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으로 디플레 압력 심화
최근 유가가 급락하면서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 등 신흥 시장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가가 더 떨어질 수 있는 만큼 한국 경제도 좋아지기 전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연평균 93.1달러였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의 배럴당 가격은 올해 12월 15일까지 49.3달러로 크게 하락했다. 한국이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 평균가격도 같은 기간 96.7달러에서 52.1달러로 떨어졌다. 특히 12월 15일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32.5달러로, 지난해 6월 111.3달러에 비해서는 71%나 폭락했다( 참조).
유가가 이처럼 하락한 것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 보면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 특히 2014년 이후에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높아지면서 유가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

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 압력 심화시켜
한편 공급 측면에서 미국의 셰일가스 증산과 함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실패가 원유 시장에서 초과 공급을 초래하고 있다.
경제가 정상적이라면 유가 하락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유가 하락은 한 경제의 생산비용을 감소시켜 총공급곡선을 우측으로 이동시키게 된다. 이때 경제는 높은 성장과 낮은 물가 상승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다음으로 유가 하락은 총수요곡선도 우측으로 이동시킨다. 유가가 하락하면 가계가 소비지출 중 에너지 비용(한국은 6% 정도)이 줄어들어 가계가 다른 재화와 서비스에 소비지출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거의 모든 국가의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GDP 이하로 성장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 하락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중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생산자 물가가 장기간 하락하고 있고 이는 기업과 가계의 경제 심리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원자재 수출국의 부도 리스크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OPEC 회원국들의 재정수입은 주로 원유 수출에 의존한다. 이들이 균형예산을 달성하려면 유가가 지금보다 큰 폭으로 상승해야 한다.
문제는 앞으로 유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OPEC 등 주요 원유 생산국이 공급을 줄이지 않은 상황에서 수요는 더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수요 감소가 원유 시장에 또 한 번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2008년 하반기부터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는 2008~2014년에 걸쳐 연평균 9%에 해당하는 높은 성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성장 내용을 보면 기업의 부채 증가에 따른 투자 중심의 고성장이었다. 지난해 말 현재 중국의 기업 부채는 GDP의 157%로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높다(한국 102%, 일본 92%, 미국 69%).
부채가 많은 중국 기업의 이익이 줄면서 이들이 부실해지고 나아가 은행 부실도 가중되고 있다. 한국이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기업과 은행의 부실을 정리했는데, 중국도 머지않아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 시기가 이르면 내년일 수도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또 한 단계 떨어지면서 유가를 더 하락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달러 가치 하락은 일시적으로 유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미국으로 자금이 환류하면서 달러 가치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2011년 9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달러 가치가 주요국 통화에 비해 36% 상승했다. 달러 가치 상승으로 미국 경제가 제조업 중심으로 둔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미국의 산업 생산이 정체된 가운데 제조업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공급자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가 지난 11월 48.6으로 2012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경기 확장과 수축의 경계선인 50 이하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도 어렵고 달러 강세도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미 달러지수와 유가 사이에는 상관계수가 마이너스 0.89(1998년 1월~2015년 11월)로 매우 높다. 달러 가치가 1% 오르면 유가는 4.1% 정도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는데, 앞으로 예상되는 달러 가치 하락은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 효과가 더 커 내년 상반기 유가는 지금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가 하락 등 부정적 영향도
한국은 연간 약 9억 배럴 정도(2014년 9억275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한다. 국제 유가가 10달러 떨어지면 연간 원유 수입 금액이 90억 달러 줄어드는 셈이다. 지난해 한국은 원유를 배럴당 102.3달러에 수입했는데, 올해 11월에는 도입 단가가 47.4달러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대중동 무역수지 적자가 대폭 줄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동 무역수지 적자는 843억 달러였지만 올해 11월 20일까지 358억 달러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도 올해 11월까지 83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16억 달러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했다.
물론 유가 하락은 세계 경제성장 둔화의 결과이므로 한국 수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른바 ‘구경제’에 해당하는 석유·조선·철강의 업종의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또한 원자재 수출국인 중동(올해 11월까지 -12.1%)과 중남미(-12.4%) 지역 수출 감소 폭이 전체 수출 감소 폭(-7.4%)보다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유가 하락은 당장 한국 증권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주가와 유가(두바이유)의 관계를 분석(1998년 1월~2015년 11월)해 보면 상관계수가 0.90으로 매우 높다. 한국 주가가 오르려면 유가가 올라야 한다는 의미다. 거꾸로 한국 주가가 상승하면 국제 유가도 오른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참조).
구체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 탄력도를 구해 봤는데, 유가가 1% 하락하면 주가(코스피지수)는 0.7%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운수·장비(-1.2%), 화학(-1.1%), 철강·금속(-1.0%) 등이 유가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전기·가스, 통신업, 섬유·의복 업종은 유가 영향이 아주 작은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이 좋아지기 전에 한 번 더 충격을 견뎌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익 기자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