 그 사이사이로 꽃잎처럼 숨은 문화유적들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먹거리 또한 풍부해서 간월도로 가면 그 유명한 간월도 어리굴젓이 있고 왕산포라는 작은 포구마을에 가면 쫄깃쫄깃한 낙지가 미식가들을 기다린다. 철새를 보고 싶다면 천수만 윗녘의 서산간척지를 찾을 일이다.일단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으로 빠져나간 다음 천수만방조제 방면으로 가면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가 기다린다. 주지하다시피 간월도는 애초에 섬이었으나 천수만방조제의 완공으로 뭍과 쉽사리 연결되고 섬의 운명에서 벗어난 여행지. 썰물 때면 무학대사의 전설이 깃든 간월암 암자까지 건너갔다 올 수 있고 간월도포구로 가면 바다에 뜬 배 위에 앉아서 바다 풍경을 안주 삼아, 싱싱한 회도 먹으면서 낭만의 여로를 즐길 수 있다.주차장에는 간월도 어리굴젓 기념탑이 조성돼 이곳이 간월도 어리굴젓의 본향임을 알려준다. 어리굴젓은 서산 여행 시 빼놓을 수 없는 별미거리요 쇼핑 특산품이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간월도 어촌계에서 생산되는 ‘무학표’ 어리굴젓 뿐이다.천수만 북쪽의 서산간척지에 가면 겨울 철새들의 겨우살이를 엿볼 수 있다. 몇해 전부터 주남호를 제치고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라는 평을 듣는 곳이다. 가창오리가 가장 많고 그들 주변에는 청둥오리들이 놀고 있다. 이따금 쇠기러기나 흰죽지오리 등도 보인다. 새들의 군무를 보기에 좋은 시간은 동틀녘이나 해거름 무렵. 천수만간척지 안으로 들어가서 철새들을 관찰하자면 미리 창리의 현대건설 사무소(041-662-7136)로 연락해둔다.한편 서산의 문화유적으로는 해미읍성을 비롯해 개심사, 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등이 있다. 간월도로 오가는 길에 들를만한 사찰로는 부석면 취평리의 부석사를 추천한다. 도비산(351.6m) 서쪽 자락에 들어앉아 있어 황혼 무렵 찾아가면 분위기가 좋은 사찰이다. 서산시내와 창리를 잇는 649번 지방도로변에서 부석사 주차장까지는 약 2km. 차에서 내려 경내로 가자면 6백m 가량의 오솔길을 걸어야 하는데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가에 수북히 쌓인 낙엽이 절집 찾아가는 맛을 되살려준다.서산시 운산면에는 마애삼존불과 개심사가 있다. 마애삼존불을 모신 전각의 문을 열면 흔히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는 세분의 부처가 볼이 터져나갈 것 같은 웃음을 머금고 찾아온 이들을 반긴다.마애삼존불 중 가운데에 위치한 석가여래불의 미소 짓는 모습이 특히 빼어난데 둥근 얼굴을 크게 뜨고 두툼한 입술로는 묘한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 광배는 전체적으로 보주형이며 안쪽에 핀 연꽃 위에 불꽃줄기가 타오르는 모습이다. 원래는 마애삼존불을 감싸고 있는 전각이 없었다. 바람 불고 눈비 내리는 세월에 마애삼존불이 마모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어 협소하나마 보호막으로 전각을 세운 것이다. 그 때문에 자연광을 가려 햇빛이 떨어지는 각도에 따라 삼존불의 미소가 다르게 보이는 감동의 장면을 감상할 수가 없게 됐다.(지금은 긴 막대에 전구를 매달아 해를 대신해 마애불의 미소가 변하는 모습을 인위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상왕산 개심사의 안양루를 끼고 옆으로 돌면 해탈문이 나오며 그 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대웅보전이다. 조선 초기의 건물로서 고려시대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양식을 지닌 건물로 꼽힌다. 개심사에서 빼놓지 말고 찾아봐야 할 곳은 해탈문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심검당이다. 이 근방의 소나무들은 홍송으로 직선을 이루지 않고 삐뚤하게 자라고 있다. 이처럼 휜 소나무를 그대로 살려 지은 심검당은 당시 대목의 대담한 예술적 창조성을 느끼게 한다. 심검당은 단청을 하지 않아 오히려 깊은 맛을 더해주는 개심사 최고 건물이다.해미에는 낙안읍성, 고창읍성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 읍성의 대표작인 해미읍성이 있다. 해미라는 이름은 정해현과 여미현 두 현을 태종 7년인 1406년에 병합하면서 한자씩 따왔으며 서해안의 주요방어기지 역할을 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이곳에서 군관으로 근무를 한 적이 있다.해미읍성은 둘레에 탱자나무가 울타리로 심어졌다고 해서 탱자나무성이라고도 불렸는데 지금은 성 안에만 탱자나무가 남아 있다. 해미읍성 중에서 잘 보존된 곳은 남문인 진남루이고 성 안에 들어가면 6백년이 넘은 고목이 한가운데에 서있는데 호야나무라고 불린다. 이 나무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를 했다.●여행메모: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서산행 직행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승용차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간월도나 천수만을 먼저 가려면 홍성나들목, 왕산포나 마애삼존불, 개심사 등지로 먼저 찾아가려면 서산나들목으로 빠져나간다. 해미읍성에서 가까운 덕산온천지구로 가면 덕산온천관광호텔(338-5000), 세심천온천호텔(338-9000) 등 깨끗한 온천숙박시설들이 많다.맛집왕산포 우정횟집쫄깃쫄깃 ‘밀국낙지’ 일품낙지 하면 전남 목포 인근 영암 지방의 독천리 세발낙지가 유명하지만 충남 서산의 가로림만에 붙은 지곡면 중왕리의 왕산포마을도 소문난 낙지마을이다. 서산시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대산 방면으로 오르면 지곡면 땅으로 넘어가 중왕리 마을로 가는 표지판을 보게 된다. 중왕리 왕산포는 횟집이 두어 개뿐인 작은 포구, 왕산포. 서산과 대산을 잇는 29번 국도에서 왕산포까지는 7km 거리다.왕산포의 우정횟집 주인은 “서해안에서 이곳보다 더 좋은 뻘은 없을 것”이라고까지 단언한다. 그 좋은 뻘을 무대로 낙지가 자라고 왕산포 사람들은 그 낙지를 잡아 서산 밀국낙지라는 별미를 여행자들에게 선사한다. 가로림만 낙지, 일명 왕산낙지는 부드럽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밀국낙지는 우선 낙지를 끓여 먹는 순서부터 시작된다. 무처럼 생긴 박 속을 썰어넣은 국물에 낙지를 데치는 것이 특징이다.살짝 익혀진 낙지를 잘근잘근 씹는데 부드러운 감촉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렇게 낙지를 다 먹고 나면 이번에는 그 국물에 칼국수를 넣고 끓여 먹는다. 반찬이라고 해야 김치 두어 가지지만 소박한 맛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서산밀국낙지를 먹고 싶은 여행자라면 반드시 왕산포를 찾아가야 할 일이다. 왕산포에는 우정횟집(041-662-0763)과 왕산포횟집(662-9607)이 있다. 밀국낙지탕 값은 작은냄비 2만5천원, 중간냄비 3만5천원, 큰냄비 4만5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