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408호 (2003년 09월 29일)

부품업체서 완제품업체로 업그레이드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0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국금속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고충처리상담실’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만 보고 직원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하는 별도의 공간으로만 생각하면 착각이다. 고충처리상담실이 사장실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언제나 직원들에게 개방돼 있다. 지금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노상훈 회장(78) 때부터 있던 방이다. 노종호 사장(43)은 부친이 사용하던 집기를 그대로 대물림해 쓰고 있다.

노사장은 직원들이 찾아오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다. 일주일에 한두 명은 꼭 이곳을 찾아와 신상문제나 건의사항 등을 노사장에게 이야기한다. 노사장이 고충처리상담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 덕에 창업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 노사장은 지난 98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직원을 30여명 줄이면서 “회사가 정상화되면 꼭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했다. 잊지 않고 10개월 후에 내보냈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신뢰를 최고로 여기는 노사장의 경영철학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금속의 출발은 함경남도 함주군이 고향인 노상훈 회장이 지난 1960년 주물밸브 생산을 위해 설립한 삼부정공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회장은 70년 베트남전쟁 때 호치민시에 있던 수출품 창고가 폭격을 받자 회사문을 닫았다. 이후 72년 한국나선관을 설립하고 산업용 배관으로 쓰이는 메탈 벨로우즈(금속주름관) 사업을 서울 상계동에서 시작했다.70년대 들어 국내에 제철소, 화학공장, 화력발전소 등이 잇따라 신축ㆍ확장되면서 메탈 벨로우즈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외국제품과의 경쟁을 통해 고리원자력발전소 1ㆍ2호기에 납품했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 “당시 회사가 매년 두 배씩 성장했다는 얘기를 부친에게 들었다”고 노사장은 말했다.

노회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경쟁업체들이 서서히 생겨나자 83년 금속사업부를 만들고 일본 야마도스테인리스와 기술제휴해 온풍기용 열교환기와 배기통 개발에 들어갔다. 2년 후에는 국내 기름보일러 생산업체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일본에도 역수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시스템공학연구센터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노사장이 2세 경영인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회사가 한창 성장엔진을 밟고 있던 지난 89년 8월 노사장은 부친과 함께 수안보로 온천욕을 갔다. 수안보에서 그는 부친의 뜻밖의 행동에 놀랐다. 장남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업을 일궈온 지난날을 풀어놓은 노회장. 그는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니 장남인 네가 도와주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건넸다. 노사장은 고민을 했다. 당시 노회장은 64세였다. 두 달여간의 고민 끝에 연구원 생활을 접고 부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당시 노회장은 금속사업부를 독립시켜 한국금속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가업을 잇기로 한 노사장은 한국금속에서 프레스, 용접 등 현장을 체험하며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또 설계, 구매, 영업 등에서도 뛰었다.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노사장은 설계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직원들 몰래 3개월간 독학해 설계를 익혔어요.”

96년에는 사장직에 올라 2세 경영인으로서 역량을 쏟아냈다. 대표이사를 겸직해 왔던 한국나선관은 2001년에 둘째동생에게 맡겼다.

“95년께 온풍기용 열교환기 경쟁업체가 나타났고 거래처의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되면서 물량도 줄어드는 등 경영여건이 나빠졌어요.”

이때 새로 내놓은 아이템이 냉ㆍ난방 겸용 열교환기. 사장직에 오른 후 내놓은 첫 제품이었다. 1년 6개월간 개발실에서 4명의 직원과 휴일도 없이 연구에 매달려 개발한 것이다. 이 제품은 가전업체들로 하여금 냉ㆍ난방 겸용기 시대를 열게 했다. 이 제품으로 매출이 급신장, 설립 초기에는 연간 20억원에 불과했으나 96년 120억원,97년에는 150억원으로 늘어났다.

성장가도를 달리던 한국금속도 IMF에서 비켜나지 못했다.98년 들어 거래처의 부도로 받아놓은 어음은 휴지조각이 되고, 매출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노사장은 용단을 내렸다. 부친 노회장과 협의를 통해 사재를 털어넣었다. 직원도 30여명 줄였다. “동고동락한 직원들을 내보낼 때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회사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부르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부품생산업체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노사장은 완제품 연구개발에 들어가 98년 10월 완제품 온풍기(브랜드 KORUS)를 출시했다.PC방, 식당 등 업소를 중심으로 수요처가 늘면서 3개월 만에 목표치보다 5배 많은 2,500대를 팔았다. “잇단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내보냈던 직원을 모두 10개월 만에 재입사시켰습니다.” 노사장은 평택공장에 10억원을 투입해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연간 1만5,000대 이상을 팔았다. 그는 “2001년까지 매일 잔업과 명절은 물론 휴일에도 근무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냉ㆍ난방 겸용기를 내놓았다. 삼성전자가 자체생산을 중단하고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을 요청할 정도로 성능을 인정받은 제품이다.

노사장은 완제품의 매출이 늘자 99년부터 완제품 중심의 제품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연간 매출 120억원 안팎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던 에어컨 배관세트와 컨트롤박스 생산을 중단했다. “수익성이 없어 부품생산을 않기로 한 것”이라고 노사장은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99년 17%에 불과했던 완제품 비율을 2002년에 80%까지 끌어올렸다. 올해는 90% 이상으로 올리고 수년 내에 완제품만 생산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았다.

이 같은 차원에서 노사장은 올 3월 일본 산요전기의 기술을 들여와 가정용 제습기 개발을 끝냈다. 연구개발과 생산설비를 갖추는 데 20억원을 투입했다. 오는 10월에 시제품을 내놓고 내년 4월부터 국내 시판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산요전기에도 내년에 2만대를 수출한다. 노사장은 “내년 6월께 업소용 공기청정기도 내놓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금속은 지난 2001년 7월 중국 선양의 화려기업집단과 합작으로 60만달러를 투자해 현지공장을 세웠다. 이곳에서는 가스ㆍ오일 냉난방기와 가스ㆍ오일 온풍기 등을 생산해 중국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노사장은 “매년 중국 내 생산량을 늘려 중국시장의 점유율을 높여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금속은 올해 매출 270억원, 순이익 16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031-668-9330)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06-09-04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