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쪽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고, 동전 한 닢도 두세 차례 생각하면서 꺼내는 것이 몸에 밴 일본인들의 절약정신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알뜰한 게 지나쳐 궁상맞다는 인상까지 풍기는 것이 일본인들의 소비습관이다.하지만 이 같은 일본에서도 최근 별난 동종업 단체가 탄생을 앞두고 있어 소비자와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소리 없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 단체는 헌옷장사를 하는 업체들이 손잡고 설립을 진행 중인 일본헌옷소매업협동조합(도쿄 시부야)이다.이들 업체는 경제산업성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9월 중순 설립총회를 가질 예정이다. 회원사로는 도쿄의 하라주쿠 등지에서 헌옷 상점 5개를 운영 중인 ‘하라주쿠 시카고’를 비롯해 도쿄와 오사카에서 헌옷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는 3개 업체 등 4개사가 우선 참가했다.이들 업체가 이름부터 생소한 조합을 일본 최초로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헌옷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다. 사려는 고객들은 줄을 서는데 팔 헌옷이 달리니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일본 의류시장에서 헌옷 비즈니스는 최근 수년간 ‘돈이 되는 장사’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려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뜨거운 인기를 바탕으로 헌옷은 유행의 일부로 뿌리내렸다. 불황에 시달린 탓에 지갑을 열지 않으려는 알뜰파 소비자들의 가세도 시장확대에 순풍이 됐음은 물론이다.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일본의 헌옷 시장 규모는 2001년 1,000억엔에 달해 5년 전의 약 700억엔에 비해 40% 이상 팽창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경기가 죽을 쑤면서 거의 모든 업종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내달린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실적이다.각 업체들도 불황을 전혀 타지 않고 몰려드는 고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라주쿠 시카고의 매장은 평일 저녁시간대나 주말이면 계산대 앞이 장사진을 이룬다. 1개 점포에서 하루 평균 약 1,000점의 의류가 팔려 나간다는 게 업체측의 귀띔이다.사정이 이러하니 업체들로서는 상품, 다시 말해 헌옷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헌옷상품이 모자란다고 일부러 중고옷을 만들어 팔 수 없는 법 아니냐”며 “필요한 상품이 적시에 공급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더 팔 수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그러나 1,000~2,000개사로 추정되는 일본의 헌옷 장사업체들은 절대다수가 영세업자들로 구성돼 있어 신속하고도 체계적인 상품조달망을 갖추기 힘든 한계를 안고 있다. 일본 내에서 버려지는 옷들 중 수선 및 가공과정을 거쳐 중고상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고작 0.2%에 불과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업체들은 바로 이러한 상황이 조합설립을 앞당겼다고 말하고 있다. 상호 정보교류와 공동 수집, 배송망 구축을 통해 상품(헌옷) 발굴에 박차를 가한다면 시장은 지금보다 적어도 세 배 이상 커질 수 있다고 이들은 자신하고 있다.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등의 폐품회수 작업을 통해 수거되는 일본의 의료품은 연간 약 17만t(99년)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업체들이 상품화해 노다지를 캐고 있는 2,000여t(0.2%)을 제외하고도 얼마든지 금맥이 널려 있다는 이야기다.헌옷장사가 얼마나 큰 업종으로 자라날지 아직은 정확히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합설립에 앞장서고 있는 업체들은 회원사가 연말까지 100개 정도로 늘어날 것을 자신하고 있어 한지붕 밑에 모인 이들의 단결력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 또한 대폭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