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버지니아 주의 롤스로이스 공장에서 “10억 달러를 투자해 15개 제조업 혁신센터를 신설하고 이들을 연결해 국가적인 제조업 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야심차게 시작된 계획이 4년이 되어 가는 지금 현재까지의 진행을 살펴보자.
이런 노력은 사실 미국 제조업의 위기에서 시작됐다. 연간 소득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인력 규모 등의 통계치를 넘어 미국이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이러한 문제가 저임금 비첨단 제품에 한정되지 않고 저임금 국가와의 경쟁 문제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은 독일 및 일본 등과 비교해 기술 혁신, 첨단 기술 분야의 고급 인력 관점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위협받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첨단 기술 제품 무역수지를 살펴보면 2001년 적자로 돌아서기 시작해 2003년 170억 달러, 2010년 81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이런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노트북 컴퓨터, 반도체 메모리, 컴퓨터 게임, 리튬이온 건전지 등 미국에서 개발되고 생산된 제품의 주도권을 이제는 다른 나라가 가지고 있다.

첨단 기술에서도 경쟁력 ‘흔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저임금의 비숙련 노동자가 핵심이 아닌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 제조업에 그 초점을 맞췄다. 정밀 기기, 첨단 재료 등의 신기술에 기반한 제조업은 고소득의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기술에 기반한 첨단 제조업은 연구와 생산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혁신을 이뤄 나가는 데도 핵심적인 요소다. 이런 첨단 제품을 자국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은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은 첨단 제조업을 “정보·자동화·연산·소프트웨어·센서·네트워크 등을 활용하고 나노기술·화학·생물학 등의 연구로 개발되는 첨단 물질 또는 능력을 활용하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활동으로 현재의 물건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첨단 제조업을 육성해 미국이 제조업에서의 리더십을 되찾고 생산성 증대와 국가적인 혁신을 도모하려는 것이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지식을 창출하고 혁신적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을 유치·육성하려는 종합적인 혁신 정책이다. 즉, 특정 회사 및 산업을 선정해 이를 지원하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새로운 기술의 개발 및 활용을 촉진하며 기술 기반 산업이 번성할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 계획은 조세제도 개편, 연구, 교육 및 훈련 지원, 제조업 혁신 사업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조세제도의 주요 내용은 법인세의 한계 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수준으로 맞추고 연구·개발 세액공제 비율을 17%로 확대하는 것이다.
연구, 교육·훈련 부문에서는 첨단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연구·개발 예산을 국내총생산의 3% 수준으로, 핵심 부문에 대해서는 향후 10년간 2배로 증액한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교육을 강화하며 외국인 고급 인력의 채용을 늘리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대통령실이 주도해 상무부·국방부·에너지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첨단 제조업 사업을 추진한다. 여기에는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고등방위연구국(DARPA)·고등에너지연구국(ARPA-E) 등의 부처 소속 기관들과 산업계·학계 등이 모두 참여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한 형태로 추진된다.
여기서 수행해야 할 과제로는 새로운 기술 및 디자인 방법론 연구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지원, 다양한 분야에서 공통으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개발,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 및 장벽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의 개발 및 확산,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공동 활용 장비 및 시설의 구축과 운영 등이다.
또한 핵심 분야에 대해서 4년간 5억 달러 규모로 사업을 시작하고 이를 진행하면서 10억 달러로 확대한다. 핵심 분야 선정은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행하지만 첨단 로봇, 나노일렉트로닉스, 맞춤형 물질, 바이오 제조(Bio-manufacturing)의 4개 분야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러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국가 제조업 혁신 네트워크(NNMI)다. NNMI는 산업체가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산업계와 학계가 공동으로 연구하는 협력체다. 이는 특정 주제의 제조업혁신센터(MII)들로 이뤄져 있다.

로봇·나노·바이오 등에 우선 투자
현재까지 7개의 MII가 설립됐고 앞으로 2개가 준비되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메리카 메이크(America Make) : 3D 프린팅 및 적층 가공(Additive Manufacturing) 기술 연구. 국방부가 5000만 달러 투자 ▷DMDII(Design Manufacturing and Design Innovation Institute) : 디지털 기술로 제품을 보다 신속하고 저렴하며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 연구. 국방부가 7000만 달러 투자 ▷LIFT(Lightweight Innovations for Tomorrow) : 경량 물질의 개발 및 활용 방안 연구, 관련 인력 양성. 국방부가 7000만 달러 투자 ▷파워 아메리카(Power America) : 전기 기기의 효율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와이드 밴드갭(Wide Bandgap) 반도체 기술의 개발 및 상용화. 에너지부가 7000만 달러 투자 ▷IACMI(Institute for Advanced Composites Manufacturing Innovation) : 첨단 고분자 복합 소재의 효율적 제조 방법의 연구·개발. 에너지부가 7000만 달러 투자 ▷AIM 포토닉스(American Institute for Manufacturing Integrated Photonics) : 포토닉스(Photonics) 기술을 이용한 생산 공정의 혁신 연구. 국방부에서 1억1000만 달러 투자 ▷NEXTFLEX(Flexible Hybrid Electronics Manufacturing Institute) : 플렉시블 하이브리드(Flexible Hybrid) 전자 기기에 대한 기술 개발 및 인력 양성. 국방부가 7500만 달러 투자.
그렇다면 이 사업의 진행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를 평가하고 조정하는 것이 적절할까. 이를 위해 ▷혁신 가속 ▷인력 확보 ▷사업 환경 개선 등 3개 분야에서 16개 항목이 사용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혁신 가속 분야에서는 국가 차원의 첨단 제조업 전략 수립, 핵심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 증대, 국가 제조업 혁신 네트워크 설립, 첨단 제조업에 대한 산학 협력 연구 제고, 제조업 분야 기술의 상용화 환경 개선, 관련 정보 포털 구축의 6개 항목이다.
다음 인력 확보 분야는 제조업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 제고, 재향군인 인력의 활용,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에 대한 투자 강화, 자격증 및 인증서 발행 기관과 협력 강화, 첨단 제조업 관련 대학 프로그램 육성, 장학금 및 인턴 제도 강화 등 6개 항목이다.
마지막으로 사업 환경 개선에서는 조세제도 개편, 관련 규제 간소화, 무역정책 개선, 에너지 정책 갱신의 4개 항목이다. 미국의 첨단제조업파트너십(AMP) 운영위원회는 이런 기준을 사용해 이 사업을 평가해 오고 있다. 그 성적표는 어떻게 나왔을까.

연구·개발 예산 20% 늘어
최근의 평가에 따르면 산업계·학계·노동계 및 정부 부처 간의 활발한 협력이 여러 부문에서 결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적 제조업 전략이 수립되고 제조업 혁신센터가 설립되는 등 지금까지 사업이 ‘강력하게’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는 7개의 MII가 설립됐고 첨단 제조업 연구·개발 예산이 전년 대비 20% 증가했으며 이 분야의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10억 달러 기금이 조성됐고 ‘메이커 페어(Maker Faire)’ 등의 행사를 통해 제조업의 인식이 바뀌었으며 120만 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또한 이런 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3개 분야, 12개 보완점을 제시했다. AMP 운영위원회에서 제시된 이 항목들은 백악관의 과학기술정책실(OSTP)을 통해 60일 안에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 실천 방안이 보고될 예정이다.
이지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순항하는 미국의 제조업 혁신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