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부탁을 수락할 때다. 부담스러운 부탁이라면 거절해야 하지만 만약 수락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정말 힘이 되도록 도와주는 방식을 택하라. “OK”를 해 놓고 이렇다 할 연락과 설명도 없이 시간을 질질 끌다가 상대가 재촉하면 마지못해 최소한의 결과를 내놓는 수락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상대의 자존감만 망가뜨리면서 신뢰를 잃는다. “아, 그럼 내가 알아보고 언제까지 결과를 주겠다”는 가시적 스케줄을 제시하라. 만약 수락한 부탁이 중간에 틀어질 때에도 상대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무작정 시간을 끌면서 상대에게 희망 고문을 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의 태스크포스팀에 근무하던 김 과장은 이 과장과의 불화로 일을 진행하는 데 애를 태웠다. 그래서 김 상무에게 부서 이동을 요청하는 부탁을 넣었다. “알겠다”는 대답을 들은 김 과장은 이제나저제나 하고 김 상무의 결단을 기다리는데 상사는 “된다, 안 된다”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기다리다 못한 김 과장이 한 번 더 물어보자 또 “알겠다”는 대답만 했다. 그러다가 이 태스크포스팀은 거의 일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
그리고 김 상무는 김 과장에게 다른 팀으로 발령을 냈는데 이미 이 임시 팀의 업무가 끝나 그다지 의미가 없었고 더군다나 이 일로 생색을 내는 김 상무에게 김 과장은 마음을 닫게 됐다. 물론 조직은 마음먹은 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김 과장에게 귀띔이라도 했다면 그 사이 김 과장은 마음을 비우고 이 과장과 일을 더 잘할 수도 있었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보통 상사는 부하에게 일을 시키고 중간 보고가 없으면 답답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부하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괴로울지도 모른다. 재촉할 권력마저 없기 때문이다. 부탁을 수락했다면 리더도 중간 보고를 해주는 성의가 필요하다. 필자는 개인적인 일로 어느 기업 회장님께 부탁을 넣은 적이 있었다. 시간적으로 급한 일이었는데 금요일에 비서에게 연락을 넣어 놓고 주말이 얼른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회장이 직접 휴대전화로 문서를 넣어 보내 왔다. 기다리는 다급함을 무마해 주기 위한 배려에 감사의 마음이 커졌다. 그러면서 그 리더의 비즈니스에 더 큰 도움으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제대로 도와주고 부하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물론 리더는 거절해야 하는 상황도 많이 발생한다. 이때도 거절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불편해 응답이 없거나 혹은 부탁한 사람을 무안하게 하는 질타는 삼가는 것이 좋다. 따뜻한 기운을 담은 멘트로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혀라. 잠깐 동안은 서운할 수 있지만 무응답으로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방치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피드백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확실한 거절에 오히려 감사할 때가 있다. 부탁한 사람이 기다리지 않게 하고 대안을 준비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존경하게 된다.
가장 어설픈 리더는 수락인지 거절인지조차 모호하게 해놓고 무작정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자리 값이란 말이 있다. 중요한 위치로 갈수록 부탁이 많아지는데 이를 수락하든 거절하든 리더의 상황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도 리더십이다. 안미헌 한국비즈트레이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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