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지도⑪]"가맥 한 병에 먹태 안주, 쉬었다 가세요"
익선동의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골에서 볼 법한 작은 가겟방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지난 5월, 대학원생인 박지호(28) 사장이 차린 ‘거북이슈퍼’다.

박 사장은 지난해 11월 우연히 익선동을 방문했다가 이곳에 가게를 내기로 결심했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가 서울에서 받은 첫 느낌은 ‘바쁘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1920년대 만들어진 느린 동네, 익선동을 발견했다.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시골의 가겟방을 만들면 어떨까’ 싶어 가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픈 6개월만에 SNS '익선동 명물'

박 사장은 시골의 가겟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고향에 있을 때 슈퍼에서 마을 노인들을 위해 간단한 안줏거리를 만들어 주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슈퍼에 앉아 술 한잔하실 때 전을 부쳐 주고 오징어를 구워 주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고 말했다.

가게의 문을 연 지 이제 6개월 남짓, 아직은 사업 초기임에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블로그에 ‘익선동’이라는 키워드를 치면 거북이슈퍼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박 사장은 “익선동만의 분위기와 시골 가겟방의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거북이슈퍼의 인테리어는 ‘시골 가겟방’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한옥의 서까래를 그대로 살리고 장판 위에는 개다리소반이 놓여 있다. 연탄불에 직접 먹태를 굽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판매 메뉴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곳에서 가장 잘나가는 메뉴는 ‘가맥’이다. 가맥은 ‘가게 맥주’의 준말로 가게(슈퍼)에서 파는 맥주를 말한다. 박 사장은 “가게 맥주라는 말이 생소해 손님들의 이목을 끌기 쉽다”며 “오는 분들은 대부분이 가맥을 먼저 찾는다”고 전했다.

거북이슈퍼엔 끊임없이 손님이 찾아온다. 오후 2시 거북이슈퍼가 문을 열었다.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두 테이블이 채워지더니 저녁 6시가 되기 전, 7개의 테이블이 꽉 찼다. 가게 운영이 끝나는 12시까지 테이블은 쉴 새 없이 채워졌다. 거북이슈퍼의 매출은 개업 당시 매출에 비해 약 2배 정도 올랐다. 박 사장은 “20대는 ‘거북이슈퍼의 생소한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많이 찾고 40·50대 중·장년층은 추억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거북이슈퍼의 지향점은 가게 이름에 잘 녹아 있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자는 ‘슬로 라이프’다.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 한복판에서 거북이슈퍼에서만큼은 쉴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지연 인턴기자 new91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