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문제도 점차 글로벌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 양국에 걸친 상속 문제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국제무역 측면에서뿐 아니라 개인 간 거래나 이동에 있어서도 오랫동안 매우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한국인이면서도 미국에 거주하거나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사람도 많고 미국인(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한인 포함) 중에도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인이 사망하게 될 경우, 한국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미국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경우도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변호사는 한국의 상속법은 잘 알지만 미국의 상속법은 모르고, 미국 변호사는 그 반대인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에 한국 변호사로서 미국에서 상속법을 공부하고 ‘미국 상속법’이란 책을 출간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인에게 생소한 미국의 상속법에 관해 소개해본다.
n분의 1로 나누는 유류분 상속제도 없어
미국에서 상속법의 범주 안에서 논의되는 주제는 무유언상속법(Intestate Succession), 유언법(Wills), 신탁법(Trusts) 등 세 가지다. 무유언상속법은 피상속인(상속 재산을 남기고 사망한 사람)의 유언이 없는 경우 법정상속에 따라 상속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고, 유언법은 피상속인이 유언을 남긴 경우 그 유언에 따라 상속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며, 신탁법은 상속과 증여의 수단으로 주로 이용되는 신탁제도에 관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상속(또는 증여)이라는 큰 틀 안에서 유언과 신탁이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로스쿨에서도 이 두 주제를 함께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 상속법은 기본적으로 연방법(federal law)이 아닌 주법(state law)이기 때문에 주마다 각기 다른 내용의 상속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피상속인이 사망 당시 거주하던 주의 법이 동산의 처분에 적용되고, 피상속인의 부동산이 소재하고 있는 주의 법이 부동산의 처분에 적용된다. 특정 주의 법령을 살펴보지 않고 상속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다른 주로 이사한 사람들에게 혼동을 초래하고 심지어 변호사들조차 실수를 범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각 주법에 산재해 있는 구시대적이고 불합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상속법의 통일화를 가져오기 위해 미국 통일법위원회가 만든 표준상속법전이 UPC(Uniform Probate Code)다. UPC는 1969년에 처음 공포됐는데, 그 후 미국 상속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69년 UPC를 전체적으로 채택한 주는 16개였다(알래스카, 애리조나, 콜로라도, 플로리다, 하와이, 아이다호, 메인, 미시간, 미네소타, 몬태나, 네브래스카, 뉴멕시코,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사우스캐롤라이나, 유타).
현재까지 UPC를 채택한 주는 16개 주와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을 포함한 19개 주다. 다른 주들은 UPC의 조항들을 부분적으로만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UPC를 채택한 주 사이에서도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따라서 어떤 주가 UPC를 채택했더라도 그 주의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UPC의 조항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실제 그 주의 법령을 반드시 살펴봐야만 한다.
한번은 미시간 주의 변호사가 플로리다 주가 UPC를 채택했다는 사실만 믿고 UPC 조항만 확인한 채 플로리다 주의 법령은 검토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변호사는 370만 달러짜리 소송의 제소 기간을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됐다.
미국의 상속법이 우리와 다른 점 중 하나가 바로 유언검인제도의 존재다. 유언검인(probate)이란 협의로는 피상속인 유언의 유효성을 결정하는 사법 절차를 의미하고, 광의로는 상속 재산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절차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유언검인법원(Probate Court)은 유언의 유효성을 심사하고, 유효한 유언을 집행하며, 유언집행인과 상속재산관리인의 부정행위를 감시하고, 유언 없이 사망한 사람의 상속 재산을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유언은 유언검인법원에 의해 검인이 승인돼야만 그 효력을 발휘한다.
유언장에 법정 형식 요건이 결여돼 있을 때에는 검인이 승인되지 않는다. 유언장이 존재하더라도 그 유언장이 유언검인법원에 제출되지 않거나 제출됐더라도 검인이 승인되지 않으면, 유언자의 재산은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분배된다.
이러한 유언검인 절차는 너무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속과 관련해 미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유언검인 절차를 피해서 상속할 것인가다.
다양한 상속제도 활용…복잡한 유언검인 피해유언검인을 피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제도들로는 조인트 테넌시(Joint Tenancy), 사후지불지정(POD)계좌, 생명보험, 신탁이 있다. 조인트 테넌시는 분할되지 않는 재산권을 두 사람 이상이 동등하게 소유하는 것으로, 예컨대 부부가 어떤 재산을 조인트 테넌시로 소유하다가 남편이 먼저 사망 시 그 재산에 대한 피상속인(남편)의 이익은 그의 사망과 함께 소멸하고 생존자(아내)가 모든 재산을 취득하게 된다. 주로 부부들이 부동산이나 예금 등을 조인트 테넌시로 소유한다.
그리고 POD계좌라 함은 예금주가 사망한 경우에 예금주가 지정한 제3자에게 계좌에 있는 예금이 지급되도록 하는 특별한 계좌다. 예금주가 사망한 경우에만 예금이 이전되도록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경우 유언검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산이 이전되기 때문에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고 단순히 POD계좌를 개설해 상속할 수 있게 된다.
피상속인은 신탁을 이용해서 유언검인 절차를 피해 재산을 상속인들에게 분배할 수도 있다. 신탁은 피상속인이 생전에 설정할 수도 있고, 유언으로 피상속인 사후에 설정될 수도 있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설정한 신탁 중 철회가 가능한 것을 철회가능신탁(Revocable Trust)이라고 한다. 철회가능신탁은 위탁자가 살아 있는 동안 언제든지 철회 또는 변경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으며, 위탁자가 신탁 재산의 처분과 관리를 자신의 기호에 맞게 상세히 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철회가능신탁은 유언검인을 피하는 방법들 중에서도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으며, 미국에서 상속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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