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줄이고 A급 상권서 박리다매, “5분에 한 잔씩 팔아야 수익”
카페 창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 마루’에서 최근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는 다름 아닌 ‘빽다방’이다. “우리 가게 옆에 빽다방이 들어선대요. 가격을 내려야 할까요”와 같은 종류의 고민 상담이다. 카페 옆에 카페가 들어서는 일은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1000원대 커피의 등장으로 소비자 반응이 뜨겁기 때문이다.‘백주부’ 백종원 바람을 타고 빽다방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빽다방은 2006년 첫 개점 이후 지난해 연말까지 30개 매장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 들어 창업 문의가 잇따르면서 매장 수가 급증하고 있다. 11월 현재 300개를 돌파했다. 각종 요리 프로그램을 휩쓰는 백주부의 인기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끝없는 가격 경쟁…유사 브랜드 속출
빽다방의 핵심 전략은 ‘싸고 큰 커피’다. 아메리카노 한 잔(500mL)에 1500원이다. 4000원대의 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저렴한데 크기는 더 크다. 커피 프랜차이즈의 기본 사이즈인 355mL보다 40% 이상 많다. 음료 이외에 사라다빵(2000원)도 판매한다.
빽다방을 필두로 한 저가 커피는 올해 창업 시장의 최대 화두다. 당장 미투 브랜드들도 줄을 잇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커피식스’도 최근 테이크아웃 전문점 ‘커피식스미니’를 통해 1000원대 커피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선보인 커피식스의 테이크아웃 버전이다. 100% 아라비카 원두는 그대로 유지한 채 17~33㎡(5~10평)대의 숍인숍 매장으로 몸집을 줄였다. 1500원대 아메리카노 등 고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겠다는 전략이다.
한국맥도날드는 지난 1월 맥카페를 새롭게 단장하고 가격을 내렸다. 맥카페는 맥도날드의 커피 브랜드로, 아메리카노 1500원(스몰 사이즈 기준), 카페라테·카푸치노 각 1800원 등 1000~2000원대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맥카페는 가격 인하 이후 9월까지 제품 판매가 이전에 비해 3배 정도 증가했다.
이 밖에 커피와 주스 등 주 메뉴의 가격을 1000원대로 낮춘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생과일 주스 전문점 ‘쥬씨’는 2009년 건국대 인근에 처음 생겼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M 사이즈가 1000원, XL 사이즈가 1500원이다. 생과일주스도 1500~3800원에 판매한다. 과일을 대량 매입해 원가를 낮춘 것이 제품 가격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또한 ‘고다방’은 아메리카노가 900원,‘커피에반하다’,‘쥬시’,‘더바빈스’는 1000원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저가 커피는 기존 이디야커피의 성장 모델을 뒤쫓고 있다. 주로 2000원대 음료를 파는 이디야커피는 과거 ‘스타벅스 옆에 있는 더 저렴한 커피 가게’로 유명세를 타며 매장 수를 크게 늘려 왔다. 2014년 기준 1100개로 국내 1위 매장 수를 자랑한다. 이디야커피 등을 중심으로 2000원대 ‘중저가’ 커피 전문점이 상승세를 타더니 바통을 빽다방을 앞세운 1000원대 '저가’ 커피가 이어 받았다.
저가 커피점들의 전략은 비슷하다. 빽다방이 그러하듯 박리다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그래서 입지가 중요하다. 역세권과 오피스 상권 등 유동인구가 확보되는 곳으로 들어간다. 소규모 매장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기존 역세권 상권에 진입할 수 없었던 소자본 창업자들이 작은 크기의 매장으로 A급 상권에 진입하는 일종의 틈새 전략이다.
저가 커피는 논란도 같이 불러온다. 무엇보다 ‘가격 파괴’와 ‘과당경쟁’으로 카페 시장 생태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소자본 창업 시장은 완전 경쟁 시장이다. ‘가격 전쟁’ 속 ‘커피 플러스알파’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수익성에 대해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1000원대 음료 이외에 서브 메뉴가 있지 않으면 객단가(1인당 평균 매입액)를 올리기 힘들다”며 “비수기인 겨울철에도 이익을 낼 수 있는 브랜드인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잔 원가 500원…“기존 업체 폭리”
그렇다면 어떻게 저가 커피가 가능할까. 한 저가 커피 관계자는 “특별한 전략이 더 있는 게 아니라 기존 커피 전문점과 똑같은 구조”라며 “우리가 더 싼 게 아니라 기존에 얼마나 폭리를 취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산 생두를 수입해 국내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로스팅한 원두를 공급하기 때문에 커피의 질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저가 커피 관계자는 “대형 프랜차이즈에 들어가는 것과 똑같은 산지의 생두를 쓰며 100% 아라비카 원두”라며 “그 대신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로스팅을 할 때 고급 원두인 스페셜티의 비율을 낮게 하는 등 비율 조정을 통해 원가를 맞춘다”고 설명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원가를 보면 저가 커피와 기존 프랜차이즈 커피의 가격 차이는 크게 없어 보인다. 세계 3대 원두로 분류되는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kg당 13만 원 선), 하와이안 코나(kg당 10만 원 선), 쿠바 크리스털 마운틴(kg당 4만~5만 원 선)을 제외하고 커피 전문점에서 많이 쓰는 브라질산·에티오피아산·케냐산 등의 원두는 대부분이 kg당 1만 원 안쪽이다. 한 잔으로 계산하면 생두 기준 약 150원의 원가가 나온다. 여기에 컵 등의 원가가 추가된다. 커피 전문점이 원가율을 약 30~35%에 맞추기 때문에 약 500원을 원가로 볼 수 있다.
물론 원가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있다. 아라비카가 아닌 로부스타 원두를 섞는 것이다. 또한 한 번에 많이 볶으면 비용이 절약된다. 그 대신 결점이 있는 결점두(defect bean)를 솎아내기 어려워 품질이 떨어진다. 저가 커피 전문점들은 이와 같은 방법에 대해 ‘노(No)’를 외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브라질산 생두의 경우 쓴맛을 내기 위해서라도 로부스타를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피 가격은 단순히 원두 가격으로 볼 수 없다. 모든 인건비·임차료·마케팅비 등을 포함한 유지비를 감안해야 한다. 원가가 비슷하다고 봤을 때 대형 프랜차이즈에 비해 저가 커피는 손에 쥐는 이익이 확 줄어들게 된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5분에 한 잔씩 팔아야 수익이 나는 구조로 쉽지 않은 일”이라며 “월세 내기가 빠듯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가 커피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저가 커피의 영향으로 커피 시장은 향후 저가와 고가 시장으로 양극화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때 프랜차이즈 전문점과 개인 카페에서는 서로 다른 모델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커피 전문점은 ‘입지’와 ‘넓은 공간’을, 개인 카페는 ‘전문화된 커피 역량’과 그만의 ‘콘셉트’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또한 이미 포화된 커피 전문점 시장 이외에 드립 커피 위주의 ‘가정용 시장’, 원두 생산 및 ‘유통시장’, 커피 도구 등의 ‘B2B 시장’, 커피 관련 ‘온라인 쇼핑몰’ 등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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