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정책 최우선 순위 인식, 석유확보 나선 ‘중국변수’에 촉각

자원전쟁시대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외교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에너지 확보에 두고 있기도 하다. 자원확보를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다. 2003년 터진 이라크전쟁 역시 예외는 아니라는 평가다.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세계 주요 국가의 자원확보 노력을 다각도로 분석해본다.미국정부·재계 ‘한마음’… 중국 견제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3년 이라크전쟁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중심에 미국이 서 있고,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얘기들이 뒤따랐다. 미국 정부는 부인하지만 국제사회의 시각은 대체로 에너지 때문이라는 점에서 일치하는 분위기다.그도 그럴 것이 이들 두 지역은 석유자원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은 석유수송로를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지역이다. 인근 카스피해지역에는 미국에 의해 확인된 석유매장량만 약 165억배럴에 이른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야 원활하게 석유자원을 끌어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라크는 중동의 핵심적인 산유국 가운데 하나다. OPEC 회원국으로서 하루 생산량만 180만배럴이 넘는다. 더욱이 매장량은 1,300억배럴로 당당히 세계 2위다.미국이 에너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 소비량은 압도적으로 1위다. 2003년 기준으로 전세계 소비량의 25.1%를 차지할 정도다. 2위인 중국의 7.6%와 비교해도 무려 3배가 넘는다. 에너지 문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여기에는 정부와 재계가 따로 없다. 미국기업들 역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중국 등 다른 나라 기업들과의 경쟁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중국이 석유확보에 강한 의욕을 보이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얼마 전 중국의 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미국의 정유회사 유노컬 인수를 추진한 적이 있다. CNOOC는 인수추진 과정에서 경쟁자인 미국의 쉐브론사보다 15억달러를 더 지불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상적이라면 당연히 돈을 더 내겠다고 선언한 CNOOC가 인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이유는 미국 정부와 의회, 기업들의 방해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의회가 에너지 안보론을 거론하며 적극 반대했고, 백악관 역시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뜻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회사들도 덩달아 ‘유노컬을 인수하면 CNOOC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며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암시하는 등 지원사격을 했다.미국의 자원전쟁 선봉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선다. 그는 이미 집권 초기에 ‘국가에너지정책개발그룹’을 구성했다. 이 그룹은 정기적으로 연방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정책 보고서를 작성하고 향후 미국 정부의 대응책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안전 보장을 외교통상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잡아놓고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자세를 요청해 놓고 있는 상태다. 또 부시 대통령은 지난 8월 상원이 석유수입의존도를 줄이는 내용의 에너지 법안을 통과시키자 곧바로 서명하기도 했다.이에 앞서 미국 정부는 2003년 8월 의회에 2025년까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핵심은 환경친화적 에너지의 공급을 확대한다는 것. 이를 위해 수소에너지 개발, 청정 석탄기술 개발, 국내 석유 및 가스개발 및 생산기술 향상, 에너지 절약 및 효율 향상 등에 초점을 두겠다고 발표했다.특히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2020년까지 약 50%에 달할 것으로 보고 에너지 안보 면에서 국산 에너지 공급 확대와 절약 능력 향상에 역점을 둔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또한 정부는 2012년까지 산업계와 공동으로 수소연료전지자동차의 상용화 기반 구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자원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다른 나라와 달리 에너지정보청을 별도로 두고 있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에너지부 산하기관으로 에너지에 대한 연구 및 통계조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이지만 행정부의 종속화를 막기 위해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받고 있기도 하다. 연간 예산만 8,000만달러에 달하고, 직원수는 약 400여명에 이른다. 매주 발표하는 주간 석유재고 조사는 국제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자원확보에 대한 정부의 의욕을 뒷받침하듯 각종 프로젝트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적인 정유회사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멕시코만 개발이다. 1999년 이 지역에서 대형유전을 연이어 발견한 BP는 20억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인 ‘아틀란티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10억달러를 투자해 심해 송유관을 건설했고, 현재 하루 20만배럴 수준의 생산량을 2007년에는 75만배럴로 늘릴 예정이다.천연가스 개발도 멕시코만과 알래스카지역, 로키산맥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멕시코만의 경우 최근 연해보다는 심해지역에서 천연가스 생산이 증가하고 있으며 엑슨모빌사의 ‘미카 천연가스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캐나다의 앨버타를 거쳐 미국 중서부지역까지 이르는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다.천연가스는 미국이 석유와 더불어 가장 신경을 쏟는 에너지다. 특히 가격 강세로 최근 들어 탐사활동이 강세를 띠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향후 20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부시 대통령도 천연가스를 중요한 정책과제의 하나로 설정해 놓고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중국‘해외진출·공급선 다원화’ 추진2003년에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의 석유소비국으로 떠오른 중국(1위는 미국)은 세계 오일전쟁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혁개방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일궈온 중국은 에너지 소비 증가로 에너지 안보에 온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메이저 석유회사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중국의 일일 평균 석유소비량은 598만2,000배럴로 2,007만1,000배럴을 기록한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중국의 일일 평균 석유수요는 2025년에 1,420만배럴까지 늘어 일일 평균 순수입량만 1,090만배럴에 달할 것이라는 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예측이다.중국은 지난 2000~2003년에 석유생산은 7% 늘어난 반면, 수요는 39% 증가하는 등 국내 석유생산의 한계에 직면했다. 중국은 이미 93년부터 석유 순수입국으로 돌아섰다. 중국은 60년대에 개발된 다칭유전에 상당히 의존해 왔지만 현재 다칭유전의 생산량은 정점을 넘어섰다. 새로운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국내 석유생산은 감산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2004년에 중국의 석유 수입의존도는 40%를 넘었다. 2020년에는 75%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중국은 90년대 후반부터 국영석유회사들을 정비하고 해외활동에 박차를 가해 왔다.중국은 국내 석유생산으로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인식과 함께 서방 선진국들의 견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해외투자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중국기업들은 석유메이저들이 진출해 있지 않은 수단, 앙골라, 이란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에콰도르, 호주,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에도 진출했다. 한국석유공사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중국 국영석유회사들은 94년 이후 17개국에서 총 30건의 해외자산을 매입했다. 또 최근에는 11개국에서 13건의 해외자산 매입을 진행 또는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올해 초 IEA 비회원국위원회 보고자료를 통해 대표적인 중국 국영석유기업의 해외투자 활동을 살펴보면 우선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은 수단과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활동 중이다. 해외 석유ㆍ가스 개발에 총 18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CNPC보다 해외개발에 있어 후발주자인 중국석유화공(Sinopec)은 보다 적극적이어서 2003년에 이란과 LNG 및 유전개발에 25년 장기계약(700억달러 규모)을 맺었다.유노컬 인수 추진의 주인공인 CNOOC의 경우 가장 적극적이고 외부지향적인 기업이다. 주로 호주와 인도네시아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 국영석유회사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외 석유회사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석유화공이 25억달러에 카자흐스탄의 캐나다 석유회사 패트로카자흐스탄을 인수하는 등 에콰도르, 수단, 인도네시아에서 연거푸 경쟁국 인도를 제치고 유전개발사업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중국은 이처럼 국영기업을 내세워 해외투자에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석유확보전은 국영기업 특성상 국가전략 차원에서 장기투자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국제적인 석유메이저에 비해 기술수준이나 브랜드 가치에서 열위에 있다는 단점이 있다.해외투자와 함께 중국은 석유공급선을 다원화하고 전략석유비축시설을 건립하는 등 다각도로 에너지 안보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96년만 해도 중국의 원유수입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이란, 오만, 앙골라, 예멘에서 이뤄졌지만 지난 10년간 구매처를 다양화해 2003년 말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의 최대 원유공급원이 됐다. 이외에도 오만, 이란, 러시아, 베트남, 수단 등에서도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중국은 석유 순수입국이 된 이후 전략비축 계획을 준비해 왔다. 올해로 끝나는 제10차 5개년계획(2001∼2005년)에 따라 중국은 전략석유비축시설 건설계획을 갖고 있다. 2010년께 완성될 것으로 예상되며 1단계 비축계획은 총 1억배럴 규모로 알려져 있다. 수입량 기준으로 올해까지 35일분, 2010년까지 50일분의 비축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IEA 의무물량인 90일분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비축기지 건설은 3개 국영석유회사 중국석유화공, CNPC, 중화집단공사(Sinochem)에서 위탁받아 수행하게 된다.세계 제2의 에너지 소비국이기도 한 중국은 일찌감치 에너지사업과 에너지 절약사업을 중시해 왔다. 80년대부터 “에너지 개발과 절약을 모두 중요시하고 절약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에너지 절약을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계획에 포함시켜 온 것. 90년대에는 ‘중화인민공화국에너지절약법’을 내놓기도 했다.중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위협적인 수준이 아니지만 수송부문을 중심으로 석유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에는 2,400만대의 자동차가 있지만 2020년에는 1억4,00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2004년 말에는 자동차 효율성 기준이 법제화됐다.대체에너지 개발 역시 에너지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중국은 현재 전력생산에서 석유사용을 줄여가면서 수력발전, 핵발전, 풍력발전을 종합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수력발전계획은 기본 토대가 완성된 상태로 2020년이 되면 수력발전 자원량의 70%를 활용할 수 있도록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일본석유회사·종합상사 ‘앞장’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자원확보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기업들은 세계 각지로 달려나가 유전이나 석탄광 등 자원확보에 발벗고 나섰고 정부는 제도개선과 자금지원 등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일본에서 해외자원 개발은 석유회사나 종합상사 등 대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 1위 석유업체인 신일본석유는 9월 초 ‘일본판 석유 메이저’ 계획을 발표, 국내외 업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신일본석유는 2015년까지 총 1조엔을 투입, ‘자주개발 원유’의 생산량을 일산 30만배럴로 현재 보다 2배 가량 늘린다는 계획이다. 중국, 브라질 등 신흥공업국들의 원유소비가 급증하면서 예상되는 세계적인 원유수급 불안에 대비해 국내에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하는 게 목적이다.이 회사는 새로운 유전을 취득하거나 상업생산 중인 유전을 매수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 중이다. 신규 유전 개발 대상지로는 동남아시아, 호주, 멕시코, 캐나다, 북해 등 5곳을 집중 검토하고 있다.신일본석유는 현재 일산 100만배럴을 수입 중이며 이중 15만배럴이 ‘자주개발 유전’에서 나오는 물량이다. ‘자주개발 유전’이란 일본 석유회사가 권익을 갖고 있는 유전에서 개발되는 원유를 말한다. 일본 기업들은 세계 60개 지역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있으며, 총산유량은 일산 60만배럴로 국내 소비량의 10%를 넘어서는 수준이다.종합상사들도 해외유전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미쓰이물산은 9월 말 중동 카타르에서 단일 생산설비로 세계 최대 능력을 가진 액화천연가스(LNG)의 생산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카타르 국영석유회사와 미국 코노코필립스가 계획 중인 LNG 개발사업의 권익 1.5%를 취득하는 내용이다. 카타르는 2010년에는 연간 7,700만t의 LNG를 생산해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 생산국이 된다.마루베니 등도 최근 미국 석유기업 마라손과 공동으로 서아프리카 기니아에서 LNG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종합상사는 2~3년 전부터 회사 수익의 50% 이상을 해외자원 개발 프로젝트에서 거둘 정도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일본 정부도 국가 차원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최대 프로젝트는 러시아산 원유를 시베리아를 거쳐 국내로 직접 들여오는 4,300㎞의 송유관 건설 계획이다. 러시아 정부와 협상 중인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가 확정되면, 공사는 내년부터 4년간 실시될 예정이다. 원유 수송능력은 연간 8,000만t으로 일본의 안정적인 원유조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또 중국과 영해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이 9월 중 시험생산에 들어간 상태여서 일본도 조만간 시추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풍력, 태양열, 바이오 등 신에너지원 개발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공급부족이 예상되는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줄여나가겠다는 전략이다.정부는 2003년부터 ‘신에너지 이용 특별조치법’을 시행 중이다. 이 법에 따라 전력회사의 경우 총발전량의 일정비율을 풍력 등 신에너지를 이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의무화 비율은 2003년 0.39%에서 2010년에는 1.35%까지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도호쿠, 규슈 등 4개 전력회사는 지난해 풍력발전사업자로부터 38만㎾의 전력을 사들였다.태양열 발전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분야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주택용 태양열 발전은 현재 16만호에 달하고 있다. 주택 등을 포함한 태양열 발전량은 하루에 86만㎾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태양전지 보급 확대를 위해 90년대 이후 총 1,300억엔의 보조금을 지원했다.기업들은 정부 지원 아래 GTL(천연가스를 일산화탄소와 수소로 전환, 분자구조를 바꿔 만든 경유) 및 DME(천연가스 및 중질유로부터 추출하는 무색투명한 가스)등 석유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신일본석유와 코스모석유는 GTL 실증 플랜트를 내년에 건설한다. 로열더치셸 등 외국업체들이 개발한 제품보다 비용을 20% 가량 낮춘 방식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철강회사인 JFE홀딩스는 차세대 연료 주역으로 부상한 DME 생산공장을 홋카이도에 건설, 실험 작업에 들어갔다.유럽천연가스로 석유 대체 ‘대세’“천연가스는 석유 다음의 ‘넥스트 프라이즈’(Next Prize)가 된다.”에너지 문제 전문가인 다니엘 예르긴의 전망이다. 예르긴은 석유산업의 역사를 소설처럼 그려낸 저서 <더 프라이즈(The Prize)>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예측을 현실화한 곳이 있다. 바로 유럽이다.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천연가스를 주목한 유럽은 이미 천연가스 인프라를 어느 정도 갖췄다. 천연가스는 기체상태여서 액체상태인 석유보다 이동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국제수송이 발달한 석유와는 달리 천연가스는 대부분 장거리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된다.1970년대 북해에서 대형 가스전이 발견된 이후 유럽연합(EU)은 회원국에 장거리 수송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영국은 1만8,000㎞의 파이프라인을, 독일은 6만3,000㎞, 이탈리아는 2만5,000㎞, 프랑스는 3만㎞의 파이프라인을 설치했다. 영국의 경우 1차 에너지 소비 가운데 천연가스 비중은 38.6%로, 이미 석유 비중(35%)을 초월했을 정도다.유럽이 천연가스로 눈을 돌린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석유소비량이 만만찮아서다. 2004년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에너지 최다 소비 10개국에 유럽의 3개국이 포함돼 있다. 6위 독일은 3억3,200만TOE(석유환산톤), 8위 프랑스 2억6,100만TOE, 9위 영국은 2억2,300만TOE였다. 석유소비 톱10 국가에도 4위 독일, 9위 프랑스, 10위 이탈리아가 진입, 유럽의 석유소비량을 과시했다.유럽이 천연가스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천연가스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에너지 공급 비관론자들은 천연가스도 석유를 대체할 완벽한 에너지원은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석유는 2020년 이내 생산고점에 달하고, 천연가스의 생산고점도 석유보다 길어봐야 10년 정도라는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은 천연가스 이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에너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EU의 에너지 수입의존도 증가 또한 보다 강력한 에너지 대책을 세우게 된 배경이다. EU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2000년 50%에서 2030년 70%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밖에도 석유가격 상승, 석유시장의 불안정, 기후변화협약, 단일 에너지시장 대응을 위해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안보를 위한 유럽의 전략에 관한 그린 페이퍼’를 2000년에 발표했다.이 전략은 신ㆍ재생에너지 개발 강화, 에너지 효율화, 에너지 절약 정책 강화, 에너지 기술개발 강화, 원자력 안정성 확보, 핵폐기물 처리기술 개발, 에너지 수입다변화를 담고 있다. 구체적 실행방안을 살펴보면 2010년까지 EU는 전력생산의 20%를 신ㆍ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다. 또 2010년까지 건물부문 에너지 소비의 22%를 절약하고, 2020년까지 연료(휘발유와 경유)의 20%를 바이오연료로 충당한다는 계획 또한 추진 중이다.유럽이 특히 신ㆍ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선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교토의정서다. 교토의정서에 따라 EU 회원국들은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과 비교해 평균 8% 줄여야 한다.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로는 이 기준에 맞추기 쉽지 않다. EU 회원국의 전체 에너지소비량 중 신ㆍ재생에너지 비율은 현재 6% 정도다. 2010년까지 평균 12%로 늘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다.녹색에너지라고도 불리는 신ㆍ재생에너지 개발에 특히 적극적인 곳은 독일과 스페인 등이다. 환경정책을 중시하는 녹색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독일은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 대신 독일 전역에 1만5,000대의 풍력발전기를 돌리고, 50억유로 규모의 풍력에너지 시장을 만들었다. 아울러 독일 정부는 ‘태양열 지붕 10만개 보급운동’을 펼치는 등 태양열을 이용한 녹색에너지 확산에도 적극적이다. 화력발전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독일은 전체 에너지의 10% 이상을 신ㆍ재생에너지에서 얻고 있다.지리적으로 태양력과 풍력개발에 유리한 스페인 또한 녹색에너지 확보에 나섰다. 스페인 정부는 2010년까지 신ㆍ재생에너지 비율을 29.4%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그밖에도 영국은 2002년에 장기 에너지 정책과제와 대책을 담은 ‘더 에너지 리뷰’(The Energy Review)를 발표했다. 주 내용은 탄소배출량 삭감을 위한 획기적인 기술혁신, 에너지 수입의존도 증대에 따른 공급원의 다양화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