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만나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 주제 중 하나가 ‘자식 농사’다.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나 수능 성적은 자녀들만의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삶을 평가하는 성적표나 다름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위 일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너무나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일반 가정은 공교육만으로는 부족해 가계소득의 10% 정도를 사교육비로 지출한다. 더욱이 대학 입시 학원에 지불하는 비용 규모는 보통 가계의 정상적인 지출 규모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일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고, 사회적 지위 향상에도 어려움이 많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류 대학 입학이라는 경쟁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개별 가정이 감내하는 모든 희생이 과연 합당한 가치를 창출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우선 일류 대학 명패가 개인의 취업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기능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공공 부문이나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은 자격시험 또는 선발시험과 같은 객관적 기준으로 선발되기 때문에 일류 대학이라는 정성적 요소가 반영될 여지가 없다.

또한 일류 대학 출신들만이 직장 생활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그룹의 연초 인사 내용을 보면 지방 대학 등 소위 비 일류 대학 출신 고위급 임원이 많이 선임된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기업에서도 출신 학교의 다양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일류 대학 출신이라도 획일적인 교육에 따른 창의성 부재, 반복적 문제 해결 중심에 따른 사고력 부족, 좋은 성적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따른 개인주의가 가져오는 협력 정신의 쇠퇴 등은 직장에서 성공을 방해하는 장애 요소다. 오히려 일류 대학 출신이 성공에 불리한 측면도 갖고 있는 셈이다.

일류 대학 인맥이 성공으로 가는 중요한 열쇠라는 인식 또한 우리 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인맥은 인생의 중요한 자산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교사상에 따라 학연을 중시해 왔다.

그러나 요즘은 사회 문화의 변화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인맥 형성 과정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대학 동창이라는 유대감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젊은 세대로 갈수록 학연 중심의 폐쇄적 인맥은 사라져가고 TGIF(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 기술이 가져온 소셜 네트워크의 개방형 인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일류 대학에 보내지 않고도 자녀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 있다. 자녀들을 일류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무리한 노력보다는 남들보다 빨리 철들게 도와줘야 한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는 정신적 독립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마음속에 열정을 품고 있어 행동이나 눈빛에서 남들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취업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고 취업 후 남보다 더 노력하기 때문에 발전 속도도 빠르다.

불행히도 이런 정신적 성숙이 서구사회에 비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는 늦게 찾아온다.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하지 못하고 삶에 대한 명확한 비전 없이 방황하는 대학생이 많으며, 심지어 사회 진출 후에도 자기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일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무리한 노력과 학벌 지상주의에 따른 비효율적 교육이 가져오는 정신적 미성숙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큰 과제다. 일류대를 보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가정과 사회 전체의 노력에 대한 바람직한 투자 효과가 과연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좋은 교육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CEO에세이] 일류대 진학 투자 대비 효과는
최병인 이지스엔터프라이즈 사장

약력 : 1961년생. 84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졸업. 89년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기계공학 박사. 93년 맥킨지 및 액센츄어 근무. 2000년 효성데이타시스템 사장. 2002년 노틸러스효성 사장. 이지스엔터프라이즈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