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은 앉아 있지 않았다. 지난 3월 19일 서울 광화문 사옥 1층 회의장에서 열린 ‘올레 경영 2기’ 출범 기자 간담회에서 이 회장은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착용하고 스마트폰을 든 채 자유롭게 무대 위를 누비며 간담회를 진행했다.

올레 경영 2기는 이 회장이 3월 16일 주주총회에서 회장에 연임된 후 새로운 임기를 맞이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회장은 3년 전 취임 이후 ‘올레’라는 기치로 ‘전화국’ 이미지가 강했던 KT를 ‘첨단 미디어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광고로 화제를 모았던 ‘쿡TV(현 올레TV)’를 시작으로 아이폰을 전격 도입해 국내 스마트폰 산업을 견인하기도 했다.
탈통신’ 선언…‘경쟁사는 유튜브’ T의 올레 2기 경영 주목받는 이유
실리콘밸리식 IT 생태계 주목

올레 경영 2기를 맞아 이 회장은 ‘글로벌 미디어 유통업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유통업체라고는 하지만 월마트·코스트코·까르푸 같은 회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KT가 유통하게 되는 재화는 ‘가상 상품(virtual goods)’으로, 음악·동영상·전자책·정보기술(IT) 솔루션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들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네트워크(통신설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아이튠즈 같은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 세계경제의 중심축은 ‘실체가 있는 상품(physical goods)’에서 ‘가상 상품’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며 “기존 사업 800개를 300개로 줄이고 신성장 동력에 집중할 것”이라며 “2015년까지 신사업 관련 인력을 15%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투자 계획도 전년보다 20% 늘릴 계획이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KT가 인수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함께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김진식 유스트림코리아 사장, 변진석 KT이노츠 사장, 한재선 넥스알 사장, 이한대 싸이더스FNH 사장, 김길연 엔써즈 사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인수 전과 동일하게 CEO로 사업을 이끈다. 이런 식의 인수·합병(M&A)은 한국 IT 생태계에서는 그간 낯선 것이었다. 인터넷 서비스 분야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대기업이 이를 인수하기보다 중소기업이 하는 사업에 직접 진출해 씨를 말리는 사례가 많았다.

반면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이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살리는 실리콘밸리식 IT 생태계는 그간 찾아보기 힘들었다. KT의 M&A 전략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서비스 분야에서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KT와 벤처기업의 이해관계가 잘 맞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동영상 검색 기술을 가진 엔써즈의 김길연 사장은 “동영상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어 유튜브를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네트워크와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에는 벤처기업의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봄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문규학 대표와 김일영 KT 부사장이 찾아와 ‘구글을 이길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생각하던 것을 그대로 말해 놀랐다”고 말했다.

김진식 사장은 한류를 통한 동영상 플랫폼의 세계화라는 꿈을 갖고 있고 한재선 사장은 클라우드 컴퓨팅 구축 기술로 세계무대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한대 사장은 지난해 KT 미래전략실 과장 시절 불쑥 이 회장을 찾아가 콘텐츠 사업의 방향성을 피력한 뒤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 회장은 “미래 성장 동력 5인방이 있기에 2015년 그룹의 비전을 설정할 수 있었다”며 이들을 치켜세웠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