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포커스

수도권 주택 시장 불황의 원인 중 하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규모 공공 택지 공급과 저렴한 보금자리주택 공급 때문이라는 인식에서 최근 민간 건설사들이 보금자리주택을 모두 임대주택으로 제한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주택협회는 이 같은 내용의 정책 건의서를 최근 새누리당·민주통합당 등 정치권과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에 제출했다. 협회는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주택 시장을 왜곡해 전월세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소득 분위와 상관없이 중산층 이상에게 분양 주택이 공급되는 등 본래의 도입 명분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MB 정부는 보금자리주택을 매년 15만 가구씩 2018년까지 150만 가구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하고 실제로 작년까지 43만7000가구(수도권 30만1000가구)를 공급했다. 올해는 대선 주자들의 정책적인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줄어든 11만 가구 정도가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금자리주택은 강남권을 제외하고 많은 곳에서 대거 미달이 발생하고 있다.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싸게 공급되는 보금자리 분양 주택이 당첨자들에게 과도한 시세 차익을 주고 이에 따라 대기 수요가 발생하면서 ‘매매 시장 위축’, ‘전세대란’과 ‘내수 경기 침체’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보금자리주택과 같은 저렴한 공공 주택 공급은 오히려 부동산 경기 상승기 때 공급하는 게 적절하다.
보금자리주택 문제와 해결 방안 “미분양 주택 활용 공공 주택 공급해야”
일본·중국 경기 침체 원인은 ‘대규모 공공 주택 공급’

하루가 다르게 몰락하고 있는 일본은 집값 급등기인 1992년 8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11차례에 걸쳐 132조 엔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 공공 주택을 공급했다. 하지만 주택 시장 침체와 함께 주택 수요가 대거 이탈해 미분양 아파트와 빈집이 넘쳐나 집값 급락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기적절하지 못한 대규모 공공 주택 공급으로 일본 경기 추락의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중국 지도부 교체 이후 약간의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도 공공 주택인 보장성주택이 주택 경기 위축에 한몫하고 있다. 보장성주택은 중국판 보금자리주택으로 불리는데, 저가로 토지를 공급해 건립비용을 낮춘 뒤 주변보다 낮은 시세에 공급하는 형태다.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총 3500만 가구에 달하는 보장성주택 공급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작정하고 수요·공급 양 측면에서 숨통을 조이자 전국에서 미분양 주택이 쌓이고 기존 주택까지 폭락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물량 채우기 위주의 대규모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재검토해야 한다. 부동산 경기 하락기의 대규모 공공 주택 공급은 기존 주택 시장뿐만 아니라 국내 경기 전체를 장기간 후퇴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금자리주택에 대해 유력한 두 명의 대선 후보는 한결같이 임대 공급 확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방침은 보금자리지구에 전량 임대주택만 공급하기보다 여러 형태의 주택을 혼합해 건설하는 ‘소셜 믹스(social mix)’형 주거 단지 개발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고 있다.

서민들에게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의 지속적인 대량 공급은 요원한 문제다. 하지만 투기판이 되어 버린 강남권 보금자리주택과 분양 가격이 과연 서민들을 위한 보금자리 본연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따라서 서민 주택 취지에 맞지 않는 보금자리주택은 대거 분양 전환이 가능한 공공 임대 아파트로 돌려야 한다. 적어도 공공 분양 주택을 임대주택과 함께 공급한다면 민간 부문의 주택 수요와 철저히 분리하거나 주택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전면 폐지하는 정책적 전환이 요원하다.

아파트 미분양이 심각한 시점에서 공공 임대주택을 짓기 위해 신규로 재정을 투입하는 것보다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보다 확대, 분양 아파트와 뒤섞는 소셜 믹스 형태의 임대 아파트로 활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만하다. 미분양이 심각한 중대형 아파트는 청약제도 개선과 함께 선착순 분양 방법을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미분양을 포함한 주택 구입 시 적정 범위 안에서 양도소득세 징수 유예, 양도소득세 과세 이연제 도입 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와 달리 행자부와 국세청 전산망이 잘 구축돼 있어 매매 이력 추적도 가능해 중대형 아파트 미분양 해소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민·관 공동으로 주택 임대 전문 리츠를 펀드화해 적극적으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만하다.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 전문 리츠는 세제 혜택과 함께 국민주택기금을 저리로 적극 지원해야 한다. 두 후보가 ‘숫자 늘리기 식’ 임대주택 확충 공약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나선 가운데 현실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없으면 정부 재정 고갈 위험과 함께 대선 공약이 공염불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기 관리 리츠가 임대주택을 지으면 세제 혜택 등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사업성이 낮아 신청한 민간 사업자가 전무한 실정이다. 임대주택 전문 리츠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정부에서 세제 혜택, 국민주택기금 지원, 토지 공급 가격 할인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보금자리주택 문제와 해결 방안 “미분양 주택 활용 공공 주택 공급해야”
유럽·미국 등 바우처 제도 참조해볼만

우리나라는 1989년 영구 임대주택을 도입한 후 공공 임대주택 재고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장기 임대주택 비율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10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의 재고량은 89만 가구로, 전체 주택의 4.9%를 차지하고 있다. OECD 평균은 11.5%다. 임대주택의 범위를 5년 임대나 장기 전세, 민간 건설, 매입 임대 등으로 확대하면 약 146만 가구로 총 주택 재고량은 8.0%다. 2002년 102만 가구였던 것에 비하면 10년 새 44만 가구 정도 늘지만 서민들의 주택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연구원(구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2010년 발표한 ‘저소득 임차 가구의 주거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저소득 가구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평균 32.3%였다. RIR가 40% 이상을 차지하는 가구도 24.6%에 달했다. 예컨대 월 100만 원을 번다면 30만~40만 원을 월세로 내는 저소득 가구가 상당수에 이르는 셈이다. OECD가 제시하는 적정 RIR는 20%다. 그만큼 저소득층의 임차료 부담이 큰 것이다.

가뜩이나 내년부터 공공 임대주택 임대료가 4.8% 인상돼 서민들의 임대료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임대료 인상 대상은 LH가 공급한 영구·국민임대·10년임대 등 22만68가구다. 국토해양부와 LH에 따르면 내년 1월 이후 재계약 시점이 되는 공공 임대주택의 임대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각각 4.8% 인상하기로 했다. 현재 보증금 1309만1000원에 월 임대료 15만7000원인 용인보라7단지 국민임대주택 46㎡는 보증금이 62만8000원, 월 임대료는 8000원 올라간다.

입주자들은 오른 보증금을 인상 고지 후 1개월 안에 납부해야 한다.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점차 보증부월세나 순수 월세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에 대한 임대료 지원 대책도 나와야 한다. 서민들의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이 주택 바우처 제도다. 주택 바우처는 정부가 전월세 지불 능력이 부족한 가구에 임차료의 일부를 쿠폰 형태로 보조하는 제도다. 세입자는 정부가 지급한 쿠폰을 집주인에게 현금처럼 지불하고 집주인은 이 쿠폰을 공공 기관에서 돈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바우처 제도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1948년 바우처 제도를 처음 도입한 프랑스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50%씩 부담하고 독일은 월 소득 160만 원 이하인 세입자 가구에 지급한다. 미국은 중위 소득 80% 이하인 가구(전체의 2%)에 지급한다. 즉, 당장 시간과 재원 문제가 얽힌 보금자리지구를 통한 신규 임대주택 건설에만 목매지 말고 기존에 건립된 민간 주택과 임대주택을 적절히 배합해 주택 바우처 지급을 병행하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 ceo@youand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