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는 “정당이 민주주의를 창출한다”며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정당은 국민의 세금인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정당들의 수입 중 국고보조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 자생 능력이 없는 정당을 가리켜 ‘기생 정당’이라는 말도 나온다. 또한 지출 구조에서도 정당 본연의 역할인 정책 개발비의 비중이 낮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국민들의 더 나은 살림살이를 부르짖고 있는 각 정당의 실제 살림살이는 어떤지 들여다봤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수입&지출 대공개] 이월금 ‘수백억’…정책 개발비 ‘인색’
기업은 재무제표상의 매출액·순이익과 함께 시가총액 등의 기준으로 가치가 평가된다. 기업은 금전적인 이익을 발생시키기 위해 모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만일 시장에서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주가는 오르고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당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정당은 선거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선거를 통해 더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고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모인 집단이 정당이다. 대중적인 지지는 정당의 가치와 위상을 판가름 짓고 이는 표를 통해 여실히 증명된다. 대중적인 지지는 정당이 내놓는 정치적 견해나 정책에서 시작된다. 선진 정치에서는 좋은 정책과 인물을 가진 정당에, 우량 기업에 투자자가 몰리는 것과 같이 정치 후원금이 몰린다.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입되는 합법적인 정치자금은 정치 구조적·기능적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 불을 피우기 위한 불쏘시개와 같은 작용을 한다. 정당의 정치자금 유입과 지출은 정치 발전을 원활하게 촉진하는 발화장치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2011년도 정당·후원회의 수입·지출 현황을 통해 주요 정당의 지난해 합법적인 정치자금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정당의 수입과 지출 구조를 분석해 보면 각 정당의 가장 큰 수입원은 국민의 세금이고, 정책 개발보다 인건비와 조직 운영에 돈을 더 많이 쓰는 후진성을 띠고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주요 정당의 평균 수입 내역에서 보면 국고보조금이 29.9%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전년도 이월금(28.5%)과 당비(26.8%)가 수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는 기탁금(6.1%)·차입금(3.4%)·기타(5.3%)로 구성돼 있다. 한편 지출 내역에서는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비를 의미하는 기본 경비가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는 56.8%를 차지한다. 하지만 정당의 핵심 활동인 정책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평균 7.7%에 불과하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수입&지출 대공개] 이월금 ‘수백억’…정책 개발비 ‘인색’
새누리당 재산, 민주당의 10배

정당들의 2011년 기준 재산 총액을 보면 새누리당이 495억 원으로 가장 많다. 민주통합당의 재산이 약 52억 원인 데 비하면 10배 가까이 많다. 그리고 자유선진당이 6800여만 원, 통합진보당이 10억여 원, 창조한국당은 마이너스 48억여 원, 진보신당은 4억여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비즈니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 얻은 자료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재산(495억 원) 내역은 토지 165억 원, 건물 78억 원, 비품 18억9000만 원, 기타 93억 원과 전년도 이월액 일부를 포함한 현금 139억 원이다. 민주통합당(52억 원)은 토지는 없고 건물 5000만 원, 비품 12억 원, 기타 5억8000만 원, 현금 33억 원이었다.

정당들의 수입 내역은 전년도 이월금·당비·기탁금·국고보조금·차입금·기타 등으로 구성된다. 각 내역별로 살펴보면 우선 각 정당별로 전년도 이월금 규모가 크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518억6100만 원의 수입을 올렸고 이 중 379억2000만 원을 지출해 139억 4100만 원의 차익을 거뒀다. 민주통합당은 283억6900만 원 수입에 234억1100만 원을 지출해 49억5800만 원이 남았다. 이 차익은 올해로 이월됐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수입&지출 대공개] 이월금 ‘수백억’…정책 개발비 ‘인색’
새누리당은 지난해에도 2010년의 이월금이 수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0년의 이월금은 230억 원 규모로 전체 수입에서 44.3% 규모다. 정당별로 매년 이월금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지난해와 같이 전국 단위 공직 선거가 없는 해에는 일반적인 행사 비용 외에 큰 지출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와 같이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는 해에는 지출이 크게 늘기 때문에 선거에 대비해 일반적으로 자금을 비축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의 수입 내역에서 이월금 다음으로 큰 비중은 국고보조금(25.7%)이다. 133억4900만 원에 달한다. 국고보조금은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구분되며 지급 당시 정당의 소속 의원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 등 의석수 비율을 중심으로 배분된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같은 보수 대정당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새누리당은 2011년 전체 국고보조금의 40% (133억4900만 원)를 가져갔다. 그리고 통합민주당이 33.72%(112억3100만원), 자유선진당이 6.85%(22억8100만 원), 미래희망연대가 6.74%(22억4600만 원), 민주노동당이 6.03%(20억700만 원)를 배분받았다. 새누리당의 국고보조금 비중은 이월금에 이어 두 번째였지만 나머지 정당에서는 국고보조금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민주통합당은 총수입의 39.5%, 자유선진당은 50%에 달한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수입&지출 대공개] 이월금 ‘수백억’…정책 개발비 ‘인색’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수입&지출 대공개] 이월금 ‘수백억’…정책 개발비 ‘인색’
국고보조금 제도는 기존 여당이나 기성 정치 세력에 유리하게 작용해 정치 구조의 빈부 고착화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정당의 균형 발전 목적이 입법 취지라면 독일과 같이 최근 실시한 총선에 참여한 정당의 유효 득표수 비율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또한 당의 개혁 및 자립 노력과 연계해 정당의 당비 납부 등 정당의 자체 수입에 근거해 각 정당에 차별적으로 배분, 지급하는 매칭 펀드식도 제안되고 있다.

정당의 다른 주요 수입원은 바로 당비다. 당비는 정당의 소속 당원으로부터 받을 수 있고 일반당비·직책당비·특별당비 등으로 구분된다. 통합진보당은 5만여 당원들이 소득에 따라 한 달에 1만 원 안팎으로 내는 당비가 전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많은 정당이 좋은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정당은 당비 수입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반면 통합진보당·진보신당 등 진보 정당은 매년 당비 수입 상황이 증가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치자금법에 당비 납부 한도액의 제한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직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특별당비나 기부금을 받는다면 처벌받기도 한다. 공천과 관련해 특별당비 명목으로 돈이 오고가면 정당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정당별 당비의 비중은 새누리당이 20.8%, 민주통합당 26.8%, 자유선진당이 11.8%에 달한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수입&지출 대공개] 이월금 ‘수백억’…정책 개발비 ‘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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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용 정치 여전

정당의 지출과 관련해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자금이 필수지만 지출의 약 80~90%가 기본 경비, 그 밖의 경비, 조직 활동비 등 운영자금에 투입되고 있다. 기본 경비에는 인건비와 사무소 설치 운영비 등이 포함되며 조직 활동비는 당원에 대한 교육과 연수, 전당대회·창당대회를 비롯한 정당의 행사 관련 비용이 포함된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총지출 379억2000만 원의 55.15%인 209억1400만 원이 기본 경비였다.

게다가 그 밖의 경비(37억8500만 원), 조직 활동비(87억3700만 원)을 합치면 총지출의 88.1%에 달한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로 총지출 234억1100만 원 중 이 3가지 항목의 비중이 88.8%에 이른다. 자유선진당(총지출 45억5100만 원)은 기본 경비의 비중이 64.2%로 높은 수준이며 3항목 비중은 84.1%다. 기본 경비 외에 기타 경비 지출이 많다는 것은 돈의 사용처가 투명하지 못하고 밝히기 곤란한 어두운 곳이 많다는 의미일 수 있다.

반면 정당의 고유 기능인 정책 개발비의 비중은 평균 7.7%에 불과하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7%, 대표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6.25%이고 통합진보당이 11.84%로 그나마 높은 편이다. 국고보조금 중 정책 개발비 의무 비율이 30%로 정해져 있어 정당들은 최저 수준만 빠듯하게 쓰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책연구소에 박사급 연구 인력은 턱없이 모자란다. 당연히 정책 개발 실적이 미미하고 정책 연구 분야가 특정 부문에 편중돼 있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수입&지출 대공개] 이월금 ‘수백억’…정책 개발비 ‘인색’
통일·외교·통상·재정 등의 분야의 비중이 높고 환경·산업자원·건설교통 부문은 미약하다. 정책 개발을 위한 토론회나 공청회를 통한 의견 수렴 절차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중·장기적 연구보다 선거에 맞춰 급조되거나 정치적 상황, 여론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정책만 난무하는 것이 국내 정당 정책 개발의 현주소다. 결국 정당의 잦은 정책 변화는 유권자가 정당이나 후보자를 선택할 때 정책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현실로 귀결됐다.

정당으로 흘러가는 정치자금의 근거와 그 쓰임새는 모두 국민 주권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선거가 정당이나 정치인의 고비용 정치 구조를 개선하고 정책 개발이라는 정당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거 정당 넘어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
인터뷰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수입&지출 대공개] 이월금 ‘수백억’…정책 개발비 ‘인색’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 정당의 수입·지출이 모두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정당의 재정은 어떻게 변하는가.

선거가 있는 해에는 수입과 지출 모두 크게 는다. 선거비용에 대한 국고보조금이 의석수에 따라 많게는 몇 백억 원까지 나온다. 또한 소속 의원별로 후원회가 활발히 모금 활동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비자금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주요 정당의 계정별 수입 내역을 보면 이월금이 평균 28%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왜 그런가.

큰 선거에 대비해 비축하는 것이다. 전당대회 등 행사 비용 외에 평소에는 정당의 큰 지출이 없다. 이월금이 과다한 것은 지원이 과다하다는 의미다. 지원금은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우리나라는 선거비용을 국가가 모두 부담하는 선거공영제를 지향하지만 현실적으로 제한적이며 개인이 상당 부분 선거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개인 후원금은 상한선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상한선을 어기는 이가 많다.

반면 미국은 입후보자 개인이 모든 선거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대신 후원금 모금의 상한선이 없다. 하지만 한 명에게 받을 수 있는 후원금엔 제한이 있다. 따라서 보다 많은 소액 기부자를 확보할수록 더 많은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만일 소수 몇 명에게 후원금을 많이 받는다면 반드시 대가를 돌려줘야 하는 부패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 내역을 볼 때 ‘여부야빈(與富野貧)’ 현상이 뚜렷하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올해 선거로 정권이 바뀌어도 이 현상이 지속될까.

수입의 많은 부분이 의석수에 비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여야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런 현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에서 의석수 비율 중심으로 배분하는 데 따른 부작용은 없나.

의석수에 따라 국고보조금이 배분됨에 따라 공돈을 바라는 후보가 난립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선거 사례에서 보듯이 입후보했다가 결탁의 대가를 받고 철회하는 후보들이 있다. 국고보조금 제도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배분 방식과 비율, 액수 면에서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

정치 후원금에 대해 정치인과 국민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가.

많이 변하고 있다. 사실 국민의 정치의식은 상당히 선진국 수준으로 앞서가고 있지만 정치인들이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잡기 급급하다.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기려는 풍토 속에서 정치 후원금과 관련해 아직 부정적인 측면이 아직 남아 있다. 투명하게 관리도 안 되고 검증도 잘 안 된다. 그런 면에서 갈 길이 멀다.

민주 정당정치를 위해 당비·국고보조금·기탁금 등의 이상적인 수입 구성은 어떻게 되나.

당비 비중이 커야 대중 정당이 된다. 당원은 당비라는 의무이자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당원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진성당원이 많은 정당이 좋은 정당이다. 유럽은 국고보조금 비율이 높고 미국은 기탁금 비중이 높다. 각 사회에 따라 정당 수입의 구성은 유동적이다. 우리 사회는 아무래도 국고보조금이 많은 게 정상이다. 세금이 많이 투입되긴 하지만 불투명한 자금을 그나마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출 내역을 볼 때 정책 개발비의 비중이 평균 7.7%로 크지 않다. 이를 어떻게 보나.

정책 정당을 지향하려면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정책 노선을 확립해야 한다. 선진 정치는 보수·진보·보수좌파·진보우파 등 4~5개의 스펙트럼으로 정당 노선이 나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냥 선거 정당이다. 국내 정당의 정체성은 사실상 없다. 보수든 진보든 중·장기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단기적인 당의 정책 노선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국민도 각자 계층에 따라 지지 정당을 선택하기 쉽고 투표했을 때 어떻게 사회가 변할지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면 사회가 안정될 것이다. 정당의 정책연구소에 제대로 된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책연구소는 소수 인력에 여론조사나 그때마다 정당이 필요한 단기적인 정책 개발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