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넷째 잭팟’. 신약 개발 변방국에서 쏘아 올린 ‘기술 수출’ 대박 소식에 국내 제약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한미약품은 올 한 해 연이은 조 단위 수출 계약으로 신약 개발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복제약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글로벌 공룡 제약사들을 상대로 ‘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모든 것은 한미약품이 10년 넘게 매달려 온 ‘랩스커버리(약효 지속 기술)’ 독자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얘기다. 11월 13일 경기도 동탄 한미약품 연구센터에서 랩스커버리 탄생의 주역이자 한미약품의 최대 경쟁력인 연구·개발(R&D)을 이끄는 권세창 한미약품 연구센터소장을 만났다.

한미약품은 올 한 해 극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값을 잘 받았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협상 테이블에는 극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참여합니다. 값을 잘 받은 것도 있지만 양사 모두에 좋은 파트너가 생겼다는 점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라이선스 아웃(기술이전)이 끝이 아니고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론칭하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얀센이나 사노피 같은 다국적기업을 파트너로 택한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의 제품 개발력과 마케팅 능력 등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또 임상이 2상·3상으로 진행될수록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도 때마침 우리를 필요로 했고 앞으로 임상·생산·R&D 등 파트에서 컬래버레이션을 이어 나갈 것입니다. 서로 좋은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랩스커버리 한 우물만 파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입니까.
“13년 전에 한미약품에 경력 사원으로 합류했을 때는 연구원 5명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미래 먹을거리로 바이오 신약을 만드는데, 우리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차세대 제품을 고민하던 중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환자들이 매일 주사를 맞는 게 얼마나 불편합니까. 1일 1회에서 1주일 1회 투여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죠. 신약 개발이라는 게 짧아도 10년 이상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의 최고 레벨 제품이 아닌 10년 후 경쟁력을 내다보자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그렇게 차세대 제품을 목표로 신약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고 개별 제품이 아닌 ‘플랫폼’ 기술에 주력했습니다. 바로 랩스커버리로, 어떤 품목이나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입니다.”

이번에 사노피와 얀센에 수출한 것은 당뇨 치료제입니다. 특히 이 시장을 주목한 이유가 있습니까.
“시작은 1주일 1회 제형이었지만 월 1회까지 확대해 나온 제품이 사노피와 기술 계약한 ‘GLP-1’ 계열의 에페글레나타이드 당뇨 치료제입니다. 10년 후를 고민할 때 큰 방향은 만성질환 치료제였습니다. 물론 항암제 시장도 크지만 점점 고령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령화사회에 맞는 만성 대사성 질환 치료제가 시급하다고 내다봤습니다. 여러 분야가 있지만 일단 우리 기술을 적용하기에는 당뇨나 비만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또한 일회성 제품이 아닌 여러 제품을 동시에 개발할 수 있는 제품 포트폴리오, 즉 패키지를 구성한 것이 글로벌 제약사들의 투자를 이끌어 낸 비결입니다.”

개발 실패 사례는 없습니까.
“랩스커버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첫 제품이 나오기까지 6~7년의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약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좋은 제품을 개발해 놓고서도 적시에 내놓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죠. 일례로 2013년 ‘랩스-인터페론 알파’라는 C형간염 신약을 개발하고 글로벌 임상2상까지 진행하던 중 글로벌 제약사인 길리어드가 먼저 제품을 출시한 적이 있어요. 그동안 들어간 돈과 시간을 내려놓고 더 나은 약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기로 했어요.”

개발을 중단하면 연구진도 어려움에 빠질 것 같습니다.
“어려움이 많이 있었죠. 그래도 뚝심 있게 밀고 올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한미약품은 ‘R&D를 하기에 정말 좋은 기업’입니다. 다국적기업의 여러 연구센터를 보더라도 한미약품만큼 연구하기 좋은 곳은 별로 없을 겁니다. 비용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최고경영진과의 커뮤니케이션, 협업 체계, 연구원들의 의지 등을 통틀어 그렇습니다. 특히 스피드를 추구하는 문화, 지난 것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문화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한미약품을 계기로 국내 제약 업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수준으로 R&D를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제약 산업은 개발 단계에서 들어가는 비용보다 임상이 진행되면서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큽니다. 범부처에서 임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좀 더 확대된다면 기업으로서는 추진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신약 개발을 하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필요한데, 아직 국내에선 신약 개발의 제품화까지 이뤄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생산 관련 인력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지금은 다국적기업과 손잡고 있지만 조만간 우리의 축적된 기술과 자본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날이 올 겁니다. 이때 유능한 인재가 많이 필요합니다. 한미약품뿐만 아니라 많은 제약회사들이 R&D의 중요성을 알고 글로벌 임상을 확대하고 있어요. R&D 출신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사례도 늘고 있죠. 영업 중심의 제약 환경에서 R&D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약이나 바이오 기업의 실적 없는 개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미약품은 매년 매출액의 15%를 R&D에 투자해 왔고 지난해는 20%까지 늘렸습니다. 매출액 대비 상당히 큰 금액이죠. 글로벌 톱 10 제약사들이 보통 20%를 투자합니다. 국내 평균으로는 약 10% 정도인데, 글로벌 임상이 많이 확대되면서 빠르게 수치가 올라가고 있어요. 물론 비용을 많이 쓰기 때문에 성과에 대한 압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우리는 매년 R&D 성과물에 대해 전문가 집단의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주요 학회에서 발표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진솔한 반응을 느낄 수 있는데, 매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과물에 대해 점점 확신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없다면 이렇게 끌고 나가기 쉽지 않겠죠. 특히 수년 전부터 매년 발표하면서 임상 자료를 포함하고 성과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6월, 9월 열린 미국과 유럽의 당뇨학회에서는 11건의 성과를 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곳은 글로벌 기업 가운데서도 몇 군데 없습니다. 좋은 반응을 얻었고 총 네 가지 품목에 대해 발표했는데 다행히 모두 라이선스 아웃됐습니다.”

‘다음 잭팟’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랩스커버리를 접목한 기술 6건 가운데 5건에 대한 기술 수출에 성공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지속형 인성장호로몬 신약(프로젝트명 LAPSrhGH)입니다. 랩스커버리는 기반 기술이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고 빠르게 임상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제품인 항암제 보조 치료제는 현재 미국에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처음 임상 1상에 들어가기까지 6~7년이 걸렸어요. 그다음 제품은 3년, 가장 최근의 콤보(LAPSInsulin Combo) 제품은 1년 만에 임상 1상에 진입했습니다. 인성장호로몬 신약은 액상 제제로 우선 1주 1제형으로 시작해 2주 1제형, 그 이상까지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 밖에 항암제 시장에서는 합성 신약인 B-RAF가 국내 임상 1상이 진행 중인데, 2상은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