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헤드헌팅 시장에서 외면 받는 이유
대기업의 구조조정 한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롯데그룹도 2015년 12월 28일과 29일 계열사별 이사회를 통해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대목은 L 전 대표다. 그는 상임 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당분간 면세 사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2~3년 정도가 임기인 비상임 고문과 달리 상임 고문은 임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헤드헌팅 시장에서는 그의 재취업 기상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헤드헌팅 회사 간부는 “그는 국내 1위 면세점의 대표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진다”면서도 “몸값도 부담스럽지만 더 큰 문제는 그를 탐낼 만한 곳들이 경쟁사에 한정돼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면세점이나 신세계면세점에서 비즈니스 노하우를 전수 받기 위해 러브콜을 할 수도 있지만 경쟁사인 만큼 쉽게 자리를 옮기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헤드헌터는 “실제로 롯데 임원을 신세계에 소개한 경험이 있는데, 자신이 경쟁사인 신세계로 넘어가면 유통 업계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어 눈치를 봤다”며 “사실 퇴임한 임원들에게 2년 정도 고문 자리에 앉아 있도록 해주는 것도 임원들이 바로 경쟁사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헤드헌팅 시장에 돌고 있는 석연치 않은 소문도 롯데 출신의 이직 전선엔 걸림돌이다. 롯데 출신 임원들은 다른 기업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감정적인(?) 소문이지만, 그럴 듯한 근거가 뒷받침되고 있다. 핵심은 롯데그룹 내 주요 계열사에 적용되는 ‘순환 보직 제도’였다. 롯데그룹은 유통 업계 계열사를 중심으로 순환 보직 제도를 인사 규정에 적용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다양한 보직을 경험하도록 해 근무 역량을 함양시키겠다는 긍정적인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지만 인력시장에서는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5년간 롯데그룹의 성향을 분석해 왔다고 밝힌 한 헤드헌터는 “헤드헌팅 시장에서 핵심은 전문성인데, 순환 보직을 적용 받은 롯데 임원은 10년 이상 한곳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최근 체질 개선을 통해 조직 문화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최근 대두된 경영권 다툼에 이미지도 하락해 여전히 롯데 임원을 추천하면 손사래를 치는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한편 재취업에 순환 보직제 등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다른 헤드헌팅 업체 대표는 “순환 보직은 전무 등 중간 관리자 재취업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지만 L 전 대표와 같은 최고경영자(CEO)는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본 것이 강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며 “특히 L 전 대표는 업계 최초로 일본에 진출하는 등 해외 성과도 보유한 만큼 다수의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상임고문으로 일하면서 충분한 여유를 갖고 대처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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