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홀’에 빠진 네덜란드
네덜란드의 건축 수도 로테르담에 최근 떠오르는 랜드마크가 있다. 유명 관광지 큐브하우스와 도보로 불과 1분 거리에 있는 마켓홀(Markthal)이 바로 그것이다. 실내형 전통 시장과 아파트를 결합한 역U자 모양의 주상복합 건축물인 마켓홀은 화려한 인테리어로 큰 주목을 받으며 개장 1년 만에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가 됐다.

마켓홀을 찾은 관광객들이 건물 옆 광장에서 열리는 5일장으로도 유입되면서 지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 로테르담은 웰 메이드 건축물이 도시의 매력을 상승시킨다는 ‘빌바오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루에 2만4000여 명 방문
로테르담을 찾는 관광객들은 도시 곳곳에서 목격되는 과감한 디자인의 건축물에 놀라곤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도시를 혁신적인 건물들로 채웠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부터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데 건축을 적극 활용해 온 것으로 유명한 로테르담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건축물을 꼽으라면 단연 마켓홀일 것이다.

마켓홀은 2014년 10월 개장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로테르담 경제 활성 기구인 로테르담 파트너스에 따르면 마켓홀은 개장 10개월 만에 60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네덜란드 현지 신문 아데이는 하루 평균 2만4000여 명이 마켓홀을 방문한다고 전했다.

길이 120m, 높이 40m에 달하는 마켓홀은 한마디로 거대한 바자르(지붕이 있는 시장)를 품은 고급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매우 깨끗한 버전의 바르셀로나 보케리아시장, 혹은 남대문시장과 같다. 이 건물은 96개의 상점과 8개의 레스토랑, 228가구가 사는 아파트로 구성돼 있다.
마켓홀은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 덕분에 이슈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다. 건물의 전체 설계는 네덜란드의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 그룹 엠베에르데베(MVRDV)가 맡았다. 우선 말발굽이나 롤 케이크를 연상시키는 아치형의 외관에 압도당한다. 양쪽 끝은 대형 유리벽을 설치해 자연광을 최대한 실내로 끌어들였고 강한 바람을 막아내기 위해 테니스 라켓 모양으로 디자인한 후 그 자리에 유리를 짜 넣었다. 투명한 유리 덕분에 건물 바깥에서도 실내를 들여다볼 수 있고 실내에서도 큐브하우스나 공공 도서관, 펜슬하우스 등 로테르담의 명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마켓홀의 하이라이트는 1만1000㎡에 달하는 화려한 실내 벽화 디자인이다. 마켓홀의 천장은 곡식·과일·꽃·물고기 등 화려한 색감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풍요의 뿔’이란 이름의 이 벽화는 네덜란드 예술가인 아르노 코넨과 이리스 호스캄이 만든 것으로, 이들은 로테르담의 역사와 시장에서 판매되는 먹을거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45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했다. 이미지를 선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픽사 소프트웨어에 사용된 것을 활용했다. 시장 내부에 들어선 관광객들은 쇼핑에 앞서 챙겨온 카메라로 벽화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 벽화에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외에 기능적인 면도 갖추고 있다. 패널마다 작은 구멍을 뚫어 실내의 소리를 흡수, 소음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마켓홀에서는 사람들이 많은 백화점 푸드 코트 등에 갔을 때 느껴지는 시끄러움이 덜하다.
‘마켓홀’에 빠진 네덜란드
건축 설계부터 완공까지 ‘10년’
독특한 점은 벽화 패널의 비어 있는 부분이 아파트의 거실 창문이란 점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삼중으로 밀폐된 유리 덕에 시장에서 생성되는 소음이나 냄새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의 집에서 시장의 생생한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원안대로라면 주민들이 창문을 열고 양동이를 단 밧줄을 내려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채소나 치즈를 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안전상의 이유로 끝내 실현되지는 못했다.

로테르담시는 침체된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마켓홀 건축에 돌입, 설계부터 완공까지 총 10년이 걸렸다. 또한 이를 위해 1억7500만 유로(2266억 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광장과 전통 시장을 살리기 위해 본래 있던 공립학교까지 이전하고 그 자리에 마켓홀을 지었다. 이 부근에 매주 화·토요일마다 네덜란드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의 재래시장이 서고 바로 앞에 블라크(Blaak)역이 있어 사람들이 모이기엔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마켓홀에서는 스페인·이탈리아·터키·중국·일본 등 세계 각국의 음식과 식재료들이 판매되고 있다. 지하 1층엔 네덜란드의 국민 슈퍼마켓인 알버트 하인이 자리하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방문도 잦다. 매일 수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들의 동선은 바로 옆 5일장이나 인근 쇼핑 거리로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다. 시는 마켓홀을 건립하며 건물 지하에 1200대의 자동차를 수용할 수 있는 지하 공간을 확보해 주차난에 대비했다.

이처럼 로테르담시는 전통을 지켜내면서도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독특한 형태의 공공 건축 카드를 내밀었다. 아메드 아바우탈레프 로테르담 시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켓홀은 도시의 매력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기업들이 로테르담에 투자하고 싶어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역 주민들도 마켓홀 인근에 연필 모양의 아파트를 ‘펜슬하우스’라는 별명으로 부르듯이 마켓홀을 그 모양 때문에 ‘연필깎이’라고 부르며 도시의 새 랜드마크에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객원기자 vitamj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