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선 윤리의 함정과 이민 패러독스
유럽이 난민 문제로 들끓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80만 명의 난민을 받겠다고 발표한 이후 더욱 그렇다. 이제 그리스 사태는 문제도 아니다. 혹자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한다. 이들로 인해 유럽연합(EU)의 분열과 갈등이 노골화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쪽도 있고 EU가 한층 개방적이고 강력한 체제로 진화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난민(refugee)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박해 우려가 있어 자신의 모국을 떠나 피난처를 찾는 사람이다. 이들이 망명을 신청하면 해당 국가는 임시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고 간단한 치료를 받게 해준다. 심사를 거쳐 난민 판정을 받으면 해당 국가는 이들에게 사회의 일원으로 통합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가 유엔난민협약에 규정돼 있다.


난민 문제로 동서 분열 격화되는 유럽
이민(immigration)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다른 나라로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이민이 많다. 해당 국가가 요구하는 자격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 이민이다. 이번에 유럽에 밀려오는 시리아인들은 난민인지 이민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시리아의 폭정을 견딜 수 없어 탈출한 난민이라고 하지만 실은 유럽의 나은 생활과 복지를 노린 경제적 이민의 성향도 적지 않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각국이 주권을 가지는 국가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민 문제가 본격화됐다. 미국처럼 이민자가 모여 새로운 국가를 만든 경우도 있고 이스라엘과 같이 이민자들이 모여 사라진 국가를 다시 세운 경우도 있다. 스웨덴과 독일인들은 미국에 이민 갔다가 돌아온 사례가 많은 국가다. 이에 비해 기근이 발생하면서 미국으로 대거 이민을 갔던 아일랜드인들은 거의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 이민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는 1세대 이민 인구가 전체 인구의 27%를 차지하는 호주와 스위스다. 이스라엘 24%, 뉴질랜드 24%, 캐나다가 20%다. 유럽은 7%, 한국은 3% 남짓이다.
이민을 처음 다룬 철학자는 임마누엘 칸트다. 칸트는 보편적이고 정당한 세계시민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의 희망이자 자연이 인간을 통해 의도하려는 최고의 목표라고 봤다. 그는 이민도 이런 차원에서 바라봤다. 칸트는 ‘영구 평화론’에서 “외국인이 다른 나라의 영토에 들어갔을 때 그가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한 적대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외국인은 손님으로서 융숭히 대접받아야 할 권리라기보다 발을 디딜 권리(right of resort)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그들을 무한정 머무르게 할 어떤 강제권도 갖지 못한다고 했다.
칸트가 말하는 이런 권리는 물론 인류애적인 박애주의 개념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자연법적이며 세계시민법적인 권리에 기반을 둔다. 그는 이민의 모든 행위도 세계 평화를 이루게 하기 위한 자연의 숨겨진 계획에 따르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칸트의 생각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많다.
생물학자 게럿 하딘은 이른바 ‘구명선 윤리’를 강조하며 이민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두 척의 구명보트가 떠 있고 그중 한 척에는 적절한 인원이 승선했고 물자와 식량 또한 적절하게 있다. 반면 정원을 초과한 나머지 한 척은 부족한 물자와 식량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다른 배로 헤엄쳐 태워줄 것을 간청할 때 적절한 배에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구조해 줘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하딘은 이들을 절대 구조해선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이들을 구조해 주면 당연히 구명보트가 위험해지고 위기 상황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딘은 이런 차원에서 이민이나 난민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민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우선 미국에서 1914년 이전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민 올 때에는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프리드먼은 이민이 일자리와 직결돼 있고 한편으로는 복지와 결부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들 이민자에게 일하든 일하지 않든 간에 관계없이 복지를 제공한다면 결국 주민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주민들은 선거에 의해 이 같은 일을 차단할 것이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불법 이민은 이민자나 거주자들에게 모두 좋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어떤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들은 사회적 안전 보장도 받을 수 없다. 이들은 대부분이 힘든 일에 종사한다. 거주민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다. 이것을 프리드먼은 ‘이민의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그는 하지만 이 같은 패러독스가 있는 사회는 불공평한 요소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회 갈등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제조업 있는 곳에 이민 있다
이민 문제로 가장 골치를 썩인 국가로 대표적인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다. 이들 국가는 20세기 후반에 대거 이민을 받아들였다. 영국은 한때 인구의 10%가 넘는 이민으로 채워진 국가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인력과 기술력 부족을 이유로 이민자들을 대거 활용했다.
하지만 2010년 캐머런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민자들을 규제했다. 이들의 복지에 너무 많은 예산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독일도 한때 이민자들을 활용했지만 복지 예산으로 인해 이들의 쿼터를 대폭 줄였다. 그러다 다시 고령화로 인력이 모자라자 이민을 받아들이는 정책으로 바꾸고 있다. 결국 이민정책의 이면에는 사회적 비용을 우려하는 정부 및 시민단체와 경제적 이익을 지키려는 산업계의 갈등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복지를 고민하는 정부와 값싼 일자리를 찾으려는 기업들 간의 갈등이다. 복지사회를 앞세우는 영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이들의 갈등과 대립으로 이민정책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19세기와 구별되는 21세기 이민의 특성은 이민의 글로벌화다. 네팔 청년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몽골인들이 프라하의 자동차 기업에서 일한다. 중동 건설 현장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젊은 인력들이 바글댄다. 지금 독일행 기차를 타려는 난민들도 가히 국제적이다. 그곳에는 제조업이 있고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화된 제조업이 바로 21세기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민 네트워크는 상상 이상으로 강해 일자리가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지 이민자들은 찾아간다. 이것이 세계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Vitamin’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