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

지난 10년, 세계는 격변했다. 철옹성 같던 미국이 흔들리고 인근 국가인 중국은 급부상했다. 한국 경제는 삼성과 현대차 등 기업들의 맹활약으로 세계에서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산이 높을수록 계곡은 깊다.

양극화·부동산·가계부채·북한 문제 등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수두룩하다. 지난 10년을 발판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과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을 만나 미래의 ‘또 다른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에 대해 물어봤다.

[뉴 밀레니엄 10년을 말한다] “도시화·고령화·온난화가 핵심 이슈로 떠오를 것”
뉴 밀레니엄 10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뉴 밀레니엄 10년은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의 세력 판도가 바뀐 변환기였습니다. 2001년 9·11 테러는 상징적인 사건이에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팍스아메리카를 추구하면서 전 세계 정치·군사·경제 등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됐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심장부가 군사적으로 공격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본토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공격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자신감이 여지없이 무너졌어요. 게다가 2007년 금융 위기는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미국의 경제 패권이 무너지는 신호탄이었습니다.

9·11 테러와 금융 위기로 미국이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동북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잘 이겨낸 것은 물론 세계 1등 기업이 늘어나면서 국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여전히 불안하기만 한 세계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세계경제의 침체는 2001년 9·11 테러부터 시작됐습니다. 9·11 테러 후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국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고 금리를 낮췄습니다. 이렇게 풀어놓은 자금이 갈 데가 없어지자 리스크가 큰 파생 금융 상품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면서 거품이 생겨난 겁니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차츰 안정돼 갈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에도 세계 평균 성장률은 3~4% 정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지난 10년간 부동산과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대상 수출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기업들의 경쟁력도 회복되고 있습니다. 4~5%의 성장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부동산과 가계 부채가 뇌관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5~10%만 하락해도 소비 여력이 뚝 떨어집니다. 부동산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한편 세대 갈등, 빈부 갈등, 이념 갈등 등 사회적 갈등을 풀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난 10년간 한국 기업들은 세계 정상에 당당히 올라섰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요.

높은 교육열, 우수한 산업 인력, 오너 경영이라는 특유의 기업지배구조, 정부의 강력한 지원 등에 힙 입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1등 기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고 봅니다.

더 많은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핀란드와 같은 유럽의 강소국은 인구가 약 500만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노키아 같은 세계적 기업이 하나만 있어도 나라 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10~20개는 있어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4만 달러까지 올라설 수 있습니다.

이는 내수시장이 작고 천연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철강·조선·가전 등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정보기술(IT)·건설·바이오 분야 등에서도 걸출한 기업이 등장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탄력성과 끈기, 교육열 등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 기업들은 하드웨어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흔히 향후 10년은 창의력이 중시되는 시대라고 하는데 대안은 뭘까요.

한국의 인재 양성은 획일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하늘을 그리는데 파랑색이 아닌 빨강색으로 그리면 ‘이상한 놈’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 기업들의 전략은 한마디로 추종자 전략입니다. 1, 2등 기업을 빠르게 따라가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정상에 오른 우리 기업들은 이제 스스로가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등산할 때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앞사람만 보고 걸으면 되지만 선두에 있는 사람은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고민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늘 새로운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성장이 눈부셨습니다. 인근 국가로서 한국의 대응책은 무엇일까요.

중국은 양날의 칼입니다. 한편으론 중국의 성장을 이용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중국의 의존도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조심해서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술을 빼앗기기 싫어서 거리를 둔다고 하더라도 중국은 계속 성장할 겁니다. 따라서 적당한 수준의 기술이전은 필요합니다.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 일본·미국·유럽 등을 견제하면서 한국과 중국이 동반 성장하는 게 중요합니다.

북한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남북이 같이 살아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는 뒤로 미뤄 놓는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에 기대서도 안 됩니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합니다. 결국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적 대응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북한이 자연스럽게 시장경제로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남북문제는 현 정부가 미루면 다음 정부의 일이 많아지고, 다음 정부가 또 미루면 그 다음 정부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향후 유망 비즈니스는 어떤 것일까요.

대공황이 끝나고 나서 소비재와 식품 산업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는 중화학공업·자동차·석유화학·항공기·조선산업 등이 성장했습니다. 1, 2차 오일쇼크 이후에는 에너지 관련 산업이 부상했고요. 1990년대 들어 지식산업이 발전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의 기업이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앞으로는 도시화·온난화·고령화가 핵심 이슈로 떠오를 겁니다. 도시화의 경우 중국은 향후 10~15년간 전체 인구 중 절반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IT 산업은 그때까지 주목받을 것입니다. 고령화에 따라 헬스 관련 산업, 바이오 산업이 각광받을 것입니다. 온난화는 에너지 관련 사업의 부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향후 선진국인 미국·일본·유럽의 경제성장은 침체될 것입니다. 대신 개도국의 성장은 지속될 겁니다. 당연히 중국·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아프리카 등의 개도국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후진국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자원 개발에도 적극 뛰어들어야 하고요.

우리 국민들은 어떤 자세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할까요.

향후 10년은 우리나라가 G10에 들어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짓는 시기입니다.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한국이 1인당 GDP가 1만 달러일 때 2만 달러에 진입하면 선진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2만 달러를 달성했을 때 선진국은 이미 3만~4만 달러에 도달했습니다.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합니다.

우선 정부가 큰 비전을 설정하고 멍석을 깔아줘야 합니다.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기업 환경을 경쟁력 있게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결과주의를 버리고 과정도 중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선진국의 가치관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걸맞은 사회적 자본을 갖추는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약력 : 1952년생. 80년 서강대 영문과 졸업. 89년 애리조나 주립대 경영학 박사. 2004년 현대경제연구원 대표이사 원장(현). 2006년 글로벌인재포럼 자문위원(현). 2007년 한국전자거래협회 이사(현). 2007년 대한상공회의소 자문위원회 위원(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