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맞는 남성상 찾기

과거 한국 남성들은 딱 두 분류만이 존재했었다. 아니, 실은 그보다 더 많은 남성들이 존재했지만 획일화된 사회적 통념 속에서 남성들은 스스로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남성다운 남성과 남성답지 못한 남성. 이처럼 한국에서 남성이라는 존재는 우리 스스로 만든 몹쓸 남성다운 기준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맞춰야만 손가락질을 면할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을 꾸미는 행위는 참으로 남세스럽고 남성답지 못한 행위로 치부했다. 일례로 남성이 컬러를 고를 때는 흰색 검은색 회색 감색 안에서 모든 선택이 이뤄져야만 했고 취미 생활도 다양하지 못했다. 요리를 하는 남성, 책을 읽어주는 남성은 요즘에는 최고로 인기가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성답지 못하다고 평가절하 당했다.사실, 남성다운 것에 남성들이 집착하는 것은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성을 휘어잡을 수 있는 남성만의 터프함은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이 너무 무뚝뚝하다고 불만을 토로할지언정 연애 초기에는 그런 터프한 남성 내지는 소위 말하는 ‘나쁜’ 남성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바야흐로 한국에도 다양한 문화가 받아들여지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불어 닥친 다양한 남성의 스타일들은 그 자체로 남성들을 여러 부류로 포지셔닝(positioning)했고 남성들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됐다.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가장 클래식하고 대표적인 남성상은 바로 ‘마초(macho:남성적인 사람)’다. 흔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주의에 빠진 남성이라고 오인됐지만 2009년의 마초는 좀 다르다. 필자는 수컷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일명 ‘사내대장부’같은 남성이라고 부르고 싶다.그런 의미에서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는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싱글 몰트위스키 한잔과 쿠바산 시가가 연상되는 마초 남성은 남성적인 느낌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친구를 좋아하고 인간관계에서 의리를 소중히 여기며 여성에게 무뚝뚝해 보이지만 자신의 애인만큼은 누구보다 아끼고 책임질 줄 안다.‘나만 좋아해 주는 남성’이 여성들의 이상형에 단골 남성상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여성에게 인기도 많은 스타일이다. 패션에서는 트렌드에 민감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클래식한 옷을 즐겨 입는다. 남성의 선 굵은 실루엣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이탈리아 슈트가 대표적이다.특히 제임스 본드가 입는 슈트로 유명한 ‘브리오니’는 마초들에게 딱 어울리는 맞춤 슈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주말이면 피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힘 좋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몸을 싣고 오프로드를 누빌 것만 같다. 그들의 차로는 당연히 4000cc를 훌쩍 넘기는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가 어울릴 것이다. ‘태그호이어’ 시계를 찬 핏줄 선 강인한 팔뚝으로 스티어링 휠을 힘차게 돌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 선하다.남성의 다양성이 본격화되는 10년 전부터는 유럽에서부터 먼저 ‘메트로 섹슈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들은 패션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를 꾸미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남성을 뜻한다. 메트로 섹슈얼은 남성의 소비 형태가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됐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나 디자이너에 대해 한참이나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고 쇼핑을 즐기고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일명 ‘닭볏머리’를 유행시킨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대표적인 메트로 섹슈얼이다.이들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정확히 꿰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매장에서 옷을 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찾아낸다. 피부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즐겨 쓰는 화장품도 따로 있다. 이들의 가방에는 컬러 로션도, 비비크림도 언제나 준비돼 있다. 폴 스미스 같은 샤프하고 경쾌한 재킷과 단추를 서너 개 끄른 스트라이프 셔츠를 매치하고 도심 속 아스팔트를 누비는 모습은 메트로 섹슈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의 차는 섹시한 외관과 강력한 성능을 갖춘 ‘아우디’의 스포츠 카 ‘R8’이 적당할 듯하다.메트로 섹슈얼이 한참 화제가 됐을 때 여성에게 이기적인 그들에게 반발적으로 탄생한 ‘위버 섹슈얼’이라는 남성에 관한 용어가 곧이어 등장했다. 위버 남성은 마초와 메트로 섹슈얼의 장점만 조합한 남성을 뜻한다. 즉, 겉모습은 메트로 섹슈얼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덜 까다로우면서도 여전히 남성다운 섹시함을 갖추고 있는 남성이 바로 위버 섹슈얼이다.대표적인 한국의 위버 섹슈얼은 아마도 영화배우 ‘하정우’일 것이다. 패션을 잘 알지만 내세우지 않은 듯 자연스러우며 남성다운 당당한 면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그의 이미지는 매우 이지적이다. 위버 섹슈얼은 언제나 면이나 울 같은 천연 소재의 패션을 즐기며 브랜드 로고가 드러나지 않게 점잖게 패션을 즐길 줄 안다. 또한 친환경을 생각하며 하이브리드 같은 차를 운전하고 오가닉 음식을 먹으며 웰빙을 추구한다.마초, 메트로 섹슈얼, 위버 섹슈얼을 넘어 최근 가장 주목 받는 남성상을 꼽으라면 단연 ‘꽃남’일 것이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F4로 대표되는 만화같이 생긴 주인공 남성들은 예쁘장하게 생긴 남성을 뜻하는 기존의 ‘꽃미남’에서 더 진화된 모습이다. 세련된 패션과 여유롭고 부드러운 분위기, 여성을 배려하는 태도 등에서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F4를 모델로 한 각종 업계는 꽃남의 이미지를 마케팅에 적용해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특히 ‘아우디 코리아’는 얼마 전 끝난 ‘2009 서울 모터쇼’에서 이례적으로 남성 레이싱 모델 ‘F10’을 기용하는 파격을 선보여 행사에 참관하러 온 여성 관객들과 매체에 뜨거운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꽃남 패션은 클래식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세련됨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화사한 파스텔 톤 셔츠나 니트, 정교하게 잘 재단된 블레이저(blazer), 구김 없는 면 팬츠에 스니커즈(sneakers)의 매치 등이 그러하다. 일명 교복 패션으로 불리는 그들의 이 프레피 룩(preppy look)은 과거에는 절대로 한국 남성들이 소화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장르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열풍에 힘입어 국내 브랜드 중 ‘엠비오’ ‘빈폴’이나 ‘지오지아’ ‘TNGT’ 등에서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이와 유사한 스타일을 찾아볼 수 있다.끝으로 ‘초식남(草食男)’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로, 말 그대로 초식동물처럼 고고하고 우아한 이미지의 남성을 뜻한다. 한국 남성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들은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즐기기보다 자신을 위한 취미를 즐기고 쇼핑에 관심을 가지는 등 다소 여성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애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자기 계발이나 취미 활동에 힘을 쏟고 이성을 친구처럼 대하는 데에 익숙하다.한국에서는 홍대 앞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모제너레이션(Emo-Generation: 우울을 즐기는 새로운 세대를 일컫는 말)’의 느낌을 연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이들은 약간 중성적인 느낌으로 패션을 즐기는데 예를 들면 눈썹을 다듬는다거나 아이라인을 강조하는 눈 화장도 서슴지 않는다.쇼핑도 눈길을 끈다. 백화점보다 구제품이나 멀티숍에서 한정품(리미티드 에디션) 등을 골라 소비한다. 이들은 대개 여성들과 취향이 같고 대화가 잘 통하기 때문에 최근 여성들에게 ‘절친’으로 각광 받고 있다. ‘초식남’은 앞서 이야기한 마초와 가장 반대선상에 있는 남성상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성에게 성적 호감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덜 공격적인 모습으로 여성에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스타일의 남성상이며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부류임이 분명하다.1994년 호주 매쿼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 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 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보그, 바자, 엘르, 지큐, 아레나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 버블 by 샴페인맨’ ‘행복한 마이너’가 있음.황의건·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