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인류의 출현과 함께 탄생했다. 고대사회에서 폭력은 인간의 사망 원인 중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한다. ‘구약성서’에서도 폭력은 수없이 나타난다. 폭력은 계속 폭력을 부르는 것도 특성이다. 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폭력이 폭력을 낳고 살인이 다시 살인을 부르는 보복의 악순환이 전통 사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폭력에 대한 여러 이론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아예 인간에겐 원초적 공격 본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파괴와 폭력, 살인은 인간의 본성이며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지구촌이 이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가난에서 해방되면서 폭력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최근 수세기 동안 인간과 동물에 대한 폭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중세에 비하면 현대에서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은 5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국가 성립 이전에는 보통 국민의 12%가 폭력으로 죽었지만 지금은 1%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핑커는 결론적으로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욱 평화로운 시대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폭력은 피할 수 없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은 자유와 함께 철학자들의 주요 연구 주제였다. 플라톤에서 장 폴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주요 철학자들은 폭력의 원인과 이것을 효과적으로 막는 방법을 고민했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폭력은 신의 뜻이나 로고스를 지키지 않을 때 발생하는 모든 행위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폭력을 배제하기 위해 영혼을 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르트르는 ‘폭력의 사도’라고 불릴 만큼 폭력의 본질에 심취했다. 그는 폭력을 막기 위해 처음에는 폭력에 의존했다가 나중에는 비폭력에 의지한다고 봤다. 좌파 학자 조르주 소렐은 하위 계층에 의한 폭력을 예찬한 학자다. 그는 ‘폭력에 대한 성찰’에서 현존 질서를 급진적이고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로 가는 확실한 길이라고 강변했다.
폭력에 대한 원인 분석에서 가장 발전하는 분야는 ‘뇌과학’이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요아힘 바우어는 폭력을 인간 보상 체계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바우어는 폭력적 행동을 함으로써 공감·인정·평가 등을 얻게 될 경우엔 그러한 뇌의 보상 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그는 ‘폭력의 진짜 씨앗은 배척’이라면서 “인간은 인정받기 위해서나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악을 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궁핍은 폭력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가난과 폭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가난이 폭력을 낳고 폭력이 가난을 낳는 악순환은 거듭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부분은 내전·반란·폭동 등 폭력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폭력적인지, 아니면 그들이 폭력적이기 때문에 가난한지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폭력이 가난을 부른다는 것은 부룬디와 부르키나파소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1990년까지 부룬디와 부르키나파소는 비슷한 국내총생산(GDP)과 범죄율을 보였다. 부룬디에 1933년 대통령 암살 사건을 계기로 내전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10년간 30여만 명이 죽었는데 이들은 무고한 시민이었다. 상대적으로 안정됐던 부르키나파소는 10년 뒤 부룬디에 비해 2.5배나 성장했다. 평화로운 국가에서는 가난을 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난이 폭력을 부른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테러 집단과 반란에 참여하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테러나 폭력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40%는 실업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폭력이 많은 국가들의 청소년은 다른 국가들보다 절반 이하로 영양이 부족하고 교육 기회도 3분의 1에 불과하다. 유아 사망률 또한 신흥국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독일이 낳은 위대한 석학 칸트도 폭력의 개념을 정확히 꿰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 철학자다. 칸트는 법과 자유 및 폭력의 유무에 따라 정치제도를 구분했다. 그는 폭력 없이 법과 자유가 있는 체제를 무정부 체제라고 규정했고 자유 없는 법과 폭력은 전제정치, 자유와 법이 모두 없는 폭력은 야만정치, 자유와 법을 가진 폭력을 공화정치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전쟁이나 폭력의 대척점에 상업적 거래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스러운 상업과 거래야말로 폭력과 전쟁을 없애고 평화로운 상태를 이루는 선결 조건이라는 것이다.
에릭 가츠키 미국 카토연구소 연구위원은 칸트의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민주주의보다 자유시장경제야말로 국가 간 갈등을 줄이고 군사적 폭력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산업화된 국가들에 갈등을 줄이는 요소로만 작용할 뿐이다. 그는 독재를 경험했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게 국제 평화나 협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민주국가라고 하더라도 높은 경제성장이 보장될 때라야만 정국이 안정된다고 보고 있다. 가츠키 연구위원은 실증적 분석을 통해 경제적 자유가 국가 간 군사 분쟁이나 내전을 56%나 완화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국가 간 분쟁이나 협력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난한 나라들이 정치적인 안정이나 국제 평화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Vitamin’ 80호)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