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605호 (2007년 07월 09일)

가문경영의 성공은 ‘여성’에 달렸다

기사입력 2007.07.03 오전 11:15

2800년 전의 호메로스가 지은 <오딧세이아>는 전쟁과 인간사를 그린 대서사이지만 여기에는 명가의 조건과 현대 경영에 요구되는 리더십 덕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혜로운 아버지 오딧세우스, 스승 멘토, 유혹을 물리치고 20년 동안 가정을 지킨 현숙한 어머니 페넬로페, 아버지의 뜻을 이은 아들 텔레마코스 등이 성공한 가문 경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문의 지속 가능 경영을 가능케 한 요인은 단순히 남성적 리더십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먼저 오딧세우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가문이 위기 국면에서 힘을 발휘한 것은 다름 아닌 가족 간의 ‘신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 신뢰의 핵심에는 남성적 리더십보다 여성적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오딧세우스의 지혜로 트로이전쟁은 그리스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포세이돈의 노여움으로 10년 동안을 바다에서 표류하게 된다. 이때 아들 텔레마쿠스와 아내 페넬로페는 온갖 회유와 강압 속에서도 끝까지 왕국을 지켜나간다. 특히 왕비 페넬로페는 오딧세우스가 죽었다며 재혼할 것을 요구하는 정적들의 회유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나 정적들은 모두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했지만 페넬로페만은 남편이 살아 돌아올 것을 믿었다.

이때 페넬로페가 남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재혼을 선택했다면 오딧세우스는 더 이상 지혜로운 왕, 위기관리에 뛰어난 왕이 될 수 없다. 오딧세우스의 귀환은 아내 페넬로페가 남편이 끝내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더욱 돋보인 것이다.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에서 더욱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전장에서 남편의 생사가 불분명한 경우 끝까지 살아 돌아올 것이라며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는가 하면 개가를 한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흔들림 없는 믿음인 것이다. 아내가 개가한 경우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남편은 오히려 죽음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물론 오딧세우스도 아내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영생을 줄 테니 같이 살자는 여신 칼립소와 동거하다 유혹을 물리치고 ‘인간’인 아내가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간다.

흔히 가문의 성공 조건으로 ‘여성’이 꼽힌다. 특히 현숙한 아내를 얻는다는 것은 개인의 성공과 가문의 도약을 보증하는 것과 같다. 셋째인 율곡 이이를 대학자로 만든 이는 바로 현숙한 어머니 신사임당이다. 사임당은 무능한 남편과 가난한 집안 형편을 탓하지 않고 이른바 ‘부덕(婦德)’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부분 이런 경우 남편과 가정을 탓하기 십상이다.

반면에 이른바 ‘팜므 파탈(악녀 또는 요부)’은 가족과 가문, 심지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트로이전쟁의 원인이 된 것도 팜므 파탈인 헬레나 때문이다. 헬레나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레오스와 결혼하지만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유혹에 넘어가면서 10년간에 걸친 트로이전쟁의 발단을 제공한다. 흔히 “어떤 여자가 시집오느냐에 따라 집안이 흥하고 망하기도 한다”는 속된 말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는 기업의 인재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인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도약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500년을 지속해 온 명문가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덕목이라면 흔히 권력의 정상에 오른 인간이 빠질 수 있는 오만함에 대한 경계다. 저헌 이석형 가문에서 볼 수 있는 ‘계일’과 같은 덕목이다. 리더가 권력과 명성, 부에 도취한 나머지 한순간 오만에 빠지고 신중함과 절제력을 잃게 되면 그 조직은 치명적인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이것이 다름 아닌 절대 권력을 가진 강자가 빠지기 쉬운 ‘오만’, 즉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히브리스(hybris)다. 그리스인들은 수많은 비극을 통해 이 히브리스를 경계했다. 이는 기업 경영에 그대로 적용된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사건처럼 한국 재벌의 ‘황제식 경영’이라는 히브리스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결국 명문가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신뢰’라고 볼 수 있다. 가족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경받는 가문으로 격(格)을 높일 수 있었고 단계적으로 진화해 왔던 것이다. 기업도 이러한 수순을 밟으면서, 짐 콜린스가 말한 것처럼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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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7-07-03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